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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인 뉴스 <99>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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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8면

TV 드라마 주인공이 휴대전화를 꺼내 “이런 기능도 있다”며 자랑하는 모습, 본 적 있으시죠? CF 모델인지, 캐릭터 연기인지 헷갈리는 이런 장면, 대부분 협찬 광고주의 요청에 의한 겁니다. 상품명이나 로고를 변형하며 원제품을 감추려 하지만, 눈 가리고 아웅이죠. 하지만 올 1월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이 공표되면서 앞으론 달라집니다. 새로 도입되는 간접·가상 광고가 뭔지 알아봅니다.

강혜란 기자

2000년 개봉 영화 ‘캐스트 어웨이(Cast Away)’는 ‘현대판 로빈슨 크루소’ 척 놀랜드(톰 행크스)의 무인도 표류기를 그린다. 항공 택배회사 ‘페덱스(FedEx)’의 직원 척은 페덱스 전용기를 타고 가다 추락해 남태평양 섬에 홀로 남겨진다. 그는 비행기 잔해에서 찾아낸 소포들을 헤집으며 생존의 몸부림을 친다. 이 과정에서 페덱스 브랜드가 수시로 노출되고 조명되는 것은 물론이다.


이를 상품배치광고(PPL·Product Placement)라고 한다. PPL은 원래 영화를 제작할 때 소품 담당자가 영화에 사용할 소품들을 배치하는 업무를 이르는 말이었다. 끼워넣는 마케팅(embedded marketing), 스텔스 광고(stealth advertising), 협찬 고지, 협찬 광고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제품이나 서비스의 브랜드가 광고 맥락이 아닌 영화, TV쇼나 뉴스 프로그램 내에 등장하는 것을 일컫는다.

오락·드라마·교양 분야에 제한적 허용

드라마 ‘그대 웃어요’에 등장한 ‘마티즈 크리에이티브’. 남녀 주인공인 배우 정경호와 이민정은 GM대우의 경차 ‘마티즈 크리에이티브’의 TV와 라디오 광고모델로 나온다. [SBS 제공]

해외에선 광고 기법으로 발달해 왔지만, 국내 방송은 외형적으로 PPL을 엄격하게 규제해 왔다. 방송법 73조 1항(‘방송사업자는 방송 광고와 방송 프로그램이 혼동되지 아니하도록 명확하게 구분하여야 한다’), 방송위원회 규칙 ‘방송 심의에 관한 규정 제7절 간접광고’ 등에 의해서다. 이렇게 한 이유는 PPL이 시청자의 시청 주권과 방송의 공익성을 해친다는 판단에서다. 허용할 경우 인쇄 매체 등 타 분야의 광고시장이 위축된 상황에서 공룡 같은 방송광고의 파이만 키워 매체 불균형을 초래한다는 우려도 있었다.

그러나 규제에도 불구하고 PPL은 음성적으로 활성화돼 왔다. 특히 외주 제작이 늘어나면서 방송사가 주는 제작비만으로 충당이 안 된 외주 제작사들이 협찬사의 제작 지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다만 위법 소지를 피하기 위해 신선설렁탕을 진선설렁탕으로(‘찬란한 유산’), GM대우자동차를 GD자동차(‘파리의 연인’)로 바꾸거나 브랜드 로고를 변형·모자이크 처리했다.

이러다 보니 PPL이 오히려 상품·상표에 대해 궁금증을 유발시킨다는 지적이 나왔다. 가이드라인이 없는 상황에서 PPL의 비용과 노출 정도가 불분명하고, 실제 PPL 비용이 제작비에 얼마나 쓰이고 있는지 알 수 없는 것도 문제점이었다. 결국 정부는 매체 다변화에 따른 방송광고 활성화와 탈규제 선진화의 명목으로 이를 허용하기로 했다. 민영 미디어렙 도입에 따른 코바코(KOBACO·방송광고공사) 독점 체제 붕괴도 새로운 광고환경을 촉진시켰다.

개정 방송법은 PPL을 양성화해 간접광고라는 이름으로 투명하게 하길 권장한다. 어린이 프로그램과 보도·시사·논평·토론 등 객관성·공정성이 요구되는 프로그램은 제외하고, 오락·드라마·교양 분야에는 간접광고를 허용했다. 대신 프로그램 시간의 5%를 넘기지 않게 하고, 상표·로고 등 상품이나 서비스를 인식할 수 있는 표식의 크기는 전체 화면의 4분의 1을 초과할 수 없게 했다. 60분짜리 드라마는 3분간 스타의 착용물 등 소품 브랜드를 화면 사이즈의 25% 이내(DMB의 경우 화면 크기의 3분의 1 이내)에서 보여줄 수 있다. 대사를 통해 언급하거나 구매·권유하는 건 금지시켰다. 시작 전 자막을 통해 “이 프로그램은 ○○의 협찬을 받아 제작됐다”고 고지할 의무도 있다.

방송국·외주제작사 광고수익 놓고 갈등

신세계 백화점이 협찬한 KBS 드라마 ‘아가씨를 부탁해’. 신세계는 MBC 주말극 ‘민들레 가족’도 협찬 중이다. [신세계 제공]

시행령은 지난 1월 통과됐지만 간접광고는 아직 첫발을 못 뗐다. 가장 큰 이유는 광고 수익에 대한 배분 문제다. 중앙방송국과 지방방송국 법인이 따로 있는 경우, 중앙방송국은 제작비 개념이라 할 간접광고 수익을 나눌 수 없다는 것이고, 지방방송국은 자사를 통해 지방에 방송되는 만큼 파이를 떼달라는 것이다. 한동안 진통을 겪은 이 수익 배분 문제는 회사별로 정리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진다.

또 다른 문제는 방송국과 외주제작사 간 수익 배분이다. 간접광고의 판매 주체는 각 방송사다. 프로그램 전후 CM과 마찬가지로 방송사가 코바코를 통해 광고주에게 판매하게 된다. 이러다 보니 PPL을 통해 제작비를 충당해 온 외주제작사들은 협찬 수요가 줄어들 것을 우려한다. 방송사는 이에 대해 사안별로 협의해 진행하자는 입장이지만, 합의에 진통을 겪고 있다.

그 때문에 여전히 일부 드라마는 기존 PPL 관행에 의존해 제작되고 있다. 지금 방송 중인 ‘부자의 탄생’(KBS2)에서 이보영·지현우가 만들어낸 신비의 커피 전문점 ‘천사 카페’는 첫눈에 봐도 에스프레소 전문점 ‘엔제리너스 커피’의 PPL이다. 전통 막걸리 브랜드 ‘참살이 탁주’가 제작 지원한 ‘신데렐라 언니’(KBS2)도 대성도가를 ‘대성참도가’로 바꾸면서까지 부각시키고 있다.

대사로 브랜드를 홍보하는 일도 있다. MBC ‘신이라 불리운 사나이’에서 송일국과 한고은이 독특한 어투로 내뱉는 “와이 낫(Why not)?”은 고객이 원하면 무엇이든지 해준다는 삼성카드의 슬로건을 녹인 경우다. 광고업계도 상표 노출 없이 광고 효과를 내는 쪽으로 기법을 짜내는 중이다.

‘시청 흐름 방해 말아야’ 조항 논란일듯

간접광고는 예능프로그램부터 이뤄질 예정이다. 코바코에 따르면 이미 ‘SBS 인기가요’가 ‘네이트’와 계약을 마쳤다. ‘인기가요’ 방송 도중 화면 하단에 네이트 검색창이 로고와 함께 등장하는 형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천안함 사태 등으로 인해 방영이 늦춰졌다. SBS ‘강심장’, MBC ‘세바퀴’ 같은 토크쇼에도 접촉이 이뤄지는 중이다. 드라마도 방송사가 자체 제작하는 작품을 중심으로 간접광고 도입을 협의 중이다.

업계는 간접광고가 음성화된 PPL을 완전히 대체하지 못할 것으로 내다본다. 간접광고 조건에 명문화된 ‘시청자의 시청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라는 것이 주관적인 잣대가 아니냐는 것이다. 결국 시행 과정에서 방송심의위원회의 판단에 맡겨질 것으로 보인다. 방송심의위는 심의규정 46조 5항의 간접광고 규정에 위배되는 PPL은 이제까지처럼 엄격하게 규제하겠다는 입장이다. 판매창구를 통하지 않고 의도적·반복적으로 상품을 노출하는 PPL에 대해선 공식 간접광고로 유도해 가면서 시장을 정리한다는 것이다.

CG 이용한 가상광고는 피겨 중계서 첫선

3월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열린 2010 ISU 세계 피겨스케이팅 선수권대회 여자싱글 프리스케이팅 중계화면에 선보인 쏘나타 가상광고. [현대자동차 제공]

간접광고와 함께 허용된 가상광고는 방송프로그램에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해 가상 이미지를 삽입하는 것이다. 스포츠 중계 때 경기장의 빈 공간(야구장 펜스, 아이스 링크 빙판, 축구장 그라운드)에 기업 로고나 브랜드 이름을 삽입해 실제 현장에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다.

이미 국내에서 첫선을 보였다. 3월 27일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열린 2010 ISU 세계 피겨스케이팅 선수권대회 여자 싱글 쇼트프로그램 때다. 김연아 선수가 광고 모델을 맡고 있는 삼성하우젠 에어컨이 5회 삽입됐다. 평균 시청률은 12.7%, 최고 시청률 21.6%로 괜찮은 성과를 보였다. 현대자동차도 다음날 프리스케이팅 때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 선수 경기 전 중계 화면에 붉은색의 쏘나타가 은반 위를 미끄러지듯 나타나는 식으로 가상광고를 집행했다.


뉴스 클립에 나온 내용은 조인스닷컴(www.joins.com)과 위키(wiki) 기반의 온라인 백과사전 ‘오픈토리’(www.opentory.com)에서 다시 볼 수 있습니다. 궁금한 점 있으세요? e-메일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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