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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지식인 지도를 끝내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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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중앙일보의 1년 기획으로 주 1회 연재됐던 '세계 지식인 지도'가 기획위원 토론으로 끝을 맺는다.

이 시리즈는 국내 신문의 학술 관련 기획으로는 유례없는 기간과 방대한 수의 필자.등장 인물들로 화제를 모았다. 이 시리즈로 당대 세계 지식계의 대체적인 윤곽은 가늠할 수 있었다. 그동안 인물.필자 선정에 큰 역할을 한 기획위원들의 평가를 들어본다.

기획위원:김상환(서울대 교수).김성기(문화비평가).이동철(용인대 교수).임경순(포항공대 교수).임지현(한양대 교수).정과리(연세대 교수)<가나다 순>

▶이동철(사회)='세계 지식인 지도'는 신문 사상 유례가 없는 지식 자체에 대한 장기 기획이라는 점에 큰 의의가 있습니다. 또한 종래에 자주 있었던 석학이나 거장 또는 첨단의 소개가 아니라, 일정한 흐름과 지형을 보여주고자 노력했다는 것이 중요한 특성이 아닌가 합니다. 세계화.근대성.생태.정보.페미니즘 등의 키워드를 통해 21세기의 고민과 과제를 검토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임경순=이번 연재는 특히 주류 사상뿐만 아니라 여성.포스트콜로니얼리즘 등 주변부의 시각이 함께 어우려져 좋았습니다. 지식인의 대열에서 빠지기 쉬운 과학기술 분야의 지식인들, 예를 들어 리처드 스몰리와 나노테크놀로지, 테크노사이언스의 여전사 도나 해러웨이 등이 포함되어 지식 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반영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정과리=세계의 방방곡곡에 분산되어 있는 지식인들을 정밀한 분류 원칙에 의해 체계적으로 정돈하여 지식 공간에 대한 최신판의 지도를 작성하였습니다. 또한 현대 지식인들의 역사적 계보를 캐들어감으로써 물질 문명의 발달에 끊임없이 반성적 성찰을 제공한 사유의 시간줄기를 복원할 수 있었습니다.

▶김상환=전세계에 걸쳐 펼쳐지고 있는 지식의 새로운 전선(前線)과 지식인의 활약상을 골고루 정리해 보았다는 의의 외에도 이 연재의 특성과 성과로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이 세계적 지식인 지도의 세부에 대응하는 필자들을 발굴하고 모았다는 것입니다. 세계의 지식인 지도를 그리면서 국내의 지식인 지도도 자연스럽게 그려진 셈이지요.

▶임지현=기본적으로는 한국 사회의 이념적 지형에서, 즉 한국 사회의 문제의식에서 세계 지식계의 동향을 일별했다는 데 의의를 두고 싶습니다. 또 뒤집어서 말한다면, 이 기획에서 해체론을 비롯한 각종 '포스트 담론'이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사회의 문제의식이 주변부 혹은 제3세계적 시각에서 벗어나 중심부 사회의 문제의식으로 이동하는 과도기에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절차적 민주화 혹은 형식적 민주화가 어느 정도 달성되었다는 1990년대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지요.

▶김성기=먼저 기획위원으로서 자축하고 싶습니다. 문제는 '지식의 세계 지도'가 필요했는가, 그리고 그게 제대로 그려졌는가 하는 점이겠죠. 애초부터 지도 작성이란 무모한 시도가 아닌가 하는 시선도 있었지만,'21세기 우리 지식인은 어디에 서 있는가'라는 절박한 고민을 반영했다고 봅니다. 물론 결과는 '코끼리 다리 만지기' 수준에 그쳤다는 평가도 가능할 터이며,다만 향후 온전한 지도 작성을 위한 밑그림 구실은 충분히 하지 않을까 싶네요.

▶이동철=이번 기획이 한국의 지식인 사회나 학계에 지니는 의의는 무엇입니까. 개인적으로 우리의 지식인 사회나 학계에 대해 아쉬움을 느끼는 것이 있다면 균형감각과 현실감각입니다. 아울러 그에 바탕을 둔 어젠다 설정 능력도 그렇고요. 그런데 이 균형감과 현실감은 지도를 그리는 데 불가결한 요소입니다. 여러 면에서 미흡한 점도 있지만, 우리의 입장에서 세계 지식인의 흐름과 동향에 대해 지도를 그리고자 했고, 그려냈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또한 이런 과정에서 우리 내부의 지적 역량이나 축적, 나아가 한계를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던 점도 의미가 있겠지요.

▶김성기=우리 지식계의 '칸막이' 현상을 절로 돌아보게 했다는 점이죠. 그간 우리가 알고 있던 '문화와 지식의 창'이란 게 너무 편협하고 특히 지적 촉수가 미국과 유럽권에 쏠려 있다는 문제가 드러났지요. 또 하나, 이런 기획이 언론사에서 추진되기 전에 학계 내부에서 먼저 공동의 지적 의제로 제출되지 못했다는 점이 못내 아쉽습니다. 그 까닭이 무엇이든 두고두고 반성할 대목이지요.

▶김상환=제 동료인 김기현 교수가 대니얼 데닛과 인공지능에 대해서 썼는데, 기사가 나간 후 여러 군데에서 문의전화가 왔다고 그래요. 이 분야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유도한다는 것을 넘어 같은 관심을 갖는 전문가들끼리 서로 연락하고 연대하는 기회가 된 것 같습니다. 특히 이번 연재에서 신생 학문이나 영역이 많이 소개되었는데, 이런 분야일수록 그런 효과가 컸으리라 봅니다.

▶정과리=무엇보다도 지식인들의 다양성과 넓은 폭은 한국의 지식인 사회에 개안의 기회를 제공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그 동안 바깥의 학문을 섭취하는 작업에서 너무 편식해오지 않았는가 하는 자성이 저절로 듭니다. 게다가 언뜻 보기에 엇비슷한 지식 동향들 속에 있는 미세한 차이가 세계관의 근본적 차이를 낳을 수도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결국 삶의 현장과 구체성의 문제로 귀착합니다. 한국 지식인들에게 세계 지식인들이 중요하다면 바로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고뇌하면서 자신만의 이론 체계를 세워나간 치열한 과정 자체가 의미 있기 때문입니다. 세계의 지식은 우리에게 주입적으로 전수될 것이 아니라, 유비(類比)적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지식인 사회에 가장 절실하게 요구되는 사항입니다.

▶임경순=저도 김상환 교수의 지적에 동감합니다. 이번 기획으로 많은 신진 학자들이 새롭게 지면에 등단한 것은 아주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합니다

▶이동철=시리즈는 당초 50회 정도를 예상했으나 미국에서의 9.11테러 등 핫이슈들 때문에 몇번 거른 적도 있습니다. 그래서 '아시아의 도전'이라는 예정 주제를 다루지 못하고 최종회의 '주변부의 시각'에서 아시아 지식인의 흐름을 다루게 되었습니다. 아무튼 우리 지식인 사회에 아시아나 여타 주변부의 지식인과 그 흐름을 잘 모르거나 관심이 부족한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우리와 많은 면에서 동질적이거나 유사한 문제와 고민을 보인다는 점에서 좀더 진지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중국의 경우 '문화열'이나 '인문정신' 논쟁 등은 우리 사회에도 소개되었지만, 90년대 후반 신좌파와 자유주의 사이의 논쟁이나 중국의 포스트모더니즘 등은 별로 논의되지 않고 있습니다. 중국 지식인들의 문제의식을 살핀다는 것은 중국의 장래를 예측하는 데 어느 면에서 상당히 중요하다고 봅니다. 끝으로 이번 기획의 아쉬운 점을 말씀해 주시요.

▶임경순=프랑스 지식인들을 강조한 것까지는 좋았는데,너무 많아진 것은 전체 균형상 조금 문제가 있었다고 봅니다. 이번 지식인 지도는 전체 지식인들을 모두 포괄했다기보다는 미래를 이끌어갈 지식인들을 접하기 위한 일종의 가이드 라인입니다. 이 지도를 통해 우리가 앞으로 새로운 신천지를 발견할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정과리=가장 체계적이고 광범위한 지도를 그렸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결락된 지점들이 곳곳에 눈에 띕니다. 사뮈엘 베케트.알렝 로브-그리예 이래 언어에 대한 철저한 지적 실험을 추구해 온 전위 문학에 대한 조명이 빠진 게 아쉬웠습니다. 그리고 전세계적으로 철저한 몰락의 길을 밟아가고 있는 현대시가 현대 문명의 황폐함 속에서 낮은 포복으로 암중 모색해 가는 처절한 사투의 노력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었습니다. 또한 '수행성'이라는 개념으로 페미니즘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지평을 열고 있는 주디트 버틀러의 작업을 비롯하여, 서양과 동양을 근본적인 이타성(異他性)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는 프랑수아 쥘리앵의 중국 탐구, 문명 사회의 진로를 예술가적 직관으로 예견하고 있는 SF 작가 및 영화 감독들의 미래 탐구에 대한 조명도 포함되었다면 좋았을 뻔했습니다.

▶김상환=아쉬운 점은 두가지였습니다. 마르크스적 전통을 이어가는 좌파 지식인들의 계보를 통시적으로 정리해 보는 기사가 들어갔으면 했고, 영화감독들에 대한 기사도 없었습니다. 마르크스적 전통이야말로 서구의 실천적 지식인의 요람이기 때문이고, 영화는 오늘날 여러 예술적 장르 중의 하나도 아니고 대중예술로 그치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현대문화의 가장 중요한 성장점이자 모든 장르를 종합하되 역으로 모든 장르에 영향을 미치는 현대예술의 꽃이 아닙니까.

▶임지현='세계 지식인 지도'에 언급할 만한 대표적인 지식인을 한국 사회가 아직 생산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안타까웠습니다. 이것은 지식의 생산과 소비구조를 비롯한 한국 사회의 지식 재생산 구조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는 증거이며, 따라서 서양 따라하기가 아니라 한국사회의 '차이'에 대한 명확한 인식 아래 서구에서 생산된 지식을 어떻게 전유할 것인가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김성기=우리 시각의 균형을 잡는다는 취지에서 볼 때, 이를테면 독일 철학자 슬로터디히크의 문제적 논의 ('냉소적 이성 비판')나 미국 지식계의 이념 논쟁인 '문화 전쟁' 혹은 '정치적 공정성(PC)' 논의가 빠졌지요. 또 당대 지식계의 현장 소식을 실시간으로 수렴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데이비드 브룩스의 『보보스』 같은 책이 화제가 되었을 때, 그에 대한 다른 비판적 시각이 함께 소화되지 못했던 경우도 그런 사례입니다.

정리=정재왈 기자

□ 제1부 20세기에 대한 거역

1圖 촘스키의 야만사회비판(1월 1일)

2圖 캘리니코스와 IS(국제사회주의)그룹(1월 11일)

3圖 사이드의 反오리엔탈리즘(1월 18일)

4圖 전통적 과학관의 반역자들(2월 1일)

5圖 중남미작가들-붐에서 포스트붐으로(2월 8일)

6圖 이리가레의 페미니즘(2월 15일)

□ 제2부 세계화의 도전과 응전

1圖 월러스틴과 세계체제론(2월 22일)

2圖 후쿠야마와 '역사는 끝났다'(3월 8일)

3圖 反세계화 사령탑 『르몽드 디플로마틱』(3월 15일)

4圖 크루그먼과 국제무역 새로 읽기(3월 22일)

5圖 소로스와 電子투자가 집단(3월 29일)

6圖 反세계화 행동대 NGO(4월 11일)

7圖 다국적 연구집단 '거대과학'의 기수들(4월 19일)

8圖 사이버시대의 혁명가 마르코스(4월 25일)

□ 제3부 기로에 선 모더니티

1圖 단턴과 포스트모더니즘 역사학(5월 3일)

2圖 낭시와 라쿠라바르트의 해체철학(5월 10일)

3圖 '성찰적 근대화론'의 기수 벡.기든스.래시(5월 17일)

4圖 지젝의 정신분석학 '새로 읽기'(5월 24일)

5圖 스피박의 '서구 배움에서 벗어나기'(5월 31일)

6圖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의 기수들(6월 7일)

7圖 카오스와 복잡계 과학의 선구자들(6월 14일)

□ 제4부 새로운 환경을 위하여

1圖 에드워드 윌슨의 '바이오필리아'(6월 21일)

2圖 바이츠제커의 '생태적 효율혁명'(6월 28일)

3圖 월드워치연구소 사령관 레스터 브라운(7월 5일)

4圖 생태여성주의 여전사 반다나 시바(7월 12일)

□ 제5부 21세기의 억압과 해방

1圖 美 흑인문학의 대모 토니 모리슨(7월 19일)

2圖'공동체주의'의 두 축 테일러와 매킨타이어(7월 26일)

3圖 네그리와 자율주의 정치철학(8월 2일)

4圖 현대 평화학의 창시자 요한 갈퉁(8월 9일)

5圖 '해방철학'의 사도 엔리케 두셀(8월 16일)

6圖 이반 일리치의 현대 산업문명 비판(8울 23일)

□ 제6부 문화와 예술의 새 천지

1圖 성찰적 정보사회론자 마누엘 카스텔스(8월 30일)

2圖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 백남준(9월 6일)

3圖 미래예술의 산술 MIT 미디어 랩(9월 20일)

4圖 미니멀리즘 음악 기수 스티브 라이히(10월 4일)

5圖'문화연구'의 대부 스튜어트 홀(10월 11일)

□ 제7부 새로운 정신과 물질공간의 전개

1圖 나노테크놀로지의 자존심 리처드 스몰리(10월 18일)

2圖 환상문학의 최고봉 어슐라 르 귄(10월 25일)

3圖 인지과학의 선구자 대니얼 데닛(11월 1일)

4圖 인간지놈 초안 작성 크레이그 벤터(11월 9일)

5圖 정신분석학 새 지평 연 자크 알랭 밀레(11월 15일)

6圖 테크노사이언스의 여전사 도나 해러웨이(11월 22일)

□ 제8부 새로운 21세기를 향하여

1圖 가까운 미래의 지적 풍토-한 자유주의자의 전망(11월 29일)

2圖'그들만'의 세계에서 '우리들'의 세계로-주변부의 시선(12월 6일)

※지난 기사는 인터넷신문 조인스닷컴(http://www.joins.com)을 클릭하신 후 '기획.연재.쟁점 시리즈'의 국제면에 들어가면 보실 수 있습니다. 이 시리즈는 내년 초 단행본으로 엮어져 출간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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