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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대중음악산업 ③ 독립기획사 : 실력·열정의 인디밴드 "말 달리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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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1990년대 후반 이후, 특히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한국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급격히 대형화하고 있다. 가수를 발굴하고 키워 음반을 내는 일만 전문으로 하는 가요 기획사도 규모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특히 대형, 신생 할 것 없이 수많은 기획사들이 많은 자본을 투자해 큰 이득을 올리는 길을 모색하는 추세다. 많게는 수억원의 제작비가 들어가는 뮤직비디오를 만든 뒤, 지상파와 케이블 TV에 방영 공세를 펼치고, 스포츠 신문에 전면 광고를 하면서 대대적인 마케팅을 펼치는 게 보통이다.

이는 화제 몰이를 통해 단기간에 많은 앨범을 팔아 투자비를 회수하고 다음 앨범 제작에 착수하기 위함이다. 문제는 이런 식의 마케팅에 의존한 앨범 제작과 판매는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CD 장사'에 가까울 뿐,'진정한 음악 추구'와는 거리가 멀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과 일본 등 대부분의 음악 선진국에서는 뮤지션들이 스스로 음악을 만들고, 먼저 싱글 앨범을 발매해 전국 투어 등 공연을 통해 실력을 선보인 뒤 여기서 대중의 관심을 끌면 정규 앨범을 내고 본격 활동에 들어가는 게 일반적이다. 스타들의 활동에서도 각종 공연이 가장 중요한 건 물론이다.

반면 90년대 이후 한국의 경우,어느날 갑자기 등장한 신인이 지상파 TV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가요 순위 및 각종 오락 프로그램에 빈번히 얼굴을 내밀고 뮤직비디오를 틀어대면서 일약 스타로 등극하기 일쑤다. 음반 판매 순위 상위권의 대형 스타들이 공연은 몇번 않고 줄곧 TV에만 출연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왜곡된 시장 구조 때문에 노래 잘하고 곡 잘 만드는 실력있는 뮤지션들 보다는 예쁘고 춤 잘추는 청춘 스타들만 양산되고 있다. 물론 이런 스타들이 이른바 한류(韓流)의 주인공이 되고 음반 산업 팽창에 기여하는 등 순기능도 하지만, 이들을 '억지 스타'로 만드는 과정에서 갖가지 잡음이 생겨나며, 이런 문화를 바로잡자는 시민운동까지 일어나고 있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같은 구조를 바꾸기 위한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뭔가. 간단하다. 스스로 노래를 만들어 부르고, 수많은 공연을 통해 팬들을 만나면서 실력을 쌓고, 그런 탄탄한 인기 위에서 거품없는 음반 판매를 지향하는 뮤지션이 쏟아져야 한다. 특히 이들을 뒷받침하는 인디 레이블, 즉 독립 기획사들의 활성화가 필요하다.

한국 엔터테인먼트 업계가 대형화하는 그늘에서 이런 독립 기획사들이 탄탄한 기량을 쌓아가고 있는 것은 그마나 다행스러워 보인다. 대표적인 곳이 펑크·하드록 밴드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 드럭(대표 이석문)이다. 94년 홍대 앞에 클럽을 내면서 세상에 선보인 드럭은 96년 크라잉넛과 옐로 키친 두 밴드가 함께 만든 '아워 네이션' 1집으로 음반 발매를 시작했다.

이후 드럭은 '아워 네이션'2,3,4집을 내면서 펑크록 밴드 노브레인, 하드코어 밴드 쟈니 로얄, 모던록 밴드 마이 앤트 메리, 스카 펑크 밴드 레이지 본, 여성 하드록 밴드 파스텔 등 현재 한국 록계를 이끌어 나가고 있는 대표적인 인디 밴드들을 세상에 선보였다.

특히 99년 1집 '말 달리자', 2000년 2집 '서커스 매직 유랑단', 지난해 3집 '하수연가'를 연이어 발표하면서 일약 한국 록밴드의 대표 주자로 자리잡은 크라잉넛은 지금까지 세 장의 앨범을 합쳐 35만장의 판매량을 기록하면서 인디의 한계를 넘어 맹활약하고 있다.

현재 드럭에는 크라잉넛 외에 다음달 첫 정규 앨범을 출시할 레이지 본과 3인조 여성 록그룹 파스텔 등 세 팀이 소속돼 있다. 드럭은 지난해 크라잉넛을 주연으로 한 장편 영화 '이소룡을 찾아랏'을 제작하는 등 독립 영화로도 활동 범위를 넓히고 있다.

드럭 출신으로 크라잉넛과 함께 음악성과 대중성 양면에서 펑크록 밴드의 쌍두마차를 이루고 있는 노브레인은 지금은 독립 기획사 쿠조(대표 김재문)에 소속돼 있다. 98년 설립된 쿠조에는 역시 드럭 출신인 쟈니 로얄, 옛 푸펑충 멤버들이 결성한 록타이거, 언니네 이발관 등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드럭과 쿠조가 펑크와 하드록 밴드 위주로 구성돼 있다면 마스터 플랜(대표 이종현)은 한국 언더 힙합의 산실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해 첫 정규 앨범을 낸 주석을 필두로 최근 국악과 힙합을 결합한 노래 '어부사'로 독특한 음악 세계를 선보이고 있는 원선 등 실력파 힙합 뮤지션들을 배출한 마스터 플랜은 특히 소속 가수들의 중화권 및 일본 진출에서도 성과를 거두고 있다.

카바레 사운드(대표 이승호)는 다양한 색깔의 가수들이 한데 모인 기획사다. 지르박풍의 성인 가요를 젊은 감각으로 만들어내는 볼빨간을 비롯해 모던록 밴드 은희의 노을,시에 가까운 가사로 알려진 레이디 피시 등이 이 기획사 소속이다.

이 외에 난장에서 지난해 이름을 바꾼 t엔터테인먼트(대표 김태은)에는 한국의 대표적인 모던록 밴드 자우림과 롤러코스터·퍼니파우더 등이 소속돼 있고 최근엔 리듬 앤드 블루스(R&B)가수 박정현까지 영입해 덩치를 키우며 주류 기획사로 자라고 있다.

'홍대앞 문화'로 상징되는 한국의 인디 음악은 지금 기로에 서있다. 상업적 요구보다는 음악적 고집을 우선하면서도 주류 문화에 필적할 만한 음악 세력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지, 아니면 일부는 아예 주류의 흐름에 편입되고 나머지는 말 그대로 땅밑(언더 그라운드)으로 영영 가라앉을지가 앞으로 3~4년 안에 결정될 것으로 음반업계는 보고 있다.

아무튼 인디 음악계가 많은 젊은이들에게 "나도 음악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줄 수 있도록 발전하는 것은 음반 산업 전체를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최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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