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서울 시향 새 사령탑 곽승씨 "음악열정 더 뜨거워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9면

"45년 만에 고향에 돌아온 기분입니다. 열 여섯살 때 까까머리 고등학생으로 서울시향 트럼펫 주자로 입단했을 때는 막내였는데, 지금은 저보다 나이 많은 단원이 한 명도 없군요. 정말 감개무량합니다."

지난 4일 오전 세종문화회관 5층 서울시향 연습실. 올해 초 음악고문에 취임한 곽승(60)씨가 오는 11일 취임 기념 특별연주회를 앞두고 첫 연습을 하면서 단원들에게 들려준 소감이다. 이날 연습은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제2번의 1악장.

3악장과 바그너의'탄호이저 서곡'을 훑어보는 것으로 끝났다. 시향 단원들의 얼굴에는 긴장하는 표정이 역력했고 지휘자의 차분한 목소리에는 힘과 자신감이 배어있었다.

곽씨는 서울시향 정기연주회를 올해 5회,내년 10회를 지휘할 계획이다. 1995년 12월 이후 부산시향 수석지휘자(음악감독)를 맡고 있어 서울시향에선 당분간'음악고문'이라는 타이틀을 사용하기로 했지만 사실상 음악감독이나 다름없는 역할이다.

"당분간 서울시향에 대해 '공부'하려고 합니다. 역사적 배경과 현재의 위치를 알아야 방향을 설정할 게 아닙니까.

외국에선 한 명의 지휘자가 2~3개 교향악단 음악감독을 겸임하는 게 보통인데 아직 국내 정서로는 시기상조인가 봅니다. 하지만 서울시향과 부산시향을 겸임해도 충분히 해낼 수 있어요. 후배 지휘자 양성에다 음반 녹음, 외국 순회공연 등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습니다."

부친이 즐겨 연주하던 만돌린.아코디언.하모니카를 만지며 성장한 곽씨는 보인중 밴드부에서 타악기와 트럼펫을 연주했고 보인상고 2학년 때 서울시향에 입단했다.

경희대 재학 중이던 64년 예그린 악단의 미국 순회공연 직후 매네스 음대로 진학, 푸르트벵글러의 조수로 활동했던 칼 밤베르크에게 지휘법을 배웠다.

65년 뉴욕 유학시절에 만나 결혼한 메조소프라노 김신자(이화여대 교수)씨가 그의 첫 부인. 텍사스 오스틴에는 81년 재혼한 미국인 아내(이데)와 2남 1녀가 살고 있다. 매년 2월이면 베네수엘라에서 지휘법 마스터클라스를 열고 있는 그는 자신을 가리켜'집시'라고 말한다.

지휘봉 하나 달랑 들고 세계 전역을 누비고 있는 그는 호텔 생활이 싫어 부산에 이어 서울에도 광화문 근처에 작은 아파트를 전세로 얻어 살고 있다.

술은 한잔도 입에 못대고 담배는 하루 반갑 정도. 골프와 산책.명상으로 건강을 다진다.

"음악에 대한 열정은 나이가 들수록 더욱 뜨거워져요. 너무 의욕이 넘쳐 '면도칼'이라는 별명이 붙었는지도 모르죠. 조만간 서울시향의 사운드가 달라졌다는 소리를 듣고 싶어요."

곽씨는 자신이 '사령관 스타일'의 지휘자라는 세간의 평에 대해 애써 부인하지는 않지만 소문과는 달리'가슴이 따뜻한 남자'임을 강조한다.

객원지휘라면 몰라도 교향악단을 발전시키려면 다소의 카리스마가 필요하다는 것. 그가 사용하는 지휘봉은 길이 53㎝짜리로 약간 긴 편이다. 그래서 매우 화려한 지휘로 보는 즐거움도 선사한다.

"서울시향, 얼마나 멋진 이름입니까. 국제도시 서울에 값하는 이미지를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음악이 좋아지면 다른 문제들도 자연스럽게 해결되겠지요. 합주를 위해선 지휘자와 단원의 마음을 한데 모아야 해요.

하지만 오케스트라 사운드는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올 하반기 세종문화회관의 음향 개보수에 큰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곽씨는 또 오는 5월 아시아작곡가 연맹 서울대회 개막공연에서 코리안심포니.첼리스트 장한나와 함께 윤이상의 '첼로협주곡'을 연주할 계획이다.

글=이장직 음악전문위원

사진=최승식 기자

*** 약력

▶1941년 12월 11일 경남 마산 출생.4세 때 서울로 이주

▶57년 보인상고 2년 재학 중 서울시향 최연소 단원으로 입단

▶61년 경희대 재학 중 도미, 뉴욕 매네스 음대에서 지휘 전공

▶70~76년 조프리 발레단 음악감독

▶69~77년 매네스 음대 교수

▶77년 애틀랜타 심포니(음악감독 로버트 쇼)부지휘자

▶80년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음악감독 로린 마젤)부지휘자

▶83~97년 텍사스 오스틴 심포니 음악감독

▶90년 평양 범민족 통일음악회 지휘

▶96년 애틀랜타 올림픽 기념 남북 합동공연 지휘

▶96년~현재 부산시향 수석지휘자

▶97년 부산시향 미국 순회공연 지휘

▶2002년 서울시향 음악고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