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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송호근 칼럼

먼 바다에서 발사된 어뢰 한 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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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대한민국 안보의 처절한 현실처럼 너덜너덜해진 함미의 절단면을 목도하는 것으로 이제 천안함 피격사태는 더 난감하고 곤혹스러운 단계로 접어들었다. 누가 했는가? 왜 그랬는가? 그럴 만한 필연적 이유가 있는가? 답이 어른거리는 이 질문 말이다. 천안함에서 2㎞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요격했다면 누군가 한국 영해(領海)에 비밀리에 잠입했다는 뜻이다. 한반도 부근 공해수역에 잠수함을 운용하는 국가는 일본·중국·미국·러시아일 터인데, 그들 잠수함이 영해로 들어올 때 한국형 해군전술지휘통제체계(KNTDS)의 허락을 받지 않을 리 없고, 한국 국기가 펄럭이는 초계함을 공격할 이유도 없다. 4대 강대국 간 공존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그 힘의 교차점에 놓인 한국을 타격해서 무엇을 얻겠는가 말이다.

남은 선택지 하나, 북한. 결코 지목하고 싶지 않은 상대가 떠오른 저간의 사정이다. 아직 물증(物證) 제로 상태여서인지 ‘예단하지 말자’는 신중론이 빗장을 걸고는 있으나 북한 소행임을 입증하는 작은 파편조각이라도 발견되는 날이면 참았던 분노가 일시에 폭발할 것이다. 그 분노는 멀리는 1968년 1·21사태, 가까이는 1999년 연평해전 때와도 다른 정신적 외상(外傷) 같은 것이다. 천안함이 해저(海底)에 잠겨 있는 동안 숨이 막힐 듯한 갑갑증을 겪었을 국민들은 급기야 발 밑에서 북한제 포탄이 터지는 듯한 공포를 느꼈을지도 모른다. 아마, 전쟁세대들은 험난하고 잔인했던 악몽이 되살아나 가슴깨나 졸였을 것이다.

천안함 사태가 빚어내는 이런 사회심리 앞에서 정부는 곤혹스럽기 짝이 없다. 남북대치 상황에서 정부가 제공하는 공적 서비스 중 최고의 것을 안보(安保)라고 할진대, 사정이야 어쨌든 이미 ‘격파된 안보’를 수습하기가 이만저만 궁색한 게 아니다. 주적(主敵)의 어뢰에 맞아 전함이 격침되었는데, 20여 일이 지나서야 겨우 윤곽을 흐릿하게나마 알게 되었다면, 물증을 확보하는 데에 얼마나 더 걸릴까? 아니, 물증을 확보할 수는 있을까? 발사한 어뢰에 소속국 표지를 지웠다거나, 혹 우방이 주로 쓰는 것을 사용했다면 파편조각을 찾아도 난감해질 것이다.

그래도 어쩌다 물증이 확보된다면, 갑갑증, 공포, 실망감이 뒤범벅된 세간의 정서를 어떻게 달랠 것인가도 문제려니와, 여론 선도용으로 대통령이 되풀이 강조했던 ‘단호한 대응’에 걸맞은 ‘단호한 수단’이 없다는 것도 문제다. 가위 눌린 국민들의 심사를 시원스레 풀어줄 극적이고 호쾌한 방법은?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도 정부에 중대결심을 촉구했지만, 무엇이 가용한가? 사곶 잠수함기지를 ‘쓸어버리는 것’? 그건 술김에나 하는 소리고, 이미 시간을 놓쳤다. 속초함이 새떼를 포격할 때 도망치는 잠수함을 요격했어야 했다. 물론, 전쟁의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는 단서가 붙는다.

원인규명에 국제공조를 도모한 것은 분명 잘한 일인데, 유엔 안보리에 제소해봐야 각종 제재에 이골이 난 북한이 꿈쩍이나 할 것인가? 국제재판소로 이관해서 배상을 요구한들, 굶주린 북한이 무얼 내놓겠는가? 핵과 미사일을 쥔 손에 힘을 더 넣게 만들 뿐. 그래서 답답하다. 함미 인양으로 한숨 돌릴까 했던 우리는 결국 이렇게 답안 없는 문제를 넘겨받았다.

4월이 천안함 사태 규명으로 가버렸듯이, 만약 북한 소행으로 최종 판명된다면, 5월은 전국적으로 벌어질 반북 규탄대회로 가득 찰 공산이 크다. 46명의 젊은 생명을 그냥 보낼 수 없고, 구멍 난 안보를 묵과할 수 없다. 군의 초기대응 태세와 정부의 위기관리체계를 대대적으로 수리하라고 소리치고 싶은 게 오늘의 국민심사다. 먼 바다에서 발사된 어뢰 한 발, 그것은 느슨했던 안보의식에 경각심을 일깨웠지만, 경색일로의 남북관계를 간단히 끝장내고 60년 전의 격돌모드로 급전시킬 돌발적 폭력이기에 더욱 근심스럽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