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틴경제] 도량형 통일 왜 필요한 겁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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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기원전 221년 중국을 처음으로 통일한 진나라의 시황제는 분서갱유(焚書坑儒)라고 해서 각종 서적을 불태우고, 선비들을 생매장해 역사에 폭군으로 남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전국의 도로망을 건설하고, 화폐와 문자를 통일하는 업적도 남겼답니다.

특히 그가 한 '도량형(度量衡) 통일' 은 중국의 경제 발전에 큰 공헌을 했습니다. 물론 이런 업적들이 그가 저지른 만행을 상쇄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그러면 진시황은 왜 도량형을 통일했을까요□

도량형이란 도(度.길이), 양(量.부피), 형(衡.저울, 즉 무게)을 합친 말로서 사전에는 '길이.양.무게 따위를 재는 단위법 및 기구의 총칭' 으로 정의돼 있습니다. 즉, 각종 단위를 재는 기구 또는 단위 자체를 뜻합니다.

고대 중국 사람들은 기원전 1천년을 전후한 은(殷).주(周) 시대에 이미 주척(周尺)이라는 도량형을 만들어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춘추전국시대를 거치면서 지방마다 이 잣대가 달라졌습니다.

당시에는 세금을 거둘 때 돈이 아니라 베나 양곡 등으로 거뒀는데, 여러 나라로 나뉘어 있을 때는 자기 나라에만 같은 잣대를 쓰면 됐지만 한 국가로 합쳐지자 계산이 복잡해진 것이지요.

이 때문에 진시황은 통일하자마자 서둘러 도량형을 정비한 것입니다. 즉 세금을 고루 거두고, 나아가 국가의 지배력을 강화하자는 속셈이었지요.

이때 만든 도량형이 오늘날 척관법(尺貫法)의 모태가 되었습니다. 척관법이란 길이의 기본 단위인 '자' 라는 뜻의 척(尺)과 무게의 기본단위인 관(貫)을 합친 말입니다. 먼 지방 간에도 잣대가 같아지니 물건을 사고 팔기가 쉬워져 상업이 부흥하게 되었지요.

한편 서양에서는 고대 바빌로니아.수메르인들이 처음으로 금속이나 돌로 만든 측정기구를 썼습니다.

이때 통용된 표준 무게 단위가 '미나' 라는 것으로 지금의 약 6백40g(일부 기록엔 9백78g)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이집트인들은 왕(또는 성직자)의 손가락 끝에서 팔꿈치까지의 길이를 '큐빗' 이라는 표준 길이로 정했는데, 이를 이용해 거대한 돌들을 정교하게 잘라 맞춰 피라미드를 만들었다니 감탄하지 않을 수 없지요. 이 큐빗은 후에 야드(yd)의 원형이 되었습니다.

영국은 1215년 대헌장에서 '인치(길이).파운드(무게).파인트(부피)' 제도를 공식 제정했는데 이를 발전시킨 이른바 '야드.파운드법' 이 동양의 척관법과 함께 근대 이전까지 세계 도량형의 양대 축이 되어왔지요.

이렇듯 도량형은 문명과 더불어 발달해 왔습니다. 처음에는 '한 뼘, 한 줌' 등 신체 부위에 근거했다가 점차 정교해집니다. 엔진 동력의 단위인 마력은 말 한 필이 내는 힘에서 비롯된 단위고, 피트(ft)는 발의 크기를 기준한 것입니다.

마일은 영국의 에든버러성과 이 성에서 조금 떨어진 여왕의 숙소까지의 거리를 '로열 마일' 이라 부른 데서 유래했습니다. 에이커는 농부가 하루에 갈 수 있는 땅의 넓이에서 비롯됐고, 보석의 무게를 재는 캐럿은 콩 씨앗의 무게를 토대로 만든 것이지요.

동양의 자(尺)도 손가락 길이를 원용한 것인데, 재미있는 것은 한 자(一 尺)의 길이가 점점 길어졌다는 점입니다. 고대 중국에선 15~16㎝였다가 당나라 때 30㎝를 넘었으며, 급기야 금나라에선 43㎝에 이르렀습니다. 세금을 더 많이 거두려는 욕심 때문이었지요.

이런 식으로 만들어지다 보니 나라마다 단위가 틀려 무역에 장애가 될 뿐더러 기준 자체가 '밭 가는 면적' 등으로 애매모호해 표준화가 어려운 단점이 드러났습니다.

이에 따라 생겨난 것이 미터법입니다. 미터라는 말은 그리스어의 '재다' 라는 말에서 유래했지요.

프랑스 과학자들이 1790년 무렵 지구 둘레(자오선)의 4천만분의 1을 1미터(m)로 하자고 제창한 뒤 1875년 세계 17개국이 이에 합의했습니다. 미터는 이후 '진공상태에서 빛이 299, 792, 458분의 1초 동안 진행한 길이' 로 정의가 바뀌었습니다. 빛의 속도야말로 만고불변이라는 점에 따른 것이지요.

질량은 각 모서리 길이가 10㎝인 정육면체와 같은 부피의 증류수를 1㎏으로 정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초(시간).암페어(전류)등 모두 7개의 기본단위가 차례로 정해졌고 1960년에는 총칭도 '미터법' 대신 '국제단위계' (SI.시스템 인터내셔널)로 바뀌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조선시대까지 척관법을 쓰다가 1905년 대한제국 법률 1호로 미터법에 기초한 도량형법을 제정했습니다. 59년에는 국제미터협약에 세계 36번째로 가입했고 63년에는 척관법을 폐지했습니다.

그래도 일상생활에 척관법 등이 계속 쓰이자 산업자원부는 올 7월부터 근.평.야드 같은 단위를 쓰면 과태료를 물리려 했다가 무기 연기했습니다. 건설업체.골프장 등의 반발때문이지요. 외환위기 직후 공공기관들이 미주지역의 투자유치에 나서면서 공단 부지.매물 등을 평으로 표시했다가 현지 투자가들로부터 항의를 받은 적도 있었습니다.

건교부가 얼마 전에 '그린벨트 333.7㎢를 푼다' 고 발표한 것도 사실은 문제가 있습니다. 이를 환산하면 1억평인데, 정부조차 평(坪)이란 비공식 단위에 기초해 방침을 세웠던 것입니다. 정부가 솔선수범하지 않으면서 국민들에게 강요하면 안되겠지요.

하지만 국민들도 국제표준에 따르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이제는 국경없는 경제시대이기 때문입니다.

민병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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