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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음란물 원천봉쇄 역부족 판단능력 키워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50면

"자녀가 음란물을 전혀 접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자녀를 믿고 그들이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부모의 몫이죠. "

YMCA 청소년 상담실에서 15년간 성 문제를 주로 다뤄온 유외숙(50).윤경혜(49).홍숙선(54)씨가 공통으로 내린 청소년의 음란물 문제에 대한 처방이다. 이 상담실은 개소 15년 만에 청소년 성문화센터 '아하' 로 새로 단장, 3일 문을 연다.

상담원 세명의 눈에 비친 청소년의 성 문제는 부모들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가르쳐 준다.

2000년 청소년 상담실의 문을 두드린 10대는 모두 4천5백여명. 연령별로는 14~17세가 1천2백여명, 18~23세가 1천7백여명으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성 문제로 고민하는 청소년들의 연령이 크게 낮아지고 주변환경도 아주 나빠지고 있다.

오누이간이나 친척간 등 근친상간도 적지 않고, 여중생.여고생들이 임신과 낙태를 한 사례도 심심치 않게 접수됐다.

실제로 유씨가 최근 상담한 남자 고교생 중에는 동성애로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는 예도 있었다.

인터넷을 통해 만난 성인남자와 관계를 맺고 돈을 받아 쓰는 자기 자신에 대해 스스로 괴로움을 겪고 있던 것. 요즘 중.고생들이 겪는 원조교제가 여학생들만의 일이 아닌 것이다.

도를 넘는 이성교제로 부모와 갈등을 빚는 것도 흔하다. 홍씨는 "이성교제 자체를 무조건 막지 말아야 하지만 공부까지 등한시할 정도인 여고생에게, 그리고 그 부모에게 조언을 해야 하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고 털어놨다.

인터넷의 확산은 이들을 그 같은 유혹에 쉽게 빠져들게 한다. 컴퓨터가 보편화하기 전에는 포르노 잡지 등이 대부분이었지만, 인터넷에서는 성관계 모습을 동영상으로 쉽게 접할 수 있다. 인터넷 채팅방에서는 성관계를 맺을 수 있는 대상을 손쉽게 찾을 수 있다.

이렇게 급변한 환경에 전혀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성에 대한 어른의 가치관도 문제다.

대부분 성은 지저분하고 더러운 것으로 치부해 버리는 데 이는 자녀의 성 문제를 이해하기에 앞서 담을 쌓는 꼴이라는 것.

유씨는 "부모와 자녀간에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도 성 문제를 악화시키는 요인" 이라고 지적했다.

상담실을 찾은 청소년들은 "부모가 나에 대해 아는 것은 극히 일부분" 이라고 하는 반면 부모들은 "내가 아이한테 얼마나 신경을 많이 썼는데 억울하다" 며 서로 동떨어진 얘기를 하는 경우가 태반이라는 것.

이들을 상담하며 가장 안타까운 것은 청소년들로부터 고민을 듣다가도 원인이 결국 교육문제로 돌아갈 때다. 우선 학교에서 오로지 성적으로 평가 당하는 청소년은 스스로 자긍심을 갖기 힘들다는 것.

이런 아이들은 자위 혹은 이성교제 등의 문제에 부닥쳤을 때 "내가 정상인가, 아닌가" 라는 문제에 대해서도 자신이 없다는 것.

그래서 별다른 취미활동이 없는 청소년에게 성은 가장 쉬운 탐닉의 대상, 혹은 자기도피의 방편이 된다.

이은주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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