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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격동의 시절 검사 27년 (31)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7면

검사의 길

21.아마추어 공안부장

1981년 정기인사에서 나는 남부지청 부장에서 서울지검 공안부장으로 영전했다. 전임자는 현재 한나라당 국회의원인 김기춘(金淇春.전 검찰총장.법무부장관)씨다. 나도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인사였다.

당시 공안검사는 전문성이 확립돼있을 때인지라 공안검사 경력이 전혀 없는 내가 공안부장에 발탁된 내막이 궁금했다.

그때 서울검사장은 김석휘(金錫輝.전 검찰총장.전 법무부장관)씨였다. 나는 金검사장에게 공안 분야에 아무런 경험이 없는 순수 아마추어이고 공안 업무의 중요성으로 보더라도 적임자가 아닌 내가 공안부장에 발탁된 배경을 여쭤보았다.

金검사장은 "서울지검 부장으로 발령받을 간부들 가운데 공안부 근무 경험이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 金부장과 J부장 두 사람을 놓고 인사권자들과 의논하는 과정에서 金부장이 공안부장으로 결정됐다"고 배경을 설명해 주었다.

金검사장은 "비록 金부장이 공안부 근무 경험은 없으나 검사는 기본적으로 모두 공안 감각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타성에 젖어있는 프로보다 신선한 아마추어가 훨씬 좋다"며 용기를 붇돋워줬다.

공안부장으로 부임하기에 앞서 전임 김기춘 공안부장으로부터 부 운영과 다른 공안기관과의 관계 등 업무에 관한 간단한 설명을 우선 들었다.

이어 수석 검사인 故 변진우(邊進宇.전 서울지검 3차장)검사가 서울지검 공안부의 현황에 대해 자세히 브리핑을 해 주었다. 여러 가지 현안과 공안부 부원들의 신상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있었다. 邊검사는 또 추가적으로 기타 민감한 일들에 대해 자세한 자료를 제시하며 보고했다. 이렇듯 당시 공안부 업무의 인수 인계는 서울지검의 다른 부서의 그것과 사뭇 달랐다.

부원들과 개별 면담도 했다. 다 훌륭한 자질을 가진 검사들이었다. 지금은 모르겠으나 당시에는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는 검사들 가운데서 공안검사를 발탁했기 때문에 모두들 능력이 있었고 사명감도 있었다.

마음 든든했다. 당시 부원은 邊검사와 반헌수(潘憲秀.변호사), 김경한(金慶漢.서울고검장), 임휘윤(任彙潤.전 부산고검장), 정형근(鄭亨根.국회의원), 구상진(具相鎭.전 서울시립대 교수.변호사) 등이었다.

나는 공안부장으로서 부임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뒤 일부 부원들을 다른 부로 내보내고 다른 부 검사들을 공안부로 영입했다. 변진우.반헌수 검사를 특수부 등으로 내보내고 대신 특수부에서 근무중이던 안강민(安剛民.전 서울지검장)과 박순용(朴舜用.전 검찰총장)검사를 스카우트해 왔다. 安검사는 우리 부의 수석검사가 됐다.

당시 공안부는 지금의 서울지검 공안부처럼 검사 숫자도 많지 않았고, 수석검사는 부장을 보좌해 관계 공안기관과의 비공식적 접촉을 맡는 등 여러 가지 역할을 해야 했다. 나는 업무 능력이 뛰어나며 나이가 좀 지긋하고 노련한 검사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安검사를 공안부로 데려왔다.

퇴직한 구상진 검사 자리에 역시 특수부의 박순용 검사를 영입한 것도 심사숙고하여 내린 결정이었다. 부원 하나를 데리고 올 때에도 일선 검사들에게 의견과 평판을 물어 신중하게 판단한 뒤 검사장에게 보고한 다음에 실천에 옮겼다.

좀 고리타분한 이야기인 것 같지만 나는 같이 근무하는 후배 검사들의 가정을 방문하기를 좋아했다. 먼저 우리 집에 부원들을 초청하여 간단한 음식으로 저녁을 나누면서 우리가 사는 모습부터 보여 준 다음 서열순으로 가정을 차례로 방문했다. 다른 조직에 가서도 사정이 허락하는 한 나는 간부들의 가정을 방문했다. 참 좋은 행사라고 생각했다.

사무실에서 늘 머리를 맞대고 일하는 처지이지만 그 사람들의 가정에 들러 집안의 가풍을 들여다보는 것은 기대 이상의 여러 가지 효과를 가져왔다. 조직이 방대할 때는 시행하기가 곤란하겠지만 가능하면 권장해 볼만한 일이 아닌가 싶다.

같이 일 하던 부하가 영전을 해서 멀리 지방으로 떠났을 때 특히 좌천이 되어 시골에서 외롭게 지낼 때 동료들과 휴일을 이용하여 위로 방문을 하던 일들이 지금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

김경회 <전 한국 형사정책 연구원장>

정리=이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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