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 속뜻 읽기] 10. 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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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꿩은 그 행동이 방정맞다. 궁지에 몰리면 몸은 내놓고 머리만 숨긴다. 요즘엔 꿩고기가 맛있다고 사육하여 식용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이런 사정 때문인지 꿩에 대한 신비로움이나 호기심을 찾을 수 없다. 하지만 꿩은 예로부터 다른 새와 달리 상서로운 존재로 받아들어져 왔다.

꿩을 식용으로 한 역사는 매우 오래된 듯하다. 『삼국유사』를 보면 신라의 무열왕 김춘추는 아침과 저녁 식사만으로 쌀 여섯 말,술 여섯 말, 꿩 열 마리를 먹은 대식가였다고 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꿩고기가 가장 선호된 육류였다는 점.

조선시대 아녀자들을 위한 책인 『규합총서』에서도 꿩 요리법이 수록된 것을 보면 당시에도 꿩고기를 많이 먹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어린 꿩은 7월에 먹고, 꿩 뼈가 목에 걸리면 약이 없다고 한다.

꿩고기를 선호한 이유는 간단하다. 일단 맛있기 때문이다. '꿩 구워 먹은 자리는 재만 있다'는 속담은 꿩고기의 인기를 짐작케 한다. 설날 떡국에 넣는 고기도 꿩고기다.꿩이 제사상에까지 올라갔다는 사실도 그 맛과 무관하지 않다.

'꿩 대신 닭'이라는 속담도 제사상과 관련된 얘기다. 조선시대에 꿩을 진상받은 임금이 고기를 신하들에게 나눠주었다. 그 고기를 먹은 대감집 아들이 병에 걸렸다. 반하(꿩이 좋아하는 약초)를 잔뜩 먹은 꿩을 먹었기에 탈이 난 것이다. 이후 '꿩 대신 닭'을 제사음식으로 올렸다는 민담(民譚)이 전해져오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꿩을 좋아하고, 또 꿩이 속담에 자주 등장하는 것이 단지 '고기맛'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꿩의 상징적인 의미도 적지않다. 외견상 꿩의 특징은 긴 꼬리다. 그 꼬리의 털이 쓰이는 대표적 예는 농기(農旗) 꼭대기에 매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농악은 사람들의 흥을 돋우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마을에서 당제 등을 지낼 때 농악은 신악(神樂),즉 신을 위해 연주되기도 한다. 따라서 꿩의 꽁지털은 신이 알아볼 수 있도록 한 장치로 볼 수 있다. 즉 신이 내려오는 길목을 알려주는 장치인 셈이다. 꽁지가 아름다운 빛깔을 내고 있기 때문에 무엇인가의 의미를 지닌 신표로 사용된 것이다. 고구려인들이 머리에 꿩 꽁지털로 만든 깃을 꽂고 다녔고, 요즘도 무당의 모자에 꿩깃을 꽂은 이유도 이런 상징과 관계가 있다.

『삼국사기』를 보면 특히 신라에서 꿩의 상징성을 시사하는 대목, 예컨데 '흰 꿩을 잡아 왕에게 진상했다'는 기록이 많다. 흰색이 갖고 있는 상서로움에다, 꿩을 '신의 뜻을 전달하는 존재'로 이해한 결과다.즉 흰 꿩은 태평성대를 이룬 왕을 치하하기 위해 신이 보낸 것으로 해석됐다.

1932년의 한 신문기사를 보면 함경남도 이원군에서 흰 꿩을 잡았는데, 그것을 구경하러온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고 한다. 흰 꿩이 나타났다는 것이 바로 성현의 출현을 알리는 징조로 생각한 때문이다.

꿩은 명당을 알려주는 영물로도 생각된다. 매사냥으로 몸을 다친 꿩이 한 여인의 집으로 떨어졌다. 여인은 꿩을 구해주었다. 얼마 지나 여인의 아버지가 숨을 거둬 묘자리를 찾아 고민하는데 꿩이 나타나 명당을 알려준다.

그 곳에 장례 지낸후 집안이 번창하였다는 얘기다. 꿩은 단순한 새가 아니라 신의 뜻을 지닌 상서로운 새, 은혜를 갚을 줄 아는 존재로 인식돼온 것이다. 꿩의 위상이 떨어진 것처럼 세상에는 은혜를 모르는 배은망덕한 사람들이 많아져 서글프다.

김종대<국립민속박물관유물과학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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