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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詩)가 있는 아침 ] - '골목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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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황인숙(1958~) '골목길' 전문

울퉁불퉁

동네 집 사이로 난

좁은 계단 길에

부러진 목발 기대앉아 있네요

외로운 얼굴로 기대앉아 있네요

작은 목발이에요

손잡이에 감긴 하얀 헝겊에

뽀얗게 손때가 묻어 있어요

참 작은 목발이에요

부러졌네요

지나가는 사람 드문

울퉁불퉁 좁은 계단 길

햇빛 한 줌, 잡풀 한 줌

강아지 오줌 자국 한 줌.



울퉁불퉁하고 좁은 계단이 많은 골목길은 제 몸 위로 아픈 다리들이 얼마나 많이 지나갔는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골목길은 자동차가 지나갈 수 없다. 그 길은 힘들고 아픈 다리들이 지나가면서 만든 길이다. 다리가 아파봐야 이 세상에 계단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다. 그러나 오르기 힘들어도 제 발로 걷는 사람에게는 길가의 '햇빛 한 줌, 잡풀 한 줌, 강아지 오줌 자국 한 줌'이 보인다.

김기택<시인>

◆ 필자 약력▷1957년 경기도 안양 출생▷시집 '태아의 잠''바늘구멍 속의 폭풍''사무원'▷김수영문학상. 현대문학상.미당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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