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션와이드] 장돌뱅이 인생에 희망을 걸고

중앙일보

입력 2001.11.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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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저자거리에 어김없이 모습을 드러내는 장돌뱅이.좌판을 펼치면 그곳이 가게요,그 앞에 모이는 사람이 고객이며,자동차가 집이고,길이 친구다.각종 축제 장소와 5일장 ·7일장을 따라다니는 장돌뱅이들의 삶을 엿본다.

#각설이 타령에 호박엿 동나네

볼과 이마에 연지 ·곤지를 찍어 바르고 치아가 빠진 것처럼 검정 칠을 해 우스꽝스런 모습으로 분장한 얼굴.빨강 노랑 등 갖가지 색상의 천을 덧대 덕지덕지 기운 흰색 바지 ·저고리와 가슴에 드러난 여자 속옷에 구멍나고 헤진 벙거지.

한쪽 발은 흰 고무신에 빨간색 양말,한쪽 발은 검정 고무신에 파란색 양말을 신고 허리에는 깡통과 숟가락을 비롯한 온갖 잡동사니들이….

10월 30일 밤 전남 나주시 남고문 앞 ‘배 축제’행사장의 각설이 엿장수 조상철(34 ·경남 통영시)씨는 손수레 밑의 앰프에서 빠른 템포의 트로트 노래가 흘러나오자 신나게 춤을 춰댔다.넓적한 가위가 철커덕거리며 박자를 맞추고 엉덩이와 어깨에 점차 흥이 배어난다.

재미는 있지만 주머니가 가벼워 그냥 지나치려는 이들에겐 장난을 걸고 엿 조각을 입에도 넣어준다.

“얼마나 열심히 까부느냐에 따라 매상이 팍팍 달라짐더.먹꼬 살라꼬 헝그리정신으로 하지라.”

호박엿 한 곽에 2천원씩 받지만 하루 매출은 대중이 없단다.행사가 없어 공치는(일을 하지 않고 노는)날도 많아 평균을 낼 수 없다는 설명이다.

택시운전을 하다가 3년 전 엿장수로 변신했고,분장과 가위질 등은 다른 각설이들이 하는 걸 어깨 너머로 배웠다.

“난 우리 동네에서 엿장사를 시작했심더.다른 엿장수들은 넘사스럽다고(창피하다고)자기 고향 행사에는 잘 안 가는디 난 안 가립더.”

조씨는 “네살짜리 아들이 있는데 12월이면 둘째가 나옵니더.부끄러울 것 없고,돈만 잘 벌린다면 어딘들 못가예”라며 다시 가위를 철거덕 거리기 시작했다.

#차에서 먹고자며 전국 돌지예

“안 가는 데 없심더.집엔 보름 만에 한 번 들를까말까.”

10월29일 밤 전남 나주시 남고문 앞의 배 축제 행사장에서 부인 허창희(47)씨와 함께 커피·호떡·오뎅 등을 팔던 노점상 손재곤(53)씨.축제 행사장을 찾아다니는 손씨가 부산시 당감3동 집에서 추석을 쇠고 가을 장사 길에 나선 것은 지난달 6일.경남 양산시 삼량문화제를 시작으로 그간 들른 곳이 열군데가 넘는다.

경북 경주시 신라문화제,포항시 영일만축제,예천군 군민제전,문경시 전통찻사발축제,구미시 구미축제,영주시 민속예술축제,김천시 시민체전.그리고 경남으로 넘어 와 창원시 단감축제,김해시 도자기축제.29일 전라도 땅으로 들어와 나주시 배축제를 보고 11월1일 고흥군의 유자축제로-.

신발공장 사장이었던 손씨가 부도 후 장돌림으로 나선지 올해로 7년째.승합차(이스타나)에 작은 손수레와 가스레인지,음식재료 등을 싣고,사람이 많이 모이는 축제 행사장들을 찾아가 장사를 한다.

“여관에서 자면 호강이지요? 차 안에서 새우잠을 자고 밥도 해 먹지예.세수도 못하는 날이 많고,다른 곳으로 이동하다 목욕탕이 보이면 들어가 한번씩 제대로 씻죠.”

간혹 행사 주최 측에서 참가자들에게 무료로 도시락을 나눠주고 이것으로 끼니를 때우는 동료 노점상이 많지만 손씨 부부는 절대로 얻어먹지 않는다.비록 떠돌이 장사꾼이지만 최소한의 자존심은 지키기 위해서다.

손씨는 “사업 실패 후 자살까지 생각하다 친척의 권유로 이 길로 들어섰다”며 “같은 장사꾼끼리 얘기하다보면 옛날에는 잘 나가던 사장님이었거나 대학원 공부까지 한 친구들도 적지 않다”고 귀뜸했다.

#실직 아픔 솜사탕 장사로 극복

10월28일 지리산 피아골에서는 용접공 출신 오영훈(42 ·전남 여수시 학동)씨가 자릴 펴고 있었다.여천석유화학단지에서 배관 용접 일을 하다 4년 전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실직하자 부인과 함께 1t 트럭을 몰고 각종 행사를 좇아 다니고 있다.

아직 아이들이 어려서 잠은 가급적 여수 집에서 잔다.그래서 가까운 광주·전남·경남지역 행사장을 주로 다닌다.

오씨는 손수레에서 솜사탕과 아이스크림을,부인 문혜숙(40)씨는 트럭 화물칸에 앉아 뻥튀기를 직접 튀겨 판다.5백∼1천원 짜리 상품들이지만 재미가 좋은 날은 벌이가 50만원을 넘는다.“지역축제가 많긴 하지만 우리 같은 사람을 못 들어오게 하는 경우도 있어요.장사꾼 수도 워낙 많아져 자리를 잡기도 쉽지 않고….”

오씨는 “전남 함평군의 꽃무릇축제 같이 알뜰하고 실속있게 치르는 시·군이 있는가 하면 예산을 엄청 들이면서도 엉망인 곳도 있다”는 축제 평가도 나름대로 했다.

#장시는 안되야,소일 삼아 왔지

“뭘 할라고 자꾸 물어봤쌌는디야,귀찮게.”

10월27일 오전 전남 담양군 담양읍 천변 오일장터에서 만난 할머니는 처음엔 입을 벙긋도 하지 않았다.전북 순창에서 왔고 70살 먹었다고만 말할 뿐.

곧 점심인데 마수걸이도 못해 굶게 됐다는 말에 얼른 나무 궤짝 위의 좌판을 둘러보니 살 게 없다.사카린 ·당원 ·쥐약 ·검정고무줄 ·파리채 ·실타래 ·창호지 ·밥상포 등.얼른 홈-키파(파리 ·모기약 살충제)하나를 집어들고 2천원을 치르자 비로소 말문을 연다.

매달 1 ·6일은 순창읍 장,2 ·7일에는 담양 장,3 ·8일은 곡성읍 장,4 ·9일은 담양 옥과 장이나 남원 장,5 ·10 임실군 오수 장을 다닌단다.

“돈벌이가 예전에 비할 수 없어.스물다섯 때 동네사람 따라 나서 시작혔지.바깥양반 일찍 세상 떠버리고,혼자 이것 혀서 자식 다섯 먹이고 가르치고 여웠는디….”

장사는 안되지만 편해졌다.옛날엔 새벽 밥 해먹고 수십리 길을 걸어 다녔는데 요즘은 시외버스를 이용하니 힘이 안 들고 금방이다.무거운 물건을 이고 지고 할 필요도 없다.장이 파하면 부근 아는 가게에 맡겨 놓았다가 닷새 뒤 다음 장날에 와 찾아다 전을 펴면 된다.

할머니는 “자식들은 말리는디 용돈이나 벌라고 나온다”며 “시골에 사람이 없어 갈수록 장시가 안돼 사표를 내야 할랑갑다”며 담배를 빼 물었다.

이해석 기자

*** 통제보다는 양성화 '소망'

10월28일 오전 11시쯤 지리산 피아골 단풍축제가 열린 연곡사지구 주차장.천막을 치고 갖가지 음식을 팔던 고형인(56 ·부산시 모라동)씨와 그 옆에 천막을 치려 하는 30대 상인 사이에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우리 점포를 가리잖아.늦게 와서 무슨 경우야.”

“미안하지만 같이 좀 먹고 삽시다.”

몇번 대거리가 오갔을 뿐 다행히 물리적 충돌은 없었다.그러나 같은 상인들끼리 멱살잡이를 하기 일쑤라는 게 고씨의 설명이다.

장돌림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목이 좋은 자리를 확보하는 일이다.때문에 행사가 시작되기 전날부터 미리 자리를 잡아 두기도 한다.

지역상인 보호와 질서 유지를 내세워 행사장에 아예 못 들어오게 하는 경우에는 주최측과의 숨바꼭질과 눈치싸움이 치열하다.

공원 같은 곳에 장이 설 경우에는 밤새도록 숲이나 화장실에 숨어있다가 새벽부터 허가받은 상인들과 어울려 장사를 한다.

이런 방법이 통하지 않는 곳도 있다.광주시는 10월 17∼21일 중외공원에서 김치 축제를 하면서 개막 이틀 전부터 서울의 경비전문업체 청년들을 불러 24시간 보초를 세워 ‘무허가 장사꾼’들의 출입을 막았다.

하지만 도로 등 공개된 장소에서 열리는 행사 때는 골목길 등에 손수레 ·물건 등을 놓고 눈치를 보다가 수십명이 눈깜짝할 사이에 전을 펼친다.자리를 많이 차지하는 간이식당 같은 경우는 주변 점포나 주택 앞 공터 등을 주인에게 몇푼씩 쥐어주고 ‘반 합법적’으로 영업하기도 한다.

이같은 상인들의 편법을 막기 위해 전남도는 10월18∼22일 순천 낙안읍성에서 음식축제를 열기 앞서 주변 사유지 2천여평을 아예 주차장으로 만들어버렸다.대전시 유성구의 건강페스티벌(9월15∼16일)처럼 따로 저잣거리를 배정해주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행사장과 거리가 멀어 영업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장난감을 파는 김병완(46 ·충남 천안시 청당동)씨는 “축제는 좀 왁자지껄하고 풍성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단속에 불만을 나타냈다.행사에 방해가 되지 않는 수준에서 노점상들에게 일정한 공간을 내주고 주최측이 관리하면 좋겠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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