그러면서도 배용준처럼 꾸미고 다니는 남성들도 있다고 한다. 이들을 '3.5사마'라고 한다. 성의는 갸륵하지만 '욘(四)사마'엔 0.5점 못 미친다는 뜻이다.
그런데 배용준이 일본 열도를 열광시킨 최초의 한국인 스타는 아니다. 50여년 전 프로 레슬러 역도산(김신락)이 있었다. 지금도 '리키(力)'라는 애칭으로 통한다. 일본에서 '민족의 영웅'으로까지 불렸으니 지금의 '욘사마' 붐을 능가했던 셈이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게 있다. '욘사마'와 달리 '리키'는 국적을 밝힐 수 없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시절이었다. 일본 언론은 이를 알고도 숨겼고 일본 팬들은 그가 일본인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동포 야구선수 장훈이 역도산의 집에 놀러갔을 때다. 밤이 깊어지자 역도산은 방문을 꼭꼭 걸어닫고 조심스럽게 라디오를 틀었다. 한국 방송이었다. 장훈이 "한국인이라고 말하고 살면 되잖습니까"라고 하자 역도산은 버럭 화를 냈다고 한다.
그는 한국인 레슬러 김일을 제자로 훈련시킬 때도 우리말을 쓰지 않았다. 오히려 김일의 일본어가 서툴다고 자주 호통을 쳤다. 한번은 김일이 '기쿄(桔梗)'란 말을 알아듣지 못한 적이 있다. 화장실에서 우연히 그와 마주친 역도산은 "기쿄도 모르나. 도라지란 뜻이다"고 말했다. 김일이 역도산의 입에서 들은 유일한 한국어가 바로 '도라지'였다.
그의 국적 감추기는 신경질적이었다. 1963년 한국 정부 초청으로 극비 방한했을 때였다. 이를 포착한 AP통신이 '모국 방문'이란 표현을 썼다. 일본에선 도쿄주니치신문만 이를 받아 보도했다. 격노한 역도산은 한동안 그 신문사의 취재를 거부했다.
지금은 한류 열풍이지만 당시 '조센(朝鮮)'이라는 말엔 멸시적 뉘앙스가 강했다. '조센징'은 스타가 될 수도 없었다. 그 정도로 일본인은 한국.한국인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었다. 그런 일본인이 한국인 스타에 마음을 여는 데는 반세기란 시간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남윤호 패밀리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