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비전을 말한다] 18일 개교 50주년 맞는 서강대 이종욱 총장

중앙일보

입력 2010.04.12 01:04

업데이트 2010.04.12 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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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딩동댕~동.”

목련꽃이 흐드러지게 핀 서울 마포구 신수동 서강대 캠퍼스에 종이 울려 퍼졌다. 수업의 끝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 강의실에서 쏟아져 나온 학생들로 캠퍼스에 생기가 돌았다. 1960년 개교 때부터 울리던 수업 종은 98년부터 9년간 잠시 사라졌다가 2007년 부활했다. 다른 대학에선 볼 수 없는 특징은 또 있었다. “경영학부 신입생 학부모 간담회”라고 쓰인 현수막이다. 학부모까지 불러 간담회를 하는 엄격한 학사관리는 수업 종과 함께 서강대가 ‘서강고등학교’라는 별명을 얻게 된 이유다. ‘작지만 강한 대학’인 서강대가 개교 50주년(18일)을 맞는다. 지난해 6월 동문 출신 첫 총장으로 취임한 이종욱(64) 총장을 9일 집무실에서 만났다. 이 총장은 “개교 때부터 학문 간 벽을 없애고 학생의 공부할 자유를 존중해줬던 ‘서강의 DNA’가 미래에도 대학의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강대는 경쟁력을 어디서 찾나.

“50년 전 교수 10명과 학생 160여 명으로 문을 열었다. 2010년 현재 신입생 1600명, 재학생 1만5000명, 동문수 6만 명이다. 규모는 작지만 각계의 리더를 배출한 게 우리의 경쟁력이다. 그 힘은 개교 때부터 모든 학생들이 모든 강의를 들을 수 있게 기회를 제공한 데 있다. 국내 대학 최초로 학생에게 강의와 전공 선택권을 준 것이다. 부전공을 할 수 있었고 전과도 가능했다. 다른 대학에선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사학과에 입학한 나도 경제학과 인류학, 사회학을 공부하면서 역사를 보는 관점을 키울 수 있었다. 학생에게 공부할 자유를 주는 전통은 서강의 DNA로 남아 지금의 ‘다전공제’로 정착됐다.”

-다전공제가 특이하다. 무슨 의미인가.

“학생 개인이 원하는 강의를 다 들을 수 있게 학과 간 벽을 없앤 것이다. 영문학과로 입학한 학생의 경우 영문학 전공은 기본이고 다른 전공도 42학점만 채우면 인정해준다. 한 학년 학생 중 60~70%가 두 개의 전공을, 10%는 3개까지 이수한다. 원하는 공부를 하게 해주니 취업도 잘된다. 정규직 취업률, 4대 기업 취업률에서 모두 전국 1위에 올랐다.”

-현실적으로 그게 가능한가. 경영학과 등 특정 학과에 학생이 몰릴 수 있다.

“부전공제까지 허용하다가 본격적으로 다전공제를 도입한 98년에 29명이던 경영학과 교수를 지금은 52명까지 늘렸다. 전공에 구애 받지 않고 공부하려는 학생들에게 제한을 두지 않는다. 제가 총장 취임 직전에 경영학과에서 ‘수강생이 너무 많으니 B학점 이상이어야 경영학 강의를 들을 수 있다’고 제한했었는데, 그것도 없애고 있다. 자유로움이 대학의 전통이다.”

-고교생처럼 관리하는 건 좀 심하지 않나.

“개교 때부터 학사 운영을 엄격하게 했다. 한 학기에 두 번 이상 교수와 면담하고 강의실엔 지정 좌석이 있다. 3학점짜리 강의에 네 번 이상 결석하면 FA(Failure of Absence: 결석 과다로 인한 낙제)를 받고, 기말고사 후 학사경고 수준의 성적을 받으면 학부모를 부른다. 교수와 학생이 밀착된 교육이 강점이다. 대학이 그렇게 해야 학생들의 지적 성숙을 힘있게 도와줄 수 있다.”

-서강대가 침체됐었다는 지적도 있다.

“한동안 꽉 막혀 있다가 최근에 분위기가 살아나고 있다. 취임 초에는 인문학자 출신 총장이라 기부금도 얼마 못 모을 거라는 말도 있었다. 그런데 10개월 만에 300억원 이상 모았다. 동문도, 재학생도 활기를 찾고 있다. 역사의 패러다임을 바꾼 연구를 해온 힘으로 대학을 바꾸고 있다.”

-구체적인 발전 계획을 설명해 달라.

“변화의 속도가 빠른 시대를 살고 있다. 대학도 변화에 잘 적응할 뿐만 아니라 변화를 리드하는 방향으로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다전공제와 같은 학생을 위한 서비스를 더욱 강화하겠다. 인문학 교육을 강화해 전인적인 인재를 키우는 전통도 살리겠다. 전공에 파묻히지 않고 다면적 사고를 할 수 있어야 미래형 인재다. 외국인 교수도 총장 임기 내에 50명을 더 충원해 영어강의를 대폭 늘릴 방침이다.”

-대학이 옛 전공에만 매달려 있는 건 문제다.

“세상이 바뀌면 대학도 바뀌어야 한다. 세계적으로 ‘지식의 융합’ 얘기가 나오는 이유가 다 있다. 우리도 지식 융합으로 새 학문을 내놓을 것이다. 몇 개 학문을 융합해 새 전공을 만드는 것이다. 예술·과학·인문학을 통섭하는 ‘아트 앤드 테크놀로지’ 전공을 학부와 전문대학원에 신설하겠다. 지식융합학부(종합정책·의생명공학 전공)도 만들어 인문학을 아는 전문가를 키우려는 계획도 추진 중이다. 또 국제한국학과로 세계 각국 인재를 끌어모아 친한파를 만들고, 인문학부도 세계 각국의 인문학을 연구하는 국제 인문학부로 탈바꿈할 계획이다.”

-새 전공들은 언제부터 개설되나.

“현재 교무회의를 통과했고 정부 승인을 거쳐 내년부터 학부에 개설된다. 신입생은 2012학년도부터 모집할 계획이다.”

-남양주에 제2캠퍼스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2015년까지 완공할 계획이다. 남양주 캠퍼스를 우리는 ‘GERB(Global, Education, Research, Business)’라고 부른다. 실질적인 산·학 복합체의 모델이 될 것이다. 초·중·고도 신설하고 대학·평생교육까지 아우르는 명품 캠퍼스로 키우겠다. 특히 유엔 산하의 유일한 학위기관인 유엔평화대학 아·태센터를 운영해 개발도상국 청년들을 세계 지도자로 키우는 글로벌 교육을 주도하겠다.”

-교수는 대학의 힘이다. 개혁 방향은.

“전체 교수 376명 중 정년이 보장된 교수는 227명이다. 연구 업적이 거의 없는 분도 있었다. 정년을 보장 받았어도 매년 학술진흥재단 등재지 이상 학술지에 논문 한 편씩은 써야 하는 걸로 정년 보장 규정을 바꿨다. ”

-입학사정관제 속도전이 논란이다.

“취지를 살리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사정관제는 99%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실력 있는 1%의 인재를 뽑기 위한 제도다. 창학 정신을 구현할 수 있는 학생을 뽑으려면 속도를 내선 안 된다. 선발 인원을 전체 모집정원 1680여 명 중 200명 안팎으로 유지할 것이다. 지원자의 출신고교, 이름, 추천인 등을 가리는 블라인드 방식으로 뽑는다. 영어인증시험도 일정 점수 이상이면 동점 처리하고, 해외 봉사도 반영 않는다. 정부 정책으로 이어진 것은 잘된 일이다.”

-50주년 행사는 어떻게 하나.

“12일부터 매일 오전 11시 ‘명사 릴레이 특강’을 연다. 13일에는 ‘미래를 위한 창조적 인간’을 주제로 국제학술대회, 17일에는 동문 4000여 명이 모여 축하행사를 한다. 미래 50년의 새로운 시작이다.”

대담=양영유 정책사회데스크
정리=박수련 기자, 사진=조용철 기자

◆이종욱 서강대 총장=1946년생. 서강대 사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한 뒤 미국 캔자스대에서 인류학을,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에서 인류학·사회학을 공부했다. 이후 서강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85년부터 서강대 사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지난해 6월 모교 출신 첫 총장으로 취임했다. 서강대 박물관장·교무처장·연구처장 등을 역임한 ‘서강맨’이다. 『화랑세기로 본 신라인 이야기』 『색공지신 미실』 『춘추』 등 신라시대 관련 저서가 20여 권에 이른다. “나만큼 경주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말하는 신라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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