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화한 46인의 꿈과 삶

중앙일보

입력 2010.04.16 01:51

업데이트 2010.04.16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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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772호 천안함의 마지막을 지켰던 이들의 이름을 다시 불러본다. 마흔여섯 승조원들의 목숨은 백령도 앞바다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사랑하는 가족과 조국을 지키다 세상을 떠난 이들의 삶은 오롯한 자취를 남겼다.

※ 이름 아래엔 출생지, 출신 학교, 가족관계

하사관들의 맏형 이창기 원사(40)
경기도 양평. 양평 국수고. 아내·아들

천안함 하사관들의 맏형이었다. 이번에도 아이가 아픈 선임하사를 대신해 출동했다. 제1 연평해전에 속초함 전탐사로 참전, 전투유공 표창을 받았다. 20년 넘게 군생활을 했다. 결혼할 때 천안함 최원일 함장이 주례를 섰다. 집에선 5남매의 막내였다. “바다는 위험하다”는 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해군이 됐다.

생존 장병 탈출길 밝힌 최한권 상사(38)
충남 홍성군. 홍성고. 어머니·아내·딸

두 반뿐인 작은 초등학교를 나왔다. 10년 전 해군이 되기 위해 고향을 떠났다. 천안함 전기장. 임관 당시 해군참모총장 우등상을 받았다. 함수에 있던 생존 장병들이 비상조명등의 불빛을 보며 탈출할 수 있었던 것은 최 상사의 치밀한 정비 덕분이었다. 원사 승진 시험을 준비 중이었다.

아내에게 십자수 선물 남기훈 상사(36)
충북 청주. 삼례공고. 아내·세 아들

남 상사는 결혼 4주년에 십자수를 직접 떠서 부인에게 선물한 정도로 가정적이었다. 그러나 결혼 생활 12여 년 중 10년을 배에서 보냈다. 아들 셋을 두고 갔다. 세 살 난 막내를 제대로 못 봐 늘 아쉬워했다. 해군에 16년 동안 근무하면서 자격증을 10개 땄다. 실종자 중 가장 먼저 발견됐다.

해군 삼형제 김태석 상사(38)
경기도 성남. 성남서고. 아내·세 딸

3남3녀 중 막내. 삼형제가 모두 해군이다. 아홉 살·일곱 살·다섯 살 세 딸이 있다. 침몰 한 달 전 누나에게 “딸 셋이 내 앞에서 소녀시대 춤을 추고 있다.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 배를 타느라 딸들을 자주 못 보는 걸 미안해했다. 지난 1일 바닷속에서 상사로 진급했다. 7일 실종자 중 두 번째로 발견됐다.

부재중 전화 남기고 떠난 문규석 상사(36)
전남 구례. 금정고. 아내·두 딸

침몰 직전 초등학생 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딸은 받지 못했다. ‘부재중 전화’ 기록만이 남아 있다. 해군에서 16년을 복무했다. 올해 2월 1일 천안함으로 왔다. 함정의 전자장비에 정통해 ‘해군 전자 분야 엘리트’로 통했다. 문 상사의 아버지는 사고 전날 아들이 철판에 갇히는 꿈을 꿨다 했다.

진급 꿈꾸던 김경수 중사(34)
충남 서천. 인천북공고. 아내. 아들·딸

천안함 음탐장. 15년 동안 해군에 근무했다. “육상 근무를 원했지만 아내를 위해 배에 올랐다. 상사 계급장을 아내에게 선물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아버지에게 “진급하는 것이 어렵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다섯 살 된 아들과 초등학교 2학년 딸이 있다. 평택 해군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주경야독 안경환 중사(33)
경북 예천. 인천지능대 전자학과. 어머니·여동생

천안함 유도장. 제1 연평해전에 전남함 유도사로 참전했다. 고교 졸업 후 아버지를 여의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입대했다. 복무하면서 야간대학도 졸업하고 임대 아파트도 마련했다. 승진도 하고 결혼도 할 것이라고 설레어 했다. 아이들을 좋아해 육상 근무를 할 땐 매주 보육원에서 봉사했다.

삼남매 가장 김종헌 중사(34)
경남 양산. 장안종합고. 아내·아들·여동생·남동생

고등학교 3학년 때 교통사고로 부모를 여읜 뒤 삼남매의 가장으로 생계를 책임져왔다. 두 동생을 대학에 진학시키려고 입대했다. 숙부가 배의 기관장이고 고모는 해녀다. 하사 때 결혼했는데 오랫동안 아이가 안 생겼다. 겨우 얻은 한 살배기 어린 아들을 두고 깊은 바다로 떠났다.

3개월 아이 두고 떠난 최정환 중사(32)
충북 충주. 용산고. 아내·딸

천안함 의무장. 지난해 결혼해 딸이 태어난 지 석 달도 되지 않았다. 자신의 큰 손과 몸집에 아이가 다칠까 봐 지난 1월 딸이 태어났을 때는 제대로 안아주지도 못했다고 한다. 아이 얼굴이 보고 싶어 이달 휴가만 기다렸다. “죽는 건 안 무서운데, 당신이랑 아기만 혼자 두는 건 못 참아”라고 말했다.

만능 스포츠맨 민평기 중사(34)
충남 부여. 부여고. 부모·두 형

80여 가구가 사는 작은 마을 금공리 출신이다. 민 중사가 졸업한 매화초등학교는 폐교됐다. 고등학교 때 대처로 떠났다. 천안함에서는 행정장이면서도 전투 배치와 같은 상황이 벌어지면 위험을 무릅쓰는 것으로 유명했다. 검도 유단자. 축구와 테니스도 수준급인 만능 스포츠맨이었다.

‘자기야 잘자’ 마지막 전화 정종율 중사(32)
전남 곡성. 운산기계공고. 아내·아들

여섯 살 난 아들에게 동생을 만들어주고 싶어했다. 자신의 미니홈피에도 “우리 2세를 먼저 만들자”고 글을 올렸다. 부인과는 고등학교 때 만났다. 만난 지 15년 가까이 됐지만 다툼 한 번 없어 ‘잉꼬 부부’로 불렸다. 침몰 20여 분 전 부인에게 전화를 걸어 “자기야 잘자, 나 지금 교대한다”고 말했다.

제2 연평해전 영웅 박경수 중사(29)
경기도 수원. 삼일공고. 아내·딸

2002년 제2 연평해전에서 살아 돌아왔다. 당시 부상을 입은 줄도 모르고 전투를 해 ‘영웅’으로 불렸다. 국무총리 전투유공 표창을 받았다. 그러나 이후 6년 동안 공포심 때문에 배를 못 탔다. 선배와 가족의 도움으로 이를 이겨냈다. 지난해 6월 천안함에 승선하면서 다시 바다로 돌아왔다. 유머가 풍부한 ‘분위기 메이커’였다.

해군 부사관 아내 떠난 강준 중사(29)
전남 고흥. 창원전문대 경영정보학과. 아내

최근 혼인신고를 했다. 잦은 출동 때문에 아직 식을 올리지 못했다. 다음 달 9일이 결혼 예정일이었다. 아내는 해군 최초의 여군 부사관이다. 진해에서 강 중사와 함께 근무했다. 강 중사 부부는 매주 장애아동 복지시설에서 자원봉사를 했다. 강 중사는 ‘축구 1등’인 천안함 축구회 회장이었다.

치매 할머니가 기억했던 박석원 중사(28)
충남 천안. 천안 중앙고. 부모

치매에 걸린 할머니는 손자들 중 박 중사의 얼굴만 기억했다. 학창 시절에는 효행상과 선행상을 독차지했다. 천안함에서도 추운 밤 견시를 서는 견시병을 위해 손수 따뜻한 차를 타줬다. 천안 출신으로 천안함에 근무하는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집안을 도우려 자원 입대했다. 목사 아버지의 외아들이다.

물속에서 생일 맞은 신선준 중사(29)
울산. 울산공고. 아버지·누나

입대한 지 8년째. 지난 2일(음력 2월 18일)은 신 중사의 생일이었다. 지금까지 생일은 늘 부대에서 보냈다. 이번 생일은 신 중사 없이 가족들끼리만 평택 해군 제2함대사령부에서 축하했다. 생일상은 해군 식판으로 대신했다. 신 중사는 가족에게 한없이 따뜻했다. 출산을 앞둔 누나의 안부를 늘 물었다.

‘천안함의 천사’ 심영빈 하사(26)
강원도 동해. 강원대 전기과. 부모·남동생

지난해 전역 예정이었는데 가정 형편을 생각해 장기 복무를 신청했다. 술은 못 마셔도 술자리엔 꼭 함께했다. 수병들의 간식과 야식은 심 하사가 으레 마련했다. 월급 통장은 부모님께 드렸다. “동생 공부도 가르치고 생활비도 쓰시라”며 월급을 집에 보내고 자신은 수당을 쪼개 쓰며 살았다. 별명은 ‘천안함의 천사’.

갑자기 끊어진 전화 손수민 하사(25)
울산. 무룡고. 할머니·부모·여동생

집을 못 구한 후배들을 자기 숙소에 함께 데리고 살 정도로 따뜻했다. 침몰 당시 10년 가까이 사귄 여자친구와 통화 중이었다. 갑자기 전화가 끊겼으나, 금방 다시 걸려올 것만 같던 전화는 끝내 다시 오지 않았다. 친구들과 여행동호회를 만들고 함 내에서는 축구동아리 회장을 맡을 정도로 사람들과 활발하게 어울렸다.

‘천안함의 천사’ 심영빈 하사(26)
강원도 동해. 강원대 전기과. 부모·남동생

지난해 전역 예정이었는데 가정 형편을 생각해 장기 복무를 신청했다. 술은 못 마셔도 술자리엔 꼭 함께했다. 수병들의 간식과 야식은 심 하사가 으레 마련했다. 월급 통장은 부모님께 드렸다. “동생 공부도 가르치고 생활비도 쓰시라”며 월급을 집에 보내고 자신은 수당을 쪼개 쓰며 살았다. 별명은 ‘천안함의 천사’.

형 학비 보내던 조정규 하사(25)
경남 창원. 창원기능대. 부모·형

형의 학비와 지병을 앓는 아버지의 생활비를 보탰다. 해군 출신인 형의 영향을 받아 해군 부사관이 됐다.고등학교 때는 3년 내내 장학금을 받았다. 지난달 24일 마지막으로 가족과 통화하며 “이번 주가 마지막 해상근무고 곧 육지로 돌아간다”며 좋아했다. 키가 크고 미남이었다.

‘천안함 요리개발자’ 방일민 하사(24)
서울. 김포대 호텔조리학과. 부모·남동생

천안함 조리장. 호텔조리학을 전공했다. 함 내에서 장병들에게 다양한 요리를 선보이며 ‘요리개발자’로 인기를 얻었다. 휴가 때는 어머니에게 자기가 개발한 요리를 검증받기도 했다. “해병대에 가겠다”며 2006년부터 1년여 동안 특공무술을 배우기도 했다. 가족과는 사고 이틀 전 마지막으로 통화했다.

홀아버지 모셨던 조진영 하사(23)
부산. 영산대. 아버지

어릴 때부터 아버지와 단 둘이었다. 입대 후엔 30만원만 빼고 모든 월급을 아버지에게 보냈다. 한번도 불평이 없었는데 사고 당일엔 아버지에게 “힘들다” 전화했다 한다. 부사관 능력평가에서 100점을 받기도 했다. 운동 특기자로 대학에 들어갈 정도로 만능 스포츠맨이었다. 수영도 잘했다.

제주도 감귤총각 차균석 하사(24)
제주도 서귀포. 한라대 물리치료학과. 부모·남동생

제주 집에서 늘 감귤을 보내 천안함 장병들과 나눠 먹었다. 이번 승선을 마지막으로 육상 근무로 복귀한 뒤 6월 중순께에는 제주도로 발령 받을 예정이었다. 아버지가 육군 입대를 권유했는데 끝까지 해군을 고집했다. 사건 당일 오후 9시 16분까지 여자친구와 문자를 주고받다가 갑자기 끊어졌다.

어머니 수술비 마련한 박보람 하사(24)
충남 아산. 평택기계공고. 부모·남동생

이달 만기로 적금을 부었다. 다리가 불편한 어머니 수술비였다. 침몰 며칠 뒤가 어머니의 수술 예정일이었다. 평택에서 학창시절을 보내며 자연스레 해군을 꿈꿨다. 함대 내에선 수병들의 맏형 노릇을 했다. “부모님과 애인에게 전화하라”며 수병들에게 휴대폰을 빌려주느라 한 달 전화비가 수십만원이 나올 정도였다.

혈혈단신 바다사나이 문영욱 하사(23)
경북 성주. 동아대 컴퓨터공학과. 외삼촌

어릴 때 아버지를 여의고 2년 전에는 어머니를 뇌졸중으로 잃었다. 하지만 동료들은 이런 사연을 잘 모를 정도로 늘 밝았다. 해군 부사관 출신 외삼촌의 권유로 해군의 길을 택했다. 군인이 되기 전에는 인라인스케이트 강사를 하며 돈을 벌었고, 부사관이 된 후에는 매달 100만원씩 적금을 들 만큼 생활력이 강했다.

가족 모임 앞두고 간 이상준 하사(20)
부산. 동의대 특수체육학과. 부모·두 누나

이상준 하사.[해군 제공]
침몰 6일 뒤가 가족 모임을 하기로 한 날이었다. 집안에 보탬이 되겠다며 대학 1학년을 마치고 해군에 자원 입대했다. 외박도 외출도 줄이면서 수당을 모았다. 아버지 농사일을 곧잘 도왔다. 지난해 5월 천안함에 부임했다.

선박조종사 바랐던 장진선 하사(22)
강원도 동해. 한국항공전문학교 . 부모·여동생

설 휴가 때 부모에게 50만원을 건넸다. “제주도 여행 한 번 가시라”며 보너스로 받은 돈을 모두 드린 것이다. 쾌활하고 운동을 잘했다. 군 생활 중에도 소형선박조종사 자격증 공부를 하는 등 자기개발에 열심이었다. 사고 이틀 전 아버지에게 “31일 평택으로 돌아간다”고 한 것이 마지막이었다.

웃는 얼굴 때문에 ‘오리’ 별명 서승원 하사(21)
서울. 효성고. 부모

부모가 외아들인 서 하사와 가까이 있기 위해 서울에서 평택으로 이사를 왔다. 천안함이 첫 근무지였지만 성격이 활발해 빨리 적응했다. 활짝 웃는 얼굴 덕분에 별명은 ‘오리’. 천안함을 태워달라고 조르는 여자친구에게 “유람선을 태워준다”고 달랠 정도로 상냥했다.

멀미약 안 먹고 버티던 박성균 하사(21)
경남 창원. 창원전문대. 부모·남동생

간부가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된다고 멀미약도 먹지 않을 정도였다. 대학을 한 학기 마치고 집안 형편이 어려워 입대했다. 창원 집에서 가까운 진해로 가기 위해 해군에 지원했다. 지난달 초 휴가 때 “배 타는 게 너무 힘들다”고 토로했다. 22일 부모와의 마지막 통화에서 “요즘 잠이 잘 안 온다”고 말했다.

‘천안함 가수’ 서대호 하사(21)
경남 의령. 경남대 컴퓨터공학과. 할머니·부모·형

서대호 하사. [해군 제공]
노래를 잘해 ‘천안함 가수’로 통했다. 서 하사는 올해 휴가를 한 번도 나가지 못했다. 설 명절 때는 함대 배치가 늦어져 휴가가 미뤄졌다. 사건 10일 전 예정돼 있던 6박7일 휴가도 출동 일정 때문에 연기됐다. 지난달 20일 어머니에게 “이번 훈련만 끝나면 꼭 휴가 나갈 테니 기다리라”고 말한 게 마지막 통화가 됐다.

UDT 대원 꿈꾸던 김동진 하사(19)
부산. 부산디지털고. 부모

유도 선수 출신. 모 대학 경호학과가 전액장학금을 제시했지만 ‘개인을 지키기보다 나라를 지키는 사람이 되겠다’며 입대했다. 해군 입대를 위해 체중감량까지 했다. ‘필승 함대 2함대로 간다’고 들떠있었다. 휴가 때면 정복을 입고 동네 인사를 다녔다. UDT 대원이 되는 것, 어머니와 함께 살 건물을 짓는 것이 꿈이었다.

일식 요리사가 꿈이던 이상희 병장(21)
서울. 혜전대 호텔조리외식계열. 부모·여동생·두 남동생

조리 자격증만 5개. 해군 조리병이 됐다. 이병 때부터 전출 요청을 받았지만 “가족적인 분위기가 좋다”며 배에 남았다. 다음 달 제대를 앞두고 이번 훈련이 마지막이었다. 미니홈피에 “제대 후 일본으로 어학연수를 갈 계획”이라며 꿈에 부풀어 있었다.

‘깜둥이 생활반장’ 이용상 병장(22)
경기도 고양. 숭실대 경영정보과. 부모·두 남동생

갑판병. 선배들은 그를 ‘깜둥이 생활반장’이라며 귀여워했다. 후배들에게도 살가웠다. 휴가에서 복귀할 때마다 후배들 간식거리를 잔뜩 사갔다. 생일도 일일이 챙겼다. 다음 달 1일 제대를 앞두고 지상 근무 제의를 받았지만 천안함 승선을 고집했다. 아버지와 삼형제가 모두 스쿠버다이빙 자격증이 있다.

‘야식 책임자’ 강현구 병장(21)
서울. 인하공업전문대 컴퓨터공학과. 부모·여동생

지난해 10월 말, 천안함 안에서 한 병사가 찍은 사진. 이재민 병장(맨 왼쪽), 안동엽 상병(가운데), 강현구 병장. [해군 제공]
올 7월 제대였다. 새벽까지 천안함 승조원들의 야식을 책임지는 조리병이었다. 전북 고창의 할아버지·할머니가 강 병장 소식에 식음을 전폐했다. 한 생존 장병은 “나 혼자 군 생활 하라고 내버려두는 거냐? 지금 대체 어디 있는 거야”라며 “하나뿐인 내 동기 강현구가 보고 싶다”고 편지를 띄웠다.

함상 근무 자원했던 이재민 병장(22)
경남 진주. 진주보건대 의약학계. 할머니·부모·여동생

해군이었던 사촌 형을 동경해 자원 입대했다. 천안함에 함께 탄 이상희·이용상·이상민·전준영 병장과 해군 542기 동기였다. 지상 근무가 가능했지만 동기들끼리 함께 지내고 싶어서 함상 근무를 자원했다. 조리병이었다. 대학 전공인 의학 상식을 활용해 ‘건강한 음식’을 만들었다.

‘큰 상민이’ 이상민 병장(22)
전남 순천. 천안대 산업디자인과. 아버지·남동생

‘큰 상민이’ 이상민(22) 병장(左). 2008년 첫 휴가 때의 ‘막둥이 상민이’ 이상민(21) 병장(右). [해군 제공]
동명이인 중 ‘큰 이상민’. 5월 1일 제대를 앞두고 “먼 훗날은 멀리 있을 줄만 알았는데 벌써 여기까지 왔다”는 글을 남겼다. 상대적으로 근무가 편한 곳으로 전출 명령이 났지만 이를 마다했다. 친한 동료들과 계속 함께 있고 싶었기 때문이다. 함장에게 부탁해 배에 남았고, 결국 천안함과 운명을 함께 했다.

‘막둥이 상민이’ 이상민 병장(21)
충남 공주. 청양대 호텔경영학과. 부모·세 누나

‘작은 이상민’. 해군 부사관인 외삼촌을 따라 지원했다. 누나 셋을 둔 막내아들이었다. 출항 전 이 병장 생일에 가족들이 미역국을 싸가지고 찾아왔다. 마지막 식사가 됐다. 이 병장은 “제대 후에 온 가족이 여행을 떠나자”며 돈을 모았다. 그의 통장에는 차곡차곡 모은 군 급여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바다를 사랑한 정범구 상병(22)
경기도 수원. 강원대 물리학과. 어머니

11월 제대를 앞두고 직업 군인의 길을 생각하고 있었다. 싸이월드 다이어리에 “부사관이 될까 고민 중”이라는 글을 남겼다. ‘날려 날려 편지’하고 평택 제2함대 사서함 주소를 올렸다. “ 바다가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다”고 얘기하곤 했다. 식당에서 독서를 할 정도로 책을 좋아했다. 태껸을 수련했다.

자원 입대했던 김선명 상병(21)
경북 성주. 금오공고. 아버지·여동생·남동생

천안함에 타지 않을 수도 있었다. 입영 신체검사 때 상근 예비역으로 선발됐었다. “제대로 군대를 다녀오고 싶다”며 지난해 2월 해군에 자원 입대했다. 7년 전 어머니를 여의었다. 어머니 기일에 맞추느라 휴가를 미루곤 했다. 사고 직전 열여섯 살 남동생과 통화했다.

웃음 전도사 박정훈 상병(22)
서울. 한국폴리텍대 산업설비자동화과. 부모·남동생

얼굴에 항상 기름을 묻히고 다니는 내연병이었다. 천안함 승조원들이 붙인 별명은 ‘웃음 전도사’. 천안함에 온 지 1년이 채 안 된다. 바다와 인연이 깊다. 아버지·큰아버지·고종사촌이 모두 해군 출신. 외할아버지는 해병대 출신이다. 고등학교 1학년인 남동생이 있다.

폼생폼사였던 안동엽 상병(22)
서울. 경기대 에너지공학과. 부모

외아들이다. 이발병이다. 길거리 캐스팅 된 적도 있다. 1년 전 입대한 안 상병은 수영을 못한다. 그런데도 “해군이 멋있다”며 자원 입대했다. 안 상병은 어머니에게 “파도 치는 것이 꼭 놀이기구 타는 것 같아 재미있다”고 했다. 어머니는 안 상병이 마지막으로 건 전화를 받지 못해 너무 미안하다며 울었다.

퀴즈대회 1등 했던 김선호 상병(20)
충남 천안. 천안정보산업고. 부모·누나

김선호 일병.[해군 제공]
천안함 골든벨 퀴즈대회에서 1등을 해 3박4일 포상휴가를 받았다. 아버지·큰아버지·작은아버지·세 조카 모두 해군이다. 김길태 사건 뉴스를 보고는 누나에게 “밤에 조심해서 다니라”고 전화를 걸었다. 침몰 전날 밤에도 “휴가 나오면 누나 남자친구를 봐야겠다. 남자는 남자가 봐야 된다”며 누나를 챙겼다.

배를 끔찍이 사랑했던 강태민 일병(21)
인천. 홍익대 조선해양공학과. 부모·여동생

가스터빈병. 휴가 다녀온 지 3주 만에 천안함이 침몰했다. 6개월의 함정 근무가 끝났는데도 “가족적인 분위기가 좋다”며 천안함 잔류를 요청했다. 조선해양공학을 전공해 유난히 배를 좋아했다. 가족들은 “꿈을 키우던 바다에서 사고를 당했다”고 슬퍼했다.

수학 교수가 꿈이었던 나현민 일병(20)
서울. 광성고. 부모·형

지난 11일이 생일이었다. 나 일병의 가족이 평택 해군 제2함대 사령부 식당에서 식판에 미역국을 떠놓고 생일상을 차렸다. 케이크도 돌렸다. 수학을 좋아했다. 제대해서 수능시험을 다시 보고 수학과에 진학하겠다고 했다. 수학 교수가 꿈이었다. 봉사활동에 열성이었다. 복지시설을 찾을 때면 손수 도시락을 싸서 갔다.

‘천안함 맥가이버’ 조지훈 일병(20)
서울. 인하공업전문대 선박해양시스템학과. 부모·여동생

“해군 아들이 북방한계선(NLL) 사수 잘 하고 있음. 몸 건강히 잘 지내고 계십니까? 아들은 잘 지내고 있음.” 조 일병이 지난달 중순 어머니에게 천안함 위에서 찍은 사진과 함께 보낸 문자다. 천안함에서 용접 일을 도맡아 했다. 손톱 두 개가 빠질 정도로 일을 많이 하면서도 내색하지 않았다.

무뚝뚝한 부산 사나이 정태준 이병(20)
부산. 동의과학대 전기과. 부모·여동생

지난해 12월에 입대했다. 정 이병의 어머니가 가슴에 생긴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느라 집안형편이 어려워져서였다. 100일 휴가 때는 어머니에게 “사랑해, 사랑해” 애교를 떨었다. 마른 몸에 뱃멀미를 하면서도 업무를 쉬지 않았다. 천안함에는 지난 2월에 승선했다. 전공을 살려 전기병을 맡았다.

순수청년 장철희 이병(19)
서울. 우송대 철도전기신호학과. 부모·여동생

천안함 막내. 승선 보름여 만에 천안함이 침몰했다. 장 이병은 부모 몰래 해군에 지원했다. 1m85cm 큰 키의 그는 평소 "제복이 멋지다”며 해군을 동경했다. 기관사가 꿈이었다. 배에서도 자격증 공부를 했다. 출항 전 할머니가 편찮으시다는 소식에 눈물을 흘려 ‘순수청년’으로 불렸다.

[약력] 잠든 채 돌아온 영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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