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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송호근 칼럼

천안함에서 보내온 송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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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도대체, 그날 밤 9시15분부터 22분까지 7분 동안 천안함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왜 정부와 군당국은 사건 발생 11일이 지난 오늘까지도 정확한 설명을 내놓지 못하는가? 언론 보도에 의하면, 천안함에 이상이 발생한 것은 9시15분, 인근 기지에서 폭음을 감지한 시각은 16분, 그리고 함미가 가라앉은 시각은 22분이었다. 이 운명의 7분을 해명할 수 없을 정도로 대한민국의 군사정보망은 부실한가?

최초 상황 발생 시각이 15분이 아니라 22분이었다는 군당국의 발표도 믿기지 않는다. 도시 지역에서 경미한 자동차 사고가 일어나도 그 전모가 여러 대의 감시카메라에 잡히는 것이 ‘IT 한국’의 정보통신력일진대, 첨단 해군의 주력함을 24시간 관찰하는 정보망이 없다는 것, 있다 해도 전투함의 개별 상황을 일일이 탐지하긴 어렵다는 것이 변명인가, 현실인가?

함미가 심해로 가라앉고 함수가 18분 동안 조류에 밀려 떠도는 동안 한반도를 감시하는 군사지휘통제부는 손을 놓고 있었는가? 천안함이 KNTDS(한국형 해군전술지휘통제체계)에서 사라진 바로 그 시각, 왜 해군작전사령부와 합동참모본부는 비상구조 단계로 돌입하지 못했는가? 대한민국의 비상대응체계는 그렇게 굼뜨다는 말인가. 해군은 전투력 증강에만 신경을 썼지 자체 재난에는 이토록 어수선하고 취약한 이유는 무엇인가?

아무것도 밝혀내지 못한 오늘, 영문도 모른 채 수장된 젊은 생명들이 해저에 있다. 그들이 찬 바닷물에 잠겨 있는 동안 국민들은 쉬이 잠들지 못한다. 이 땅의 아들들을 서해 깊숙이 두고 울부짖지 않는 부모가 어디에 있겠는가? 함정과 함께 보낸 그 찬란한 시간들, 저무는 바다의 애잔한 기억들을 두고 왜 바다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는지를 그 젊은 장병들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침몰 한 시간 전만 해도 평화로운 봄 바다의 소식을, 전함의 믿음직한 항해를 가족과 애인에게 즐겁게 타전하던 그들이었다. 살아 있음을, 이 망망대해에 든든한 함정과 함께 임무를 수행하는 청춘의 빛나는 시간이 그날 저녁만은 더 절절히 느껴졌을 터이다. 바람이 거세고 물결이 높아도 그들의 청춘을 위협할 아무것도 없었기에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세상이 부르는 호출부호에 응답하고 싶다. 육지에서 날아오는 다급한 교신의 그 애타는 부호들에, 생존의 작은 징후를 찾아 함미를 맴도는 잠수부들의 해머 소리에, 임무 종료를 하달하는 사령부의 귀대명령에 응답하고 싶다. 격실문을 박차고 나와 보무당당하게 귀경해서 구조 도중 숨진 베테랑 대원의 장례에 목 놓아 울고 싶다. 수색작업에 나섰다가 침몰된 쌍끌이 어선의 어부들과 퍼질러 앉아 차가운 소주를 들이켜고 싶다. 아, 끊겼던 그 통화를 재개하고, 그토록 고대했던 진급식에서 반짝이는 계급장을 달고 싶다. 그리하여, 함정의 고동 소리에 출격 준비를 서두르는 그 새벽의 상쾌함을 아직 잠에서 덜 깬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지금 우리는…차가운 해저에 있다. 해군의 눈부신 제복을 입고 바다에서 보냈던 세월과 우리는 무작정 작별했다. 대한민국의 수병답게 바다에서 마지막 숨을 거둬 영광이기는 하지만, 전사(戰史)에 남을 해전도, 형체가 뚜렷한 적과의 교전도 아닌 상황에서 수장되었다는 게 아쉽기는 하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군인들의 모든 죽음은 역사적인 것임을, 군인이란 죽음을 불사하는 명예로운 길임을, 일신의 소멸로 더 많은 생명의 불을 켜는 점등수(點燈手)임을. 그러니, 슬퍼하지 마시기를. 우리의 마지막 바다 백령도 근해에 핏빛 노을이 지면 그것이 우리들의 맑은 영혼이라 생각하시기를. 격랑과 폭풍을 진무하는 해신이 되어 국민의 안위와 영토의 안전을 지키는 맑은 영혼으로 피어올랐다 생각하시기를.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