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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만난 사람] 구세군 경북지방본영 박희헌 장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1891년 12월 24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연안에서 배 한척이 폭풍우에 좌초됐다.

생존자들은 추위와 굶주림에 지친 채 구세군(救世軍)회관에 수용됐지만 옷도 음식도 너무 부족했다.이 때 한 여자사관이 수프냄비를 거리에 내다 걸고 “이 냄비를 끓게 합시다”고 호소했다.

이제는 세밑 거리의 익숙한 풍경이 된 구세군 자선냄비의 시작이다.

대구 ·경북에서도 동성로 대구백화점 앞,포항 롯데백화점 앞 등 20곳에 다음달 8일부터 자선냄비가 내걸린다.

박희헌(朴喜憲 ·61 ·참령)구세군 경북지방본영 장관은 요즘 이 행사를 준비하느라 눈코 뜰새가 없다.12월 24일까지 1천여명의 구세군 병사가 거리로 나서 17만명이 참여,1억1천만원을 모금한다는 목표를 잡았기 때문이다.

“모든 지표가 뒷걸음질쳤던 외환위기때도 자선냄비는 성장을 멈추지 않았다”는 朴장관은 “IMF 위기도 자선냄비는 피해 갔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로 45년째 자선냄비를 들고 거리로 나선다.朴장관은 중학교 2학년 크리스마스날 구세군에 입교했다.

“그 날 만난 한 구세군 사관의 제복이 너무 멋있어 보였다”는 그의 소년다운 꿈이 오늘까지 이어진 것이다.

아내와 3남매의 자녀 중 두사람도 사관으로 임관해 구세군 가족이다.1967년 정위로 임관한 뒤 15년 만인 82년 참령으로 승진,지난해 8월까진 부산·경남지방 장관을 지냈다.91년엔 영국의 본영 구세군만국사관학교도 수료했다.

일반인들이 자선단체쯤으로 아는 구세군은 장로교·감리교 등처럼 개신교의 한 교파다.

19세기말 영국에서 부자와 가난한 사람을 차별하는 교회의 풍조에 반발해 거리에서 설교를 시작하면서부터다.‘하나님의 군대’를 자처하며 자선 및 사회사업을 통한 구원을 선교 사명 이상으로 추구한다.웅장하고 호화로운 교회보다는 어려운 이웃을 위한 사업을 더 중시하기 때문에 교회를 치장하기 위한 지출은 모두 본영의 승인을 받아야 할 정도다.

경북지방본영도 칠곡택지지구의 아파트 한채를 얻어 지방장관의 숙소를 겸해 쓰고 있다.

연말에 자선냄비를 통해 모금한 돈은 이듬해 어려운 이웃들에게 전액 지출되며 교회헌금의 60%도 자선사업에 지출하고 있다.

구세군의 계급은 병사·하사관(교직자) ·정위(목사) ·참령(지방장관급) ·부정령 ·정령 ·부장 ·대장 순이며,각 나라의 구세군사령관은 부장계급이다.

거의 반세기동안 자선냄비를 지켜 온 朴장관에겐 잊혀지지 않는 얼굴들도 많다.

스스로 냄비를 뒤지며 “바로 나를 도와달라”고 떼를 쓰는 취객으로부터 돼지 저금통을 통째로 냄비에 넣고 가던 고사리 손 등.한마디 말도 없이 거액의 수표를 냄비 속에 던지고는 사라지는 얼굴없는 사람들도 영하의 겨울 추위를 잊게 하는 사람들이다.

朴장관은 “어려운 이웃과 진정으로 함께 하는 교회라는 점에서 지금도 어린 시절의 입교결정을 자랑스러워 한다”며 구세군 외길을 가고 있다.

정기환 기자

◇박희헌 장관은...

▶1940년 충북 영동군 삼천면 출생

▶ 57년 대전고 졸업

▶ 67년 구세군사관학교 졸업(정위 임관)

▶ 74년 장로교 목회신학원 졸업

▶ 82년 참령 승진

▶ 91년 영국 구세군만국사관학교 졸업

▶ 97년 부산경남지방본영 장관

▶2000년 8월∼현재 경북지방본영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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