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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원그룹 김영환 회장, 고학생 466명에게 장학금 27년간 ‘조용한 나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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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송원그룹 김영환 회장이 세운 재단의 장학금으로 대학을 다닌 장학회원들이 27일 창립 기념행사에서 김 회장을 안아서 올리고 있다. 1983년 만들어진 이 재단은 지금까지 466명에게 학비를 지원했다. [송원 김영환 장학재단 제공]

1983년 여름, 서울 충무로의 한 식당에서 중년의 기업인이 대학생 10명과 만났다. 그는 젊은이들에게 무뚝뚝한 경상도 사투리를 던졌다.

“뭔 할 말이 있나. 밥 묵자. 고기나 많이 무라.”

그는 자신이 낸 장학금을 받게 된 대학생들에게 장황한 인생 조언을 늘어놓지 않았다. 술잔이 몇 차례 돌고서야 짧게 말을 꺼냈다.

“다 돕고 사는 기다. 알았제?”

당시 참석 학생 중 한 명이었던 고려대 일어일문학과 최관(52) 교수가 기억하는 송원그룹 김영환(76) 회장의 모습이다. 최 교수는 “그때 고기를 구워 주시는 손길에서 학생들을 아끼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며 “말 없이 선행을 베푸는 자세에서 큰 가르침을 얻게 된다”고 말했다.

‘송원 김영환 장학재단’의 1기 장학생들이었던 최 교수 등은 27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열린 재단 창립 기념행사에서 김 회장에게 갈비세트를 선물했다. 고학을 하던 시절 고기를 배불리 먹게 해준 김 회장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다.

이 행사에서 김 회장은 70억원 상당의 회사 주식을 재단에 추가로 출연하겠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쌓아온 재단 기금과 맞먹는 규모. 장학생 300여 명과 각 대학 관계자로 가득 찬 행사장이 한순간 술렁였다. 이제껏 자신의 선행이 사회에 알려지는 것을 꺼려왔던 김 회장이 이례적으로 행사를 연 이유를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김 회장은 “등록금이 너무 많이 오른 탓에 장학금을 받아도 아르바이트를 해서 학비를 보태야 하는 학생이 많다”며 “돈 걱정 없이 공부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 금액을 대폭 늘리기로 했다”고 말했다. 기금이 두 배로 늘면서 내년부터 장학생들은 연간 1000만원의 등록금(현재 600만원)을 지원받게 됐다.

◆장학생 출신을 이사로 영입=화학공업 회사를 운영하던 김 회장이 1억4000만원을 출연해 장학재단을 만든 것은 83년이었다. 대학생들에게 한 학기에 50만원씩 학비를 지원했다. 회사 전 직원에게 자녀 대학 등록금을 지원하던 제도를 외부로 확대한 것이다. 이달까지 지급된 장학금 총액은 46억원. 수혜자는 466명에 이른다.

서울대 상대 출신인 김 회장은 대학 시절 가정교사를 하며 학비를 벌었다. 김 회장은 “공부 시간이 부족하다는 사실이 항상 안타까웠다”고 회고한다.

“아르바이트에 매달리다 보면 공부할 시간이 줄어듭니다. 그만큼 취업 관문을 통과하기가 어려워집니다. 저도 고학을 해봤기 때문에 그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압니다.”

58년 대학 졸업 후에는 10년 넘게 마산의 모직 회사에서 일했다. 그가 다시 서울에 올라와 창업을 하는 과정에서 학창 시절 친구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래서 그는 장학생들도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또 다른 성공 사례를 만들길 바란다. 2001년 장학생 1기 출신들을 재단 이사로 영입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이들은 신입 장학생 선발에 직접 참여한다. 김 회장이 선발 원칙으로 제시한 것은 ‘떡잎은 보호받아야 한다’는 철학 하나뿐이다. 몇 년 전 선발 대상자 면접에서 “장학사업도 기업 홍보용 아닙니까”라고 도전적인 질문을 던진 학생이 있었다. 김 회장과 이사들은 토의 끝에 이 학생을 뽑았다. 기업의 사회 공헌이 무엇인지를 체감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였다.

2005년엔 서울 화곡동에 기숙사 건물을 세웠다. 현재 방 18개에 26명이 입주해 있다. “월세방을 구하기도 어려운 지방 출신 학생들에게 마음 놓고 공부할 공간을 마련해주고 싶다”는 김 회장의 오랜 꿈이 이뤄진 것이다. 한때 “장학사업을 핑계로 부동산 투기를 한다”는 뜬소문도 있었지만 입주 완료와 함께 사라졌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박우희 세종대 총장은 대학 동기인 김 회장에 대해 “법정 스님이 ‘청빈’의 대표적 인물이었다면 김 회장은 청부(淸富)의 대표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선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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