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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한글학자 한갑수 선생 별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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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한글 사랑과 전파에 한평생을 바쳐온 원로 한글학자 한갑수 선생이 21일 오전 6시 노환으로 별세했다. 91세.

1913년 경기도 가평에서 태어난 고인은 전북 고창고보를 졸업한 뒤 일본으로 건너가 41년 메이지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법학을 공부한 그가 한글 운동과 인연을 맺은 것은 광복 전인 1933년이었다. 조선어학회의 주도로 '한글 맞춤법 표준안'이 만들어진 것을 계기로 당시 20세였던 고인은 조선어학회 활동에 참여하면서 한글 운동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한다.

일본 유학 때 고인은 주오음대에서 성악을 공부해 음악학 석사를 받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48년에 서울대 음대에서 강의를 했다. 57년부터 60년 4.19 학생혁명 직전까지는 이기붕 국회의장의 비서실장도 지냈다.

한글학회 회장과 한글재단 초대 이사장을 역임했으며 모든 한글 관련 단체의 총집합체인 '한글 모두 모임'의 회장도 지낸 고인은 방송과 대중 강연을 통해 광복 이후 우리 사회에 올바른 한글 사용법을 뿌리내리게 하는 데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고인은 특히 무려 37년간 KBS 라디오를 통해 한글 강의를 한 것으로 유명하다. 1945년부터 82년까지 방송된 '바른 말 고운 말'프로그램이 바로 그것이다. 40대 중반 이후의 세대들에게 이 프로그램은 우리말의 중요성을 피부로 느끼게 해 준 '추억의 방송'으로 기억된다.

이현복 서울대 언어학과 명예교수는 "한글의 순화와 보급에 실천적으로 앞서 온 분"이라며 "음악에도 조예가 깊어 음악 강의도 하고 노래도 잘 한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저서로는 '원본 훈민정음 풀이' '바른말고운말사전' '국어대사전' 등이 있으며, 방송문화상과 외솔상.세계교육재단 평화문화상.한글발전유공 은관문화훈장 등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아들 상대(64.명지대 교수).상찬(60.토요신문 회장)씨와 딸 상현(68.호주 거주)씨 등 2남 1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 병원이며 발인은 24일 오전 9시다. 장지는 경기도 미금시 금곡동 선영. 2072-2014.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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