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국책 연구원이 할 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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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요즘 경제인들은 모이면 중국 이야기다. 발빠른 기업들은 앞다퉈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는 중국 배우기에 나섰다. 우리만 그런 게 아니다. 일본은 더 열심이다. 생산과 제품 개발을 중국 중심으로 다시 짜고 있다.

'화류(華流)열풍'은 대학가에도 불고 있다. 대학 수시모집에서 중국어과의 경쟁률이 영어과보다 높다.

***민간보다 늦은 전문가 포럼

민간은 이렇게 저만치 달려가는데,정부는 지난달 11일에야 중국 전문가 포럼을 만들었다. 재정경제부가 주도해 정부와 민간기업, 대학과 연구소,경제단체의 전문가로 구성했다.

분기마다 모여 정보를 교환하고 기업의 애로사항을 들어 정책에 참고하겠단다. 지난달 30일에는 산업자원부가 꾸민 민관(民官)반도체 산업 시찰단이 중국을 찾았다.

중국이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게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의류와 신발.가구.완구.유선전화기.라디오카세트.조명기구 등은 이미 중국이 한국산의 다섯배 이상을 수출한다.1998년 1억3천만달러어치를 수출하며 우리가 세계 1등이라고 자랑했던 낚싯대마저 올 들어 중국에 밀렸다. 무역협회 조사 결과 최근 2년 사이 한국산을 추월한 중국산이 86개나 된다.

차이나 쇼크는 무섭게 닥쳐왔는데, 우리 정부는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야 중국을 연구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우리가 중동의 오일 달러로 재미를 본 지 30년이 다 돼간다. 그럼에도 변변한 국책 중동연구소 하나 없다. 평소 신경쓰지 않다가 원유 값이 뛰면 허겁지겁 산업자원부 장관이 중동으로 달려가곤 한다.

얼마 전 중동 지역 전문 컨설팅업체가 생겼다. 아랍 말을 하고 지역 사정에 밝은 교수와 강사들이 모여 만들었다. 설립한 지 사흘 만에 미국에서 테러가 터져 걱정했는데, 오히려 이슬람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찾는 사람이 늘었다고 한다.

자원이 부족한 우리로선 다른 나라에 물건을 팔아야 먹고 살 수 있다. 그러려면 먼저 다른 나라, 특히 큰 시장을 잘 알아야 한다. 그렇다고 개별 기업이 스스로 이 문제를 해결하긴 어렵다. 여기서 국책 연구원이 할 일이 나온다.

정부가 돈을 대 만든 국책 연구기관은 모두 42개다. 이 중 한국개발연구원(KDI)과 산업연구원(KIET) 등 14개가 경제 분야를 연구한다. 이들 14개 연구원의 전체 인력은 1천5백14명,그 중 박사가 5백95명이다.

정부가 올해 예산에서 대준 돈은 8백84억원으로 적은 게 아니다. 그럼에도 상당수 국책 연구원이 재정.금융 등 거시경제 연구에 매달려 있다. KDI도 KIET도 성장률이 어떻고 경상수지가 얼마나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서로 눈치 보며 참고하는 경우도 있다.'○○정책연구원'이란 이름에서 엿볼 수 있듯 정책 연구에 치중한 나머지 정작 시장과 경제주체(기업과 가계)가 원하는 실질적인 정보는 뒷전이다.

진주만 공격 이후 미국과 일본이 전쟁 상황에 들어가자 일본은 그동안 학교에서 해온 영어 교육과정을 줄였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미국은 일본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을 더욱 많이 키웠다. 전쟁은 미국의 승리로 끝났다.

14개 국책 경제연구원 가운데 중국의 산업은 어디서 가장 잘 아는가. KIET와 대외정책연구원.KDI 등이 있지만 조금씩 알지 깊이가 없다. 중국 산업을 성장률과 물가 등 거시경제 지표로 먼저 이해하려 든다.

***기업 조사부식으론 안통해

우리가 치열한 세계 경제전쟁에서 이기려면 국책 연구원부터 구름 위에서 내려와야 한다. 국가 전략과 미래의 산업을 생각해야 한다. 깊이도 없으면서 이것저것 잡다하게 늘어놓는 식으론 통하지 않는다. 은행이나 기업의 조사부 식으론 안된다.

특화해서 구체적으로 깊게 들어가야 한다. 연구원별로 중국은 물론 미국.러시아.일본 등 한반도를 둘러싼 4강을 하나씩 책임지도록 맡기자. 인도와 중동 등 큰 시장과 함께 아직 남들이 눈여겨 보지 않는 틈새시장에 대한 연구도 필요하다.

양재찬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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