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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신도시라 못 부르는 까닭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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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광명·시흥 보금자리지구는 분당 신도시만 한 규모다. 면적이나 수용 가구 수에서 그렇다(표 참조). 그렇지만 정부는 ‘신도시’라고 부르길 꺼린다.

국토해양부 공공주택건설본부 이충재 단장은 31일 “택지개발촉진법에 규정돼 있는 신도시와는 다르다”고 말했다. 신도시는 기존 도시 밖에 새로 택지를 조성해 만드는 도시다. 그런데 광명·시흥지구는 도시 안의 땅이라는 것이다. 그는 “기반시설이 갖춰져 있다는 점에서 허허벌판에 신도시를 만드는 것과 차이가 있다”며 “정확히 표현하자면 (신도시가 아니라) ‘대규모 보금자리 지구’인 셈”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한사코 신도시가 아니라는 걸 강조하는 속사정은 따로 있다. 무엇보다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에 대규모 도시를 짓는 것에 대한 환경단체의 반발을 고려한 것이다. 광명·시흥의 목감천 일대는 그린벨트의 보고다. 서울 근교의 그린벨트로는 남양주 왕숙천 일대와 함께 가장 넓은 평지다. 비닐하우스나 공장이 산재해 있으나 농지로 잘 활용되고 있는 곳도 있다. “보존가치가 낮다”는 정부의 판정을 놓고 시비가 일어날 여지가 있는 곳이다. 이명박 정부는 그동안 비닐하우스·창고로 덮인 그린벨트를 주거단지로 개발하는 것은 ‘서민을 위한 일’이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따라서 광명·시흥지구를 신도시로 부를 경우 그린벨트 훼손의 명분이 약해질 수 있었다.

현행법상의 제약도 작용했다. 그린벨트를 푸는 절차는 무척 복잡하다. 택지개발촉진법에 따를 경우 지방자치단체가 미리 정해놓은 해제 총량을 신도시 용도로 전용하거나, 새로 해제 총량을 추가하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 광역도시계획도 바꿔야 한다. 반면 보금자리주택건설특별법은 지구 지정만으로 그린벨트가 해제되는 효과가 있다. 보금자리 지구는 330만㎡(100만 평) 이상 택지에 적용되는 ‘신도시계획기준’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녹지·도로·학교 등을 얼마나 확보해야 하는지 규정해 놓은 것이 신도시계획기준이다. 이런 기준과 절차를 적용받지 않으면 도시를 그만큼 빨리, 적은 비용으로 개발할 수 있다.

분당신도시만 한 곳을 5~6개로 쪼개 개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도 많았다. 지난해 9월 이충목 당시 시흥시 도시정책과장은 “330만㎡ 안팎으로 쪼개 보금자리지구로 개발하느니 대규모 신도시로 만드는 게 낫다”고 주장했다. 광명·시흥시는 공동으로 지난해 7월 2000만㎡ 규모의 대규모 신도시로 개발해 달라고 건의하기도 했다. 분당신도시만 한 땅 전체를 한꺼번에 지구로 지정하는 것은 이런 지자체와 주민의 건의를 일부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허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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