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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사각지대…휘청대는 신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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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997년 12월 23일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회의실.

예금은 물론 조합원 출자금까지 정부가 대신 물어주도록 한 신용협동조합법 개정안을 재경위 의원들이 발의했다.

"서민 금융기관의 예금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신협을 예금보호 대상에 넣어야 한다."(한나라당 J의원)

"신협은 경리 전문가도 부족한데,예금보호 범위를 이런 식으로 확대하면 안된다."(자민련 L의원)

개정안은 결국 엿새 뒤 열린 재경위 전체회의에서 통과됐다.

민주당 C의원은 "신협에 공적자금을 넣어도 1천억~2천억원이면 될 줄 알았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그 뒤 1백83개 단위 신협에 무려 1조9천5백21억원의 공적자금이 들어갔다.

#2000년 1월 신협중앙회 이사회.

주식과 주식형 수익증권 등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 한도를 여유자금의 10%에서 40%로 늘렸다. 99년 2월 정부가 규제를 완화한다며 신협법에 명시된 중앙회의 위험자산 투자 한도를 폐지했기 때문에 중앙회 임원들이 모여 내부 규정만 고쳐 통과시켰다.

◇ 신협중앙회=6년 연속 적자를 낸 중앙회는 이를 만회하려고 단위 신협에서 고금리로 자금을 끌어들여 주식투자를 늘렸다. 99년 말 7백53억원이었던 주식투자 규모가 올 6월 말 6천5백62억원으로 급증했다.

지난 8월까지 중앙회가 단위 신협 자금을 받으면서 보장한 금리는 시중금리보다 높은 연 7.3%. 당시 새마을금고연합회는 6.5%, 농협중앙회는 6.2%를 주었다.

신협중앙회는 8월 23일에야 금리를 6.54%로 낮췄고, 최근에야 회사채 수익률에 연동해 금리를 정하고 있다.

사정이 이런 데도 중앙회의 책임경영 체제는 확립돼 있지 않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중앙회가 지난해 5, 6월 투자해선 안되는 외화증권에 2억1천만달러를 투자했는데 중앙회장은 한달 뒤인 7월에야 보고를 받고 사후 결재했다. 금감원 보고서는 "중앙회 임원이 조합 이사장 가운데 뽑은 비상근.명예직이고 금융업에서 얼마나 일했는지를 따지지 않아 전문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금감원이 경영개선 명령을 내리더라도 중앙회가 따르지 않을 경우 금융기관이 아니라서 달리 제재할 방법이 없는 점도 문제다. 금융기관 임직원의 경우 금감원 조치를 어기면 금융산업구조개선에 관한 법률에 따라 '1년 이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 벌금'을 매길 수 있다.

◇ 단위 신협=97년 말 1천6백66개에서 9월 말 1천2백73개로 줄었다. 파산한 신협의 89%가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한 지역신협이다. 중앙회 관계자는 "단위 신협은 예대마진 외에는 수입이 거의 없다"며 "외환위기 이후 대출이 줄고 금리도 내려가면서 경영난을 겪는 곳이 늘었다"고 말했다.

도덕적 해이도 나타났다. 경기도 A신협 관계자는 "설령 문제가 생겨도 1인당 5천만원까지 예금은 물론 출자금도 정부가 돌려준다. 그래서 조합원들은 이자만 많이 준다면 어떻게 운영하는지에 대해선 별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정부의 감독도 허술하다. 1천2백73개 단위 신협을 감시하는 금감원 인원은 겨우 11명. 1인당 1백개가 넘는 신협을 감독하는 셈이다.

지난달 문제가 된 경기도 파주신협은 경영진이 지난해부터 고객 예금을 빼돌려 주식투자를 했지만 금감원은 문제가 터지기 한달 전에야 눈치챘다.

예금보험공사 관계자는 "외환위기 이후 신협이 숱하게 망했는 데도 아직도 수기(手記)통장을 쓰는 곳이 있어 횡령 등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그동안 부실한 단위 신협이 상당수 정리돼 지금은 건실한 곳이 더 많다"며 "하지만 중앙회의 부실이 떠넘겨지면 문제가 심각해진다"고 말했다.

◇ 정부 대책=금감위는 지난 9일 중앙회가 제출한 ▶지급금리를 내리고▶위험자산을 내년까지 여유자금의 5%로 낮추고▶9백57억원어치의 부동산을 매각하는 내용의 정상화 계획서를 승인했다.

하지만 중앙회의 주식투자 규모가 크고, 임직원의 전문성이 떨어지는 등 문제가 간단치 않아 금감위는 중앙회의 정상화 계획으론 충분하지 않고 법을 개정해 문제점을 떨어내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예를 들어 중앙회가 출자금 2백86억원의 전액 감자(減資)를 추진하고 있지만, 내년 총회에서 부결될 경우 마땅한 제재 수단이 없다는 것이다.

법 개정안을 만든 금감원은 정치권의 반대 등 난관이 많아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법 개정안을 건네받은 재경부는 더 고민스럽다.

재경부 관계자는 "신협법은 국회에서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더 고약하게 만드는 경우가 있었다"며 "우리 마음대로 개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고 털어놓았다. 금융연구원 김병덕 연구위원은 "각 지역에 기반을 둔 신협이 지역 정치인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등 경제외적 요소가 작용해 왔다"고 지적했다.

고현곤.차진용.이상렬 기자

<금감원의 법 개정안>

①예금자보호법을 고쳐 단위 신협의 출자금을 예금보호 대상에서 제외=문제가 생긴 단위 신협에 대해선 조합원에게 출자금 원금을 돌려주지 않고, 출자지분 비율을 따져 손실을 분담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조합원이 출자금 범위 안에서 유한(有限)책임을 지도록 하면 경영을 열심히 감시하는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②중앙회의 위험자산 투자 한도를 여유자금의 5%로 줄이는 조항을 신협법에 명시=중앙회 스스로 내년 말까지 위험 자산을 5%로 줄이겠다고 약속했지만, 법으로 강제해야만 그 약속이 지켜질 수 있다고 금감위는 보고 있다.

③중아회에 전문경영인 두명을 상근 부회장으로 임명=중앙회운영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다. 임직원이 법규를 준수하는지 감시할 준법감시인도 별도로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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