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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논단] 아프간인들의 자결권 존중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유엔은 붕괴 직전에 놓인 탈레반 정권을 대체할 새 정부를 아프가니스탄에 세우려 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에는 정치적.사회적 이해 관계를 달리하는 여러 종족이 있어 새 정부 수립 과정에서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아프가니스탄 주변국들의 입김이다. 특히 주변국들은 아프가니스탄 국민의 자결권(自決權)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의 이해만을 관철하려 하고 있다.

과거 탈레반 정권을 지원했던 파키스탄은 이번에도 큰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고 있다. 특히 파슈튠족이 주축이 되는 신 정부 수립에 주도적 역할을 하길 원한다. 파슈툰족은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의 국경 양쪽 지역에 모두 살고 있고 탈레반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

파키스탄은 '온건한'탈레반이 새 정부 수립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경 너머에 친 파키스탄 정부를 두고 싶어하는 것이다. 파슈툰족은 전체 인구의 40% 정도를 차지하고 있지만 유일무이한 대표성을 보장받는 것은 아니다.

아프가니스탄 주변국인 러시아.이란.인도는 오래 전부터 파키스탄의 이같은 구상에 반대해 왔다. 따라서 러시아 등은 탈레반 정권 축출에 앞장서고 있는 북부동맹이 신 정부 수립 과정에서 주도권을 잡는 것에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이란은 같은 종파인 이슬람 시아파 교도들이 두드러진 역할을 하길 원한다.아프가니스탄의 시아파 교도는 전체 인구의 15~20% 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러시아와 인도는 북부동맹 안의 타지크족에 기대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북쪽의 우즈베키스탄은 러시아.타지키스탄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북부동맹의 압둘 라시드 도스툼 장군 등 같은 우즈벡족을 지원해 왔다. 하지만 도스툼 장군이 이끄는 부대는 과거 아프가니스탄에서 인권 유린 범죄를 저질렀다는 약점을 안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인들이 주변국들의 간섭과 영향력에서 벗어나 스스로 미래를 결정하도록 돕기 위해서는 유엔.미국 등이 먼저 주변국들과 일정한 거리를 둘 필요가 있다.

이런 원칙이 지켜져야만 아프가니스탄인들 스스로 종족간 권력 분점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정치질서를 성공적으로 수립할 수 있다. 아프가니스탄인들은 외세의 간섭이 비교적 적었던 1930~78년 에 종족 문제 등을 슬기롭게 해결했고 그 결과 이 지역에서 가장 안정되고 평화로운 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종족간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많은 파슈툰족이 파슈툰 거주 지역 밖에 살면서 파슈툰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우즈벡.타지크.하자라 등 다른 종족들도 수십년간 파슈툰 거주 지역에서 생활해 왔다.이처럼 '잘 섞이는' 아프가니스탄인들의 특성을 존중해야 한다. 79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고, 이어 파키스탄 정부가 파슈툰족이 주축이 된 탈레반을 지원하기 전까지는 이런 원칙들이 잘 지켜졌다. 아프가니스탄은 하나의 정치 체제로 간주돼야 한다.

아민 사이칼<호주 국립대 이슬람연구소장.iht 23일자 칼럼>

정리=김준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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