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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합 테마여행] 논산에 감 따러가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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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난생 처음 부모 품을 떠나 입영열차를 타고 군에 입대하던 날. 황산벌에서 불어오던 바람은 어찌도 그리 매서웠던지….

무거운 M1 소총을 머리에 인 채 오리걸음으로 각개전투장으로 향하는 까까머리 훈련병의 뒷덜미를 바람은 사정없이 때리며 지나갔습니다.

육군 신병훈련소가 있는 충남 논산은 대한(大韓)의 남아라면 한번은 경험했던 추억의 고향입니다.

그런가 하면 TV 사극 '왕건'으로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후백제 견훤의 능과 국내 최대 석불인 관촉사 은진미륵이 있습니다.

'얼차려'기억 때문에 '고개조차 돌리지 않기'에는 너무 볼거리가 많은 역사의 고장이기도 합니다.

계절은 이미 겨울의 문턱을 넘어섰습니다. 지난 주에는 대청봉에 첫눈이 내렸습니다. 한해를 보내며 지난 시절의 모습을 되새겨 볼 수 있는 논산으로 주말 나들이를 떠나보세요.

◇ 감이 익는 마을=호남고속도로 서대전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논산 방향으로 국도 1호선을 타고 연산네거리에서 좌회전한다. 양촌면 소재지를 1㎞ 정도 지나 정자나무가 있는 삼거리에서 우회전하면 2백50여 농가가 감농사를 짓는 곶감 마을(충남 논산시 양촌면 임화2, 4리.양촌1, 2리)에 닿는다.

고샅길을 따라 걸으면 집집마다 새끼줄에 매달린 감들이 무공해의 햇살과 바람을 받으며 숙성되고 있다.

10월 말 딴 땡감의 껍질을 깎아 말리는 것으로 주황색 감 빛깔이 짙어지면서 12월 하순께는 감 표면에 하얀 가루가 생기기 시작한다. 감의 당분 성분이 응고되는 것이다.

잎사귀가 다 떨어진 나무에는 홍시를 매달고 있는 가지가 축 늘어져 있다. 익을 대로 익은 감 중 하나가 '툭 -'하고 농가 지붕 위로 떨어진다.

올해는 날씨가 불규칙해 수확 시기를 놓치는 바람에 결국 따지 못한 감들이 많다고 한다.

"까치밥으로 남기기엔 너무나 많아 보인다"고 너스레를 떨고서 임화4리 이장 현용헌(47.041-741-2294)씨 부부를 부추겨 장대를 들었다.

장대의 V자 형 끝부분을 감이 열린 가지에 걸어 조심스럽게 비틀면 그만이다.

도시인들이 맛보는 홍시는 땡감 상태에서 따서 박스 속에서 익은 것들이다.

그런 홍시들이 서리와 바람을 맞으며 자연스레 익은 것들의 맛을 따라올 수 있을까.

◇ 논산 역사 기행=양촌에서 지방도로 6백2호선을 타고 연무 방향으로 4.2㎞를 가면 도로 좌측 불명산(佛明山) 기슭에 고려 초기에 세워졌다는 쌍계사(雙溪寺.양촌면 중산리)가 있다. 경남 하동 쌍계사처럼 유명하지는 않지만 대웅전의 꽃문살이 아름답다.

정면 3칸인 대웅전의 6개 문짝은 국화.작약.모란.태극.연꽃.무궁화 등 6가지 문살로 돼 있는데 화려하면서도 단아한 맛이 운치가 있다.

공양주 보살은 "문양은 밖보다 안에서 보는 맛이 그만"이라고 설명한다. 밖에서는 각양각색이던 꽃문살이었으나 대웅전 안에서 보니 창호지의 흰 빛과 창살의 검은 그림자가 은은하면서도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쌍계사에서 승용차로 4분 거리에 사육신(死六臣) 중 한 사람인 성삼문의 묘(가야곡면 양촌리)가 있다. 성삼문의 육신(肉身)을 팔도에 조리돌리던 중 시신 일부를 지고 가던 인부가 덥고 귀찮아 시신에 욕설을 퍼붓자 "아무데나 묻어라"라는 소리가 들려 이곳에 묻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계속 지방도로를 따라 연무읍으로 가면 견훤왕릉(연무읍 금곡리)이 있다. 왕릉은 지대가 높아 연무읍은 물론 멀리 전주까지 굽어보고 있다.

봉분은 둘레가 83m에 이르지만 장식이 없어 왕릉치고는 초라해 보인다. 최근 드라마 '태조 왕건'이 인기를 끌면서 이곳을 찾아오는 외지인들이 부쩍 늘었다.

이어 연무읍에서 논산방향으로 국도 1호선을 달리면 관촉사(觀燭寺.논산읍 관촉리)에 닿는다.

반야산 중턱에 자리잡은 이 절에는 국내 최대의 석불인 은진 미륵이 있다. 고려 초기 광종 때부터 조성되기 시작해 7대 목종 때에 완성된 불상이다.

불심(佛心)이 불상의 크기에 좌우되는 것은 아니겠으나 19m 높이의 부처 앞에서는 누구나 고개를 조아리게 된다.

석불 앞 미륵전은 조선 후기에 세워진 것으로 최근 개보수를 했다. 미륵전 안에 불상을 모시지 않고 정면의 창을 통해 미륵을 보도록 만들었다.

관촉사에서 논산읍내를 거쳐 국도 1호선을 타고 다시 연산네거리를 지나면 왕건이 지었다는 개태사(開泰寺.연산면 천호리)를 만나게 된다.

왕건이 황산벌에서 견훤의 큰 아들 신검으로부터 항복을 받아 통일대업을 이루고 그 다음해에 지은 절이다. 당시의 유적으로는 5백명분의 밥을 지을 수 있는 대형 가마솥과 석조 삼존불 정도가 남아있다.

역사적 의미가 큰 절이지만 도로변에 이정표가 없어 그냥 지나치기 쉽다. 개태사역 맞은편에 있으며 도로 우측의 '약수가든'이라는 식당의 간판을 보고 우회전하면 된다.

논산=글.사진 성시윤 기자

*** 여행 쪽지

논산시에는 이밖에도 조선 후기 사대부가의 가옥인 윤증 고택(노성면 교촌리), 조선 영조 때 만들어졌다는 강경 미내다리(채운면).5천병사를 데리고 황산벌에서 5만명의 신라 병사와 맞서다 숨진 계백 장군 묘(부적면 신풍리)등 역사 유적이 수없이 많다.

논산시내 유적을 두루 돌아보려면 최소한 1박2일 이상의 일정을 잡아야 한다. 강경읍과 연산면에 숙박업소가 밀집해 있다. 논산시청 홈페이지(http://www.nonsan.chungnam.kr)에서 테마별 여행 코스를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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