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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포럼] 연예인을 바라보는 짝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단속으로 연예계가 초비상이라고 한다. 탤런트 황수정씨가 히로뽕 투약 혐의로 구속된 데 이어 가수 '싸이'가 대마초 흡입 혐의로 구속된 탓이다.

기성세대는 "아니, 예진 아씨가?"하고 놀라고 10대들은 "아니, 싸이가?"하고 놀라워한다. 누굴 보고 놀랐건 결론은 같다. "정말 연예인들이란…(별수 없어)."

*** "어떻게 공인이 그럴수가…"

우리에게 연예인은 과연 우상인 것일까.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연예인을 바라보는 우리의 한 눈은 대중산업의 꽃인 '스타'를, 다른 한 눈은 풍각쟁이 시절의 '딴따라'를 각각 향해 있다. 10대의 인기를 업고 스타덤에 오른 연예인들이 매스컴에 나와 앳된 얼굴로 "공인으로서의 책임" 운운하면 "아니, 지들이 무슨 공인이야?(딴따라지)"하며 열을 올리다가 사회적 물의를 빚으면 "어떻게 공인이 그럴 수가…"하며 일반인의 경우보다 열 배는 더 분노한다.

이러니 연예인들도 평상시엔 '공인'임을 내세우다가 자신이 궁지로 몰리면 "공인이라고 하는데 솔직히 무엇이 공인인지 모르겠다(언제 공인 대접을 해주기나 했나)"는 식이다.

전 미국 대통령 법률고문인 존 딘 변호사는 한 기고에서 공인을 명쾌하게 정의하고 있다. 미국 판례는 저명성으로 인해 사회적인 일에 역할을 맡거나 공공의 의문을 해결해 낼 것으로 생각하는 이를 일반적으로 공인(Public Figures)으로 삼는다.

공인에는 완전한 공인과 제한된 취지의 공인, 본의 아니게 된 공인 등 세 유형이 있지만 인기 연예인은 설득력과 영향력이 아주 커 모든 취지가 다 공적으로 해석된다고 그는 풀이한다. 소비자운동가인 랠프 네이더와 배우인 줄리아 로버츠,만능 엔터테이너인 마돈나가 같은 반열의 공인이란 뜻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연예인이 공인일까.이를 가늠하려면 평소 얼마나 우리 사회가 그의 영향력을 인정해 왔는가를 따져보는 것이 우선일 듯하다.

그런데 이보다 더 우스꽝스러운 일이 있다. 사회적 물의를 빚은 연예인을 바라보는 눈마저 짝눈이라는 사실이다.

섹스비디오 사건의 당사자인 영화배우 오현경씨와 가수 백지영씨에 대한 사회적 응징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오씨는 수년 만에 블록버스터급 해군영화 '블루'에 캐스팅됐으나 "섹스 비디오 주인공에게 (신성한)해군복을 입힐 수 없다"는 해군측의 거센 반발에 부닥쳤다. '그래도 내게는 노래가 있다'며 처절하게 콘서트로 가수의 생명을 이어가던 백씨도 SBS.MBC의 토크쇼에는 겨우 얼굴을 디밀었지만 정작 본업인 가수로서는 아직도 희망이 난망이다.

섹스 비디오를 미끼로 협박했다며 전 매니저를 고발한 탤런트 이태란씨도 일감이 대폭 줄었다. 삼각 스캔들에 휩싸인 탤런트 손태영씨는 쫓기듯 프랑스로 출국했지만 상대방들은 건재했다. 심지어 오씨의 섹스 비디오에 등장한 남성은 이 덕에 유명해져 방송 프로그램까지 맡는 '공인'이 됐다.

사건 전 인기의 판세는 어떠했을지 몰라도 사건 후 사회적 비난의 수위나 매스컴의 관심도를 따라 잡기엔 싸이는 황수정씨에게 역부족이다. 매스컴들은 싸이와는 달리 황씨에 대해서는 앞으로 연예계 활동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결론까지 가차없이 내리고 있다.

*** 남성에만 왜 관대해질까

사실, 후배를 성폭행했건, 유부남으로 간통을 했건, 대마초를 피웠건 간에 남성 연예인들은 어렵지 않게 재기한다. 짝눈이인 우리들이 너그럽게 봐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길이 밝든, 어둡든 상관없이 여성 연예인들은 비록 피해자일 경우에도 다시 얼굴을 보기 힘들다. 짝눈이인 우리들이 엄격한 도덕성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캥은 "도덕심은 잘못된 내 행동이 발각돼 비난받지 않을까, 처벌받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서 나온다"고 했다. 그러나 짝눈이들이여, 기억하라. 도덕심을 요구하는 잣대가 특정 성에만 과도하게 적용된다면 더 이상 가치를 지니지 못함을.

홍은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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