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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속 옌볜… 중국동포 타운] (4)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불법 체류하는 여느 중국동포와 비슷하게 공사판에서 하루 10시간 이상 일하며 고달프게 살고 있는 이재우(가명.61)씨.

李씨는 고향인 헤이룽장(黑龍江)성에서 중학교 교장으로 20년간 재직하다 퇴직한 교육자 출신이다. 그의 두 아들 역시 베이징(北京)과 상하이(上海)에서 벤처사업을 하고 있다.

나름대로 인생에서 성공한 그가 지난해 초 인천에 사는 큰 누이를 만나러 왔다가 불법체류자로 눌러앉은 것은 여생을 바칠만한 새로운 삶의 목표를 찾아냈기 때문이다. 그 목표는 중국동포와 한국사회 모두에 필요한 인재를 길러내는 것이다.

"한국에서 번 돈에, 개인재산을 합쳐 고향에 인력개발센터를 설립할 생각입니다. 그래서 붕괴되고 있는 조선족 사회를 조금이나마 안정시키고, 한국에도 필요한 인력을 공급하고 싶습니다. "

공식적으로 집계된 불법체류자만 1998년 2만6천명에서 올해 6월말 6만2천명으로 급증할 정도로 중국동포들이 밀려오고 있다.

그들은 우리의 의지와는 관계 없이 무시할 수 없는 집단을 형성해 가고 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대부분의 국내 체류 중국동포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돈을 벌어보겠다는 생각뿐이다.

李씨처럼 양쪽 사회를 연결시켜 자신의 위치를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내국인들 역시 그들을 '막일을 하는 또 하나의 외국인 불법체류자' 정도로 생각할 뿐이다.

전문가들은 "중국동포들은 우리와 한 핏줄이라는 특수성을 갖고 있고, 그들의 입국 봇물은 이미 터진 상태" 라며 "두 사회가 만나 서로 상승 발전하는 '윈 - 윈' 전략이 절실하다" 고 지적한다. 역사.경제.외교.사회측면에서 중국동포를 둘러싼 쟁점을 네가지로 정리했다.

*** 쟁점1 흔들리는 민족정체성

1999년 '재외동포의 법적지위에 관한 특례법(재외동포법)' 이 발효된 이후 중국동포들의 감정은 악화일로다. 그동안 한국이 지켜왔던 혈통주의를 포기하고 중국동포들을 동포의 범주에서 제외했기 때문이다.

중국동포 자치주에서 발행되는 옌볜일보는 "한국 양반들에겐 워낙 우리를 포용할 만한 담이 없다는 것을 우리가 오랫동안 몰랐다" 고 통렬하게 비판했다. 이들의 마음이 한국에서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북한에도 등을 돌리고 있다.

북한에 사는 친척들이 끊임없이 식량과 물자를 얻어가면서 북한체제에 혐오감이 퍼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중국동포 청소년들은 한국을 중국 내 거대도시를 대하듯 단순한 돈벌이 장소로 여길 뿐이라는 것이 국내에 체류하는 동포들의 말이다. 자신들의 뿌리를 잊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선문대 유엔학과 최우길 교수는 "중국동포들이 지닌 한반도와 중국 양쪽의 생활양식과 문화.가치관을 자산으로 삼아 '동북아 한민족공동체' 를 구축하는 전향적인 정책수립이 이뤄져야 한다" 고 말했다.

*** 쟁점 2 밀려오는 3D 인력

중국동포들이 종사하는 업종은 대부분 한국인이 꺼리는 업종이다. 본사 취재팀이 국내에 체류하는 중국동포들을 면접조사한 결과 90% 이상이 건설노동.파출부.식당 일 등의 '3D 업종' 에 종사하고 있었다.

서울대 이광규 명예교수는 이런 점 등을 들어 "한동안 그들이 한국인과 취업경쟁을 벌이는 일은 없을 것" 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국내에서 높은 실업률이 계속되면 중국동포에 대한 노동정책은 조정될 수밖에 없다. 일부 노동경제 전문가들은 "국내 실업률 등을 고려해 우리 산업에 필요한 외국인 노동인력을 산출한 뒤 이중 상당수를 중국동포들에게 배정해야 한다" 고 제시한다.

전문가들은 또 대표적인 외국인 인력도입 정책인 산업연수생 제도를 손질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월급이 42만원에 불과해 연수생 중 상당수가 지정된 직장에서 이탈해 불법 취업한다. 영세사업장을 보호하면서 월급을 현실화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 쟁점 3 무너지는 중국동포 사회

중국동포들이 많이 사는 헤이룽장성 하이린(海林)시의 민족사무위원회는 최근 "조선족 출생아는 88년 7백80명에서 97년 86명, 98년 57명 등으로 급격히 줄어들었다" 고 밝혔다.

하이린에 있는 38개 조선족촌 가운데 14개촌에서는 몇년 새 한명의 아이도 태어나지 않았다. 이농과 코리안드림이 겹치면서 젊은층이 떠나고 있기 때문이다.

랴오닝성의 조선신보는 최근 "도시로, 한국으로 가면서 우리의 미풍양속이 다 거덜났다. 사랑과 교양은커녕 물질적 향수만 남아 후대를 잃고 있다" 고 개탄하기도 했다.

중소기업연구원 류재원 동향분석실장은 "중국동포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중국시장을 단시일에 개척하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며 "동포사회를 살려 이들을 활용하기 위해 동북3성에 직접투자를 확대해야 한다" 고 말했다.

외교안보연구원 박두복 교수는 "한국 입국 기회를 갑자기 확대하면 코리안드림을 부추겨 중국 내 조선족 사회가 붕괴될 것" 이라며 "점진적.현실적 장기전략이 필요하다" 고 지적했다.

*** 쟁점 4 커지는 중국동포 타운

서울 가리봉.구로.대림.가산동 일대 중국동포 타운은 우리 사회가 처음 만나는 본격적 이방인 지대다. 치안 당국은 이방인지대의 형성에 긴장하고 있다. 이들이 집단 세력화 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범죄도 독버섯처럼 자란다. 벌써 밀입국.폭력조직이 활동하고 있는 사실이 본사 취재팀에 의해 확인됐다.

선진국들은 외국인타운 등 이방지대가 몰고 올 후유증을 형성 초기에 제압하지 못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미국의 경우 올해 6월 법정선고위원회가 밀입국과 밀입국한 외국인을 상대로 한 매춘.사기.인신매매 등의 범죄에 대해 최고 종신형까지 선고하는 긴급시행령을 발표했을 정도다.

전문가들은 "하루 빨리 관련 중국동포 타운의 문제점을 다룰 전문가를 육성하고 전문기구를 만들어야 한다" 고 지적한다. 한중교류협회 구자연 부장은 "중국동포들이 입국과정에서 국내외 브로커에게 거액을 뜯겨 이를 만회하기 위해 장기 불법체류하게 되고, 그 결과 중국동포 타운이 불건전해진다" 며 "한국.중국 정부가 공조해 입국 비리를 뿌리뽑아야 한다" 고 강조했다.

사회부 기획팀=이규연.김기찬.조강수.강병철 기자, 안부근 조사전문위원

사진=김진석 기자

<도움말 주신분>

▶조선족교회 서경석.김의종.최황규.윤완선 목사, 우성영 전도사▶중국동포교회 김해성 목사▶탈북난민보호운동본부 김상철 변호사▶중국 소수민족문학상 수상자 허련순▶외교안보연구원 박두복 교수▶서울대 인류학과 이광규 명예교수▶고베대학 사시키 마모루 교수▶중소기업연구원 유재원 동향분석실장▶한.중교류협회 구자연 부장▶한.중동포신문 김한길 논설주간▶조선족연합회(준) 장성일 사무국장▶독립기념관 초대관장 안춘생 옹▶대검찰청 서영제 마약부장▶법무부 성영훈 검찰4과장▶대검찰청 김정필 형사과장▶서울구로경찰서 윤재국서장▶법무부 체류심사과 이동권 계장▶국가보훈처 황원채 사무관▶경찰청 외사과 박의병 계장▶서울남부경찰서 조성훈 형사과장▶서울경찰청 폭력계 이호순 경장▶외환은행 대림역지점 허만국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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