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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도광양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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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년간 중국 외교의 근간을 이뤄온 도광양회(韜光養晦ㆍ빛을 감추고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른다) 방침이 중국 안팎의 도전을 받고 있다.

홍콩경제일보는 29일 중국 외교부 관계자를 인용,“ 베이징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 금융위기의 선도적 극복, 코펜하겐 기후회의에서 중국이 중심 역할을 맡으면서 중국이 순식간에 국제무대의 중심에 섰다”고 보도했다. 중국이 도광양회를 벗어나 국제사회에 중국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중국이 국제무대에서의 역할이 갑자기 변하게 되자 이에 적응하지 못한 서방세계가 ‘중국오만론’ ‘거친 중국론’ 등을 퍼트리며 중국을 흔들고 있다”고 덧붙였다.

홍콩의 외교 분석가들은 “도광양회를 축으로 하는 대외관계 원칙과 세계 경제의 주도세력으로 커버린 중국의 현실이 충돌하는 상황”이라며 “도광양회가 시험대에 섰다”고 전했다. 인민대 국제관계학원 스인홍(時殷弘) 교수는 “서방국가들이 한 순간에 중국의 굴기를 수용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중국 외교는 이런 현실을 감안해 신중히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도광양회 유효 논란= 중국은 지난 20년간 연평균 10%에 가까운 성장을 거듭하면서 국력이 크게 상승했다. 이에 따라 고립주의에 가까웠던 외교 행태를 바꾸기 시작해 국제 문제에 대해 점차 ‘필요하면 할 말은 한다(有所作爲)’는 자세로 나오고 있다. 특히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중국의 전략적 공간이 확대되면서 그 행보는 빨라지고 있다. 지난해 코펜하겐 기후회의에서 중국이 의사결정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 주목을 받기도 했다.

홍콩경제일보는 “서방이 중국을 G2(미국ㆍ중국)로 띄우면서 국제 문제에서 중국의 적극적인 역할과 책임을 강조하는 한편 중국 외교가 오만하고 거칠어졌다고 지적하면서 이는 중국의 패권 추구의지를 보여준다고 비판한다”고 강조했다. 서방의 중국오만론 문제는 14일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폐막 직후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한 서방 기자가 제기하면서 불거졌다. 이에 원 총리는 “국제사회에서 중국에 대해 각종 비판적 이론이 나온다”며 “중국은 시종일관 패권주의를 지양하며 개발도상국으로서 다른 나라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 평화적인 발전을 추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도광양회적 입장이 바탕에 깔린 발언이다.

원 총리는 이날 예년의 기자회견과 달리 내치 문제보다 위안화 절상ㆍ보호무역주의 비판 등 대외관계 분야의 비중을 높였다. 홍콩경제일보는 “국제사회의 중국오만론을 적극 진화한다는 의미뿐 아니라 도광양회 방침을 현실에 맞게 재조정해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발언권을 높여야 한다는 중국 내부의 움직임을 겨냥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국의 역할 변화와 관련 중국 외교계 일각에서는 “중국은 이미 강성해지기 시작했다. 도광양회를 고수할 게 아니라 중국의 이익을 위해 국제사회에서 발언권을 강화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고 신문은 전했다. 중국 외교부 관계자는 “중국 정부는 최근 공식적으로 도광양회를 주창하는 일이 적어졌지만 그렇다고 이 방침을 명확히 포기한 것도 아닌 상태”라고 말했다고 홍콩경제일보가 전했다.

반면 국가발전개혁위원회의 장핑(張平)주임은 최근 중국발전포럼에서 ”중국은 전세계 경제를 이끌 역량이 부족하며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며 몸을 낮췄다. 우젠민(吳建民)중국외교학원장도 “도광양회는 100년간 유효하다”고 강조했다.

홍콩=정용환 특파원

☞◇도광양회=1989년 9월4일 덩샤오핑이 국제문제를 분석하면서 ”우리는 절대 선두에 서서는 안 된다(絶不當頭). 이것은 근본 국가책략이다“라고 밝혔다. 실력을 갖추기 전에는 앞에 나서지 않는다는 ‘도광양회(韜光養晦)’ 전략은 여기에서 비롯됐다. 중국이 강대국으로 부상했다는 ‘대국굴기’ 개념과 상반돼 중국의 부상에 긴장하는 서방의 견제심리를 누그러뜨리는 논리로 자주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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