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사설

“입학사정관제 이대로 가다간 엄청난 낭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정부의 입학사정관제 확대 정책에 여권 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대입에서 본격 시행된 지 2년 만에 외국어고·자사고 입시에 이어 국비(國費) 유학생과 대학 부설 과학영재교육원 학생 선발에도 입학사정관 방식을 도입하는 등 제도의 무차별 확산에 대한 경고음이 울리고 있는 것이다.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은 어제 라디오 방송에서 “입학사정관제가 이대로 가다가는 엄청난 낭패를 보게 된다”고 말했다. 사회 전반적인 문화와 제도가 입학사정관제를 수용할 준비가 안 돼 있는데 전가의 보도처럼 아무 데나 막 사용되고 있어 위험하다는 것이다. 그간 입학사정관제의 속도 조절 필요성을 여러 차례 강조해 온 우리는 정 의원의 지적에 공감하며, 제도 보완이 시급하다는 메시지로 받아들인다.

입학사정관제는 학생의 성적만이 아니라 잠재력과 소질을 종합 평가하는 선발 제도란 점에서 바람직하다. 그러나 정부가 과속으로 제도를 밀어붙이는 현 상황이 자칫 ‘입학사정관제 만능(萬能)주의’로 빠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제도의 공정성에 대해 검증이 덜 된 상태에서의 무리한 제도 추진은 선발 제도에 대한 신뢰 상실이라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국비 유학생 선발에 입학사정관제 방식을 도입한 것만 해도 그렇다. 정부는 올해부터 국비 유학생 선발 때 2차 전공필기시험 대신 지원자의 능력과 발전 가능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입학사정관제 방식을 시행키로 했다. 문제는 외국에 나가 공부하는 데 필요한 실력을 발전 가능성이나 잠재력을 따지는 방식으로 제대로 가려낼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는 점이다. 심사위원이 해마다 달라질 경우 선발 전문성 확보에도 애를 먹을 게 뻔하다. 유학생 1인당 최대 5만 달러의 국민 세금을 들이는 사업인 만큼 성과를 보아가며 단계적으로 시행하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본다.

전국 25개 대학 부설 과학영재(英才)교육원이 올해부터 선발 시험을 폐지하고 추천과 서류심사로 학생을 뽑는 것도 마찬가지다. 개별 학교에서의 영재성 판별 도구나 역량이 미흡한 상황에서 교장에게 학생 추천을 맡겨 제대로 영재 선발이 가능할지 등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정부는 입학사정관제가 “아무런 제재 없이 막 가고 있다”는 정두언 의원의 진단을 아프게 새겨야 한다. 여권 내 교육정책 논의를 주도하는 핵심 인사조차 그렇게 볼 정도라면 ‘입학사정관제 과속(過速)’이 도를 넘었다는 얘기다. 당장 올해 대입에서 열 명 중 한 명꼴(3만7600여 명)로 늘어난 입학사정관제 선발인원을 추가로 확대하는 데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먼저 제도의 공정성에 대한 신뢰를 확보한 뒤 늘려나가도 늦지 않다. 다른 분야로의 입학사정관제 선발 방식 확산도 대입 입학사정관제 정착 상황을 보아가며 부분적·단계적으로 하는 게 바람직하다. 브레이크 없는 입학사정관제 추진은 ‘엄청난 낭패’를 현실로 만들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