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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 안 치는 게 '朴手' "쉬운 정치 안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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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올해 정치인생 12년차를 맞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세종시 논쟁으로 다시 정국의 중심에 섰다. 2012년 대권 후보 1위인 그는 집권을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원안 플러스 알파’를 끝까지 고수하겠다는 입장이다. 쉬운정치·과거정치·관습정치의 틀을 깨는 정치개혁을 위해 ‘무서운 정치실험’을 하고 있다는 것이 측근들의 항변이다. ‘박근혜 식 정치’가 만들어진 뿌리와 미래 권력을 향한 그의 행보를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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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일 58번째 생일을 맞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지난해 생일과 똑같이 옅은 스트라이프 무늬가 들어간 회색 모직정장을 입고 여의도에 출근했다. 하지만 마음은 1년 전과 같지 않았을 것이다.

정치인생 12년 만에 맞는 '세종시전쟁'…'원칙과 신뢰' 정공법으로 정국 중심에 섰다 #커버스토리 박근혜는 왜?

지난해 생일은 공교롭게 청와대 회동이 겹쳐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생일 축하 노래까지 들었던 그였다. 올해 박 전 대표는 세종시 논쟁으로 청와대를 비롯한 친이계 여권세력으로부터 전방위 공격을 받고 있다.

더구나 이날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는 국회 교섭단체 연설에서 “우리 정치인들이 의욕과 야심에서 국가 대사를 자기 본위로 해석하는 경우가 없지 않다. 정말 나라를 위한다면 자신을 희생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며 반갑지 않은 ‘생일선물’까지 안겼다. ‘신뢰와 약속’을 내세우며 세종시 수정안에 반대하는 박 전 대표를 우회적으로 비판해 심기를 건드린 것이다.

차기 대선 주자 여론조사에서 박 전 대표의 지지율은 현재 부동의 1위에 올라 있다. 친박계는 6월2일 지방선거가 끝나면 자연스럽게 ‘박근혜 대세론’이 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박 전 대표가 정부가 제시한 세종시 수정안을 받아들이는 순간 차기 대선 주자로서 엄청난 상처를 입게 된다.

‘원칙과 신뢰의 정치인’이라는 이미지가 증발해버리게 되는 것이다. 설사 세종시 원안을 끝까지 고수한다고 해도 안심할 수 없다. 정부와 여당의 발목을 잡는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박 전 대표는 지금 정치인생에서 가장 힘든 고비 중 하나를 넘고 있다. 올해는 박 전 대표가 정치에 입문한 지 12년째 되는 해다.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 부하 김재규의 총탄에 사망한 뒤 19년간 은둔 생활을 하다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이 1998년이다. 그의 부활은 시작부터 험난했다.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으로 정권이 교체돼 처음 야당이 된 한나라당은 충격에 휩싸였다. 갈피를 잡지 못하던 한나라당에 4월2일로 예정된 국회의원 재·보궐선거는 당의 운명이 걸린 선거였다.

‘박근혜권력’의 뿌리는 도덕적 정치개혁

한나라당의 전통적 지지기반인 대구 달성에서는 누가 출마해도 여당 후보에게 크게 뒤진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선거자금이라고는 집 한 채와 몇 천만원 정도의 현금뿐이었다. 1000원짜리 지폐를 꼬깃꼬깃 접어 쥐어준 시장 아주머니부터 박근혜 캠프가 돈이 없어 고전한다는 소리를 들은 시민들이 1000~2000원 지폐가 담긴 비닐봉투를 내밀었다.

박 전 대표는 이들의 정성을 가슴에 담고 하루 10만 보 이상을 걷고 또 걸었다. 결과는 기대 밖 대승이었다. 박 전 대표는 자서전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움직인다>에서 “지금도 나는 국회 본회의장 발언대에 섰던 첫날을 떠올리고는 한다. 그날 내가 결심했던 것들을 지금 나는 얼마나 지키며 살고 있는가를 생각하면 잠시도 느긋할 수가 없다”고 적고 있다.

그는 자신을 정치인으로 서게 한 ‘달성대첩’을 정치인생의 깃발로 삼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자 여성 정치인이라는 점은 처음부터 시선을 끌었다. 고난과 용기, 내공을 갖춘 내면, 반듯함과 우아함, 정숙함과 고전미를 갖춘 용모, 비운에 간 전직 대통령의 딸이라는 연민과 부채감을 들게 하는 여운은 화학작용을 일으켜 어느 정치인도 흉내 낼 수 없는 ‘박근혜 이미지’를 완성시켰다.

박정희의 유신을 기억하는 일부 40대 층을 제외하고는 지역·성별·계층·학력·지위 고하 없이 15~18% 이상의 고른 지지층을 가지고 있는 정치인은 박근혜가 유일했다. 특히 박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보수진영 및 영남, 어머니 육영수의 고향인 충청지역 지지표를 얻는 데 유리하게 작용했다.

박 전 대표는 지금 ‘여의도 대통령’이라는 말을 들으며 제2의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의 말 한마디에 정책이 흔들리고, 지역 민심이 요동친다. 정국을 흔들고 있는 세종시 논쟁의 키도 박 전 대표가 쥐고 있다. 대한민국 정당 사상 개인의 이름을 딴 ‘친박연대’가 만들어진 것도 다른 나라에서는 유례가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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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과 충청지역에 지지세력을 두고 있는 서청원 전 친박연대 대표(오른쪽)의 재수감으로 박근혜 전 대표의 심기도 복잡하다.

박근혜 권력을 키운 요인은 태생적으로 만들어진 이미지와 도덕적 정치개혁의 행보였다. 원칙과 정직, 약속과 신뢰를 지키는 일관된 행동이 그를 여권 내 가장 힘센 ‘비주류’의 핵으로 자리 잡게 했다는 평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세종시 원안 사수에 대한 고집도 바로 박근혜가 한나라당에 입당한 후 꾸준히 제기해온 정치개혁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봐야 한다는 해석도 나온다.

16대 국회의원 당선과 함께 한나라당 부총재로 선출된 후 박근혜의 가장 큰 화두는 ‘정치개혁’과 ‘정당개혁’이었다. 원칙과 약속을 지키는 민주화한 정당 만들기가 그가 생각한 정당개혁의 핵심이다. 당의 장악보다 당의 민주화를 이루는 것이 우선이었다.

2004년 한나라당이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역풍에 차떼기사건까지 불거지면서 지지도가 급락해 최병렬 대표까지 사퇴할 지경에 이르렀을 때 그는 당 대표가 돼 천막당사를 치며 대국민 사죄에 앞장섰다. 17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121석을 차지하는 데 결정적 공헌을 한 것은 박 전 대표의 진심이 큰 역할을 했다.

‘박다르크(박근혜+잔다르크)’라는 별명이 붙은 것도, 정권의 정통성과 권위를 대표하는 인물로 떠오르며 잠재적 차기 대권 주자로서 부상되기 시작했던 시기도 이때다. 그는 2001년 이회창 총재가 한창 권력을 행사할 때 한나라당 경선에서 이 총재와 겨룬다며 가장 먼저 대권 도전을 선언했다.

2002년 이 총재의 비민주성을 비판하며 미련 없이 당을 떠난 것도 박 전 대표였다. 그때까지 이 총재에게 대든 사람은 없었다. 당시 한 중진 의원은 “한나라당 의원 모두를 합해도 박 대표보다 못하다. 당이 위기인데 희생이 필요하면 해야지 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유일했다. 개인 자질로는 제일 많이 갖춘 사람”이라고 말했다.

27개월, 총 816일의 대표 재임기간 당 수석 대변인으로 박 전 대표를 보좌했던 이정현 의원. 그는 2005년 당시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나라당을 완전히 변화시킨 사람이 박 전 대표다. 중앙당이 해먹은 것이 없으니 더 이상 부정부패당도 아니다. 꼴통 짓 한 것이 없으니 수구꼴통이라는 비난도 옳지 않다. 수도권과 충청·강원에서 이겼으니 영남당도 아니다. 당내 민주화가 타당의 추종을 불허하니 반개혁당도 아니다.”

최근 국회에서 만난 이 의원의 목소리는 여전히 격앙돼 있었다. 그는 지난해 10월 정운찬 총리가 임명되고 세종시 수정안 논의가 나온 이후부터 지금까지 최일선에서 박 전 대표의 대변인 역할을 해오고 있다.

“박 전 대표는 지금 무서운 정치실험을 하고 있다. 쉬운정치·과거정치·관습정치에서 벗어나 신뢰와 신념·원칙·정도·약속을 지키는 정치를 실현하겠다는 외로운 투쟁이다. 정치적 꼼수나 지방선거나 대선을 위한 물밑 교섭정치가 절대 아니다. 국토 균형발전을 위해 여야 합의 하에 관철시킨 세종시 문제를 다시 손바닥 뒤집듯 바꿔버리는 쪽과 그 약속을 지키는 쪽 누가 잘못하고 있는 것인가?”

박 전 대표의 약속이나 신뢰에 대한 강박관념은 그가 받은 상처에서 비롯된다. 경선이 있기 1년 전인 2006년. 박 전 대표는 사촌형부인 김종필 전 자민당 총재를 찾아갔다.

“나라를 위해 이번 경선에 나갈 생각이니 한번 도와주세요.”

이 자리에서 JP는 “물론 도와주겠다. 열심히 해보라”는 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JP는 이후 2007년 경선에서 YS와 함께 이명박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박 전 대표의 최측근에 따르면 “누구를 지지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이지만 자신이 한 말을 바꾸는 태도에 대해 박 전 대표가 당시 실망을 금치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상처는 더욱 깊었다. 2007년 8월20일 한나라당 경선. 박근혜 후보는 깨끗하게 패배를 받아들였다. 이후 박근혜 대표는 13개 시·도를 돌며 이명박 지지를 호소했고, 투표일까지 세 번이나 집으로 찾아온 이회창 총재를 외면했다.

이후 이명박 후보는 대통령이 됐다. ‘약속의 정치’에 대한 신념은 2008년 총선 공천 과정에서 무너졌다. 친이 계열인 이재오·이방호 등이 앞장서서 공천에서 적극적으로 이명박 계열의 정치인들을 후보로 내세우고 친박 인사들을 대거 탈락시켰던 것. 박 전 대표는 이때 “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고 말했다.

배반의 기억, 그리고 강박관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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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정운찬·정몽준 두 정씨를 등장시킨 배경을 보고 박근혜 전 대표는 2012년 대권구도에서 자신은 완전히 제외됐다는 위기의식을 느꼈을 수 있다.
정치인 이전의 박근혜의 인생에도 배신에 대한 추억은 낙인처럼 찍혀 있다. 동생 박근령 씨는 2008년 기자와 만나 “아버지 서거 후 돌아서는 사람들을 보며 언니는 무척 괴로워했다.

한동안 아침 식탁에 올려진 신문도 들춰보지 않고 방에서 하루 종일 나오지 않을 때도 있었다”고 회고한 적이 있다. 누구보다 강한 배반의 상처를 가진 그에게 원칙과 신뢰는 평생 강박관념처럼 그를 따라다녔다.

박근혜 전 대표의 경선 캠프에서 일했던 한 교수의 회고를 들어보자. 그는 경선 패배 직후 박 전 대표에게 충심어린 지적을 건넸다. “겪어보셔서 알겠지만 선거는 현실입니다. 약속과 원칙만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을 아시지 않았습니까?”

이에 대해 박 전 대표는 “저도 현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제 입으로 말한 약속과 원칙은 지켜야 합니다”라고 고집을 꺾지 않았다는 것이다. 박 전 대표가 당 대표 시절 ‘국민과의 약속, 이렇게 지켰습니다’라는 대 국민 약속 실천백서(2004.3~2006.2)를 낸 것은 그가 얼마나 약속에 민감한지 보여주는 사례다.

본인을 비롯한 당내 의원들이 공약과 정책을 어떻게 지켰는지를 적은 321쪽에 달하는 이 백서는 이후 당 대표가 바뀐 후 3년째 발간되지 않고 있다. 박 전 대표가 탄핵 당시 철회 주장을 물리치고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르자”고 한 것도 한번 저지른 행동이나 뱉은 말을 지켜야 한다는 약속의 강박감 때문이었다.

박 전 대표는 정치인으로는 드물게 부패와 연루된 전력도 거의 없다. 경선시절 선거자금을 모금하고 있다는 사촌오빠에게 전화를 걸어 “그 돈을 다 돌려주라”고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경선시절 국내 큰 출판사에서 작가를 고용해 자서전을 써온 것을 보고 “이건 제가 쓴 것이 아니잖아요”라며 물리쳤다.

그러고는 기어이 자신이 오랫동안 준비해온 글을 모은 자서전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움직인다>를 발간했다. 17대 총선 때 한나라당 선대본부장으로 활약한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선거유세 당시의 박 전 대표 모습을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박 대표는 남자들도 버티기 힘든 유세 현장을 ‘힘들다’는 소리 한 마디 안하고 다녔는데, 나중에 손이 퉁퉁 부어 붕대를 양 손에 감은 것을 보고 제가 ‘붕대를 좀 더 많이 감아서 유권자들 마음을 찡하게 합시다’라고 했더니 웃기만 하고 꿈쩍도 안 해요. 거짓말은 고사하고 과장도 못하는 사람입니다.”

여의도에서 만난 한 친박계 인사는 “정치인으로서 원칙과 소신, 가치관을 포기하라는 게 아니라 일시 유보할 때는 물러설 줄도 알고 펼쳐야 하는데 태생적으로 이게 안 되는 사람이 박 전 대표”라고 말했다. ‘원칙과 소신정치’는 박근혜를 키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되기도 한다.

박 전 대표가 본인이 원하는 정치를 하기 위해서는 권력을 쟁취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정치공학을 익혀야 한다. 지금의 순도 100%의 윤리의식과 도덕적 강박관념, 신비주의만으로는 그 목적을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윤 전 장관이 지켜보았던 ‘정치인 박근혜’의 단점은 스킨십 부재와 미래지향적 비전이 약하다는 것이다.

“박 전 대표는 뜨겁고 차가운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스킨십 부재란 마음을 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본인이 겪은 상처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대중 앞에 갑옷을 벗어 던질 필요도 있는 것입니다. 열정의 지도자가 필요한 거죠. 그러나 박 전 대표에게는 ‘실수는 안 된다’는 강박관념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관리형 리더십이죠. 이게 너무 강하면 외부 충격에 취약할 수 있습니다. 또 한 가지는 아버지와 자신의 리더십을 동일시하는 점입니다. 21세기 지도자가 될 사람이 ‘새마을운동’을 자주 언급하는 것은 이미지 손상에 치명적일 수 있다는 겁니다.”

박근혜의 사람들

기존의 정치인들은 핵심 측근을 키우며 권력을 지켜왔다. 전두환 대통령 옆에는 노태우와 정호용·허화평·허삼수 등 신군부가 있었고, 노태우 옆에는 박철언이 있었다. YS에게는 상도동계, DJ에게는 동교동계, 노무현에게는 문재인과 이호철이 있었다. 거물 정치인 박근혜에게는 일정한 인핵집단이 없다.

정계입문 전 한때 박 전 대표를 ‘영남권 공주’라고 폄하하기도 했던 전여옥 의원. 박 전 대표의 대변인으로 최측근에 있다 2007년 대선 이후 다시 소원해진 전 위원은 박 전 대표의 사람관리에 대해 의미심장한 말을 한 적이 있다.

“박근혜는 세력과 돈, 충성파로 포진했던 20세기 정치를 거부합니다. 대표를 맡아 유리한 위치에 서 있지만 자기세력을 만들지 않습니다. 누가 박근혜의 보좌그룹인지 보이지 않아요. 직책에 따라 사람을 대할 뿐 충성파라고 믿지 않는 겁니다.”

경선시절 정책자문단 중 한 명이었던 모 학자도 같은 의미의 말을 했다.

“박 전 대표는 그때 그때마다 필요할 때 사람들을 옮겨 다닙니다. 그 역할이 끝나면 전화 한 통도 먼저 하지 않을 정도로 냉정한 면이 없지 않죠. 그런 면 때문에 공천파동이나 정치판의 줄서기 관행을 없애는 데 큰 역할을 하기도 했지만 당사자 입장에서는 서운할 때가 있어요.”

박 전 대표는 당 대표시절 비례대표 공천부터 시작해 모든 재·보궐선거 공천은 그때마다 구성되는 공천심사위원회에 전권을 넘겼다. 이정현 의원은 “5·31 지방선거는 사상 처음으로 시·도 당에 공천권을 이양했고, 혁명적 정치실험이었으며 성공적이었다. 줄세우기정치·계보정치를 한나라당에서 지워버린 사람도 박근혜 대표”라고 말했다.

박 전 대표는 가만히 있는데 그를 둘러싼 그룹이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이유 중 하나다. 한나라당 내에서 박 전 대표의 초창기 참모는 크게 세 부류였다. 남경필·원희룡 등 소장파와 김형오·이한구 등 당직자그룹, 박세일·박형준·박재완 등 초선 학자 그룹이다. 경선시절에는 유승민·이혜훈 의원 등이 활발하게 측근으로 활약했다.

지금은 이들 모두 좀 소원해진 상태다. 현재 주류로 분류되는 이들은 유정복·이성헌·이정현·진영 의원 등 비서실장 내지 대변인 역할의 소장파들이다. 최근 박 전 대표의 최측근으로 은밀히 회자하는 인물 중 한 명이 진영 의원이다. 호남 출신인 진영 의원은 진중하고 이해타산에 약하며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를 정도로 조용하다는 말을 듣고 있다.

친이 쪽과 대화도 되면서 당을 장악하려는 욕심이 없어 박 의원 측근의 온건파로 대표되는 인물이다. 대선 실패 후 강성보다 화합과 통합을 상징하는 대표적 인물을 찾던 박 전 대표에게 적합한 인물일 수 있다는 것. 박 전 대표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서 열변을 토하는 이정현 의원과는 정반대 캐릭터다.

온건파로 대변되는 진영 의원과 반대편에 서 있는 친박계 대표주자가 김무성 의원이다. 부산 태생인 김 의원은 박 전 대표가 당 대표시절 사무총장 자리를 맡아 탄핵열풍으로 휘청이던 한나라당을 구하며 친박계 ‘좌장’으로 불렸다. 하지만 지금은 소원해진 상태다. 지난해 5월 박희태 대표가 당 화합 차원에서 제기한 김무성 원내대표 추대론에 박 전 대표가 반대하면서부터다.

김 의원은 최근 한 지방신문과 인터뷰에서 “퇴로를 항상 열어 놓아야 하는데 너무 강경한 것 아니냐? 나아가는 큰 길은 같지만 박 전 대표의 정치신념은 ‘원칙’이고, 저는 ‘협상과 타협’”이라고 말해 세종시 문제를 압박하기도 했다. 충청도를 적으로 만들어서는 어느 당도 집권이 불가능하다.

총선에서 당권 장악이 중요한 싸움인 이유다. 계파 간 갈등이 첨예화할 지방선거를 앞두고 박 전 대표에게 힘을 실어줄 또 한 명의 인물은 서청원 전 친박연대 대표다. 6선의원으로 정치고수인 서 전 대표는 수도권과 충청지역에 지지세력을 두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18대 총선에서 친박연대를 창당해 2주 만에 국회의원 14석을 배출한 저력이 있다.

그가 지난해 공천헌금수사라는 검찰조사에 의해 구속될 당시 “정치적 보복이자 지방선거를 겨냥한 것”이라는 친박계 인사들의 저항이 거셌다. 올해 2월1일 서 전 대표의 재수감 결정으로 친박계는 다시 술렁댔다. 박 전 대표 측근에 따르면 “2월5일 산소통을 달고 의정부교도소에 재수감되는 모습을 본 박 전 대표의 심기가 복잡했다”고 말했다.

현재 박 전 대표가 발벗고 나서서 서 전 대표의 사면을 촉구하고 나설 수도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밖에 박 전 대표는 요즘도 개인적으로는 끊임없이 정책자문그룹을 만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문그룹의 실체는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박 전 대표가 단단히 입단속을 하기 때문이다. 간간이 나오는 인물 중 김용환 전 의원(3공화국 재무관료 출신),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 등 2007년 경선 캠프에서 활동했던 원로그룹과 차동세 전 KDI 원장, 이상주 전 교육부총리 등이 회자하고 있다.

대권을 포기해도?

박 전 대표는 자의든 타의든 승부수로 초강수를 던져 놓은 상태다. ‘세종시 싸움’은 충청표라는 중요한 대선 승부처이기 때문이다. 박근혜가 던진 승부수는 적어도 3가지 전선에서 현재 유리한 고지에 있다. 첫째 여의도다. 네 야당이 다 반대하고 한나라당 내에서도 친박계 의원들의 반대가 심해 정부의 수정안은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한나라당 의석은 모두 169석. 이 중 50~60명이 친박계로 분류돼 세종시 수정안을 찬성하는 야당은 단 한 곳도 없는 상황에서 한나라당은 단독 과반수를 만들어야 수정안을 통과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친이계나 정부는 충청도 민심이 원안에서 수정안 쪽으로 바뀌고 있다고 하지만 만약 수정안 쪽으로 기울어져도 각종 특혜를 받는 충청도를 제외한 다른 지방에서 역차별이 들어올 수 있다.

6월 지방선거에서 설사 충청도 민심이 돌아선다고 해도 다른 지방에서의 역풍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마지막은 수도권이다. 2012년 총선과 대선이라는 최종전을 염두에 둔다면 박 전 대표에게 충청도 민심만큼 중요한 곳이 수도권이다. 친이 쪽은 정부의 수정안이 통과되면 적어도 유권자의 절반이 있는 수도권표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친박계 인사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수도권은 여전히 출신지역의 정서를 강하게 갖고 있는 곳이지, 별개의 정체성이 있는 곳이 아니라는 것이다. 수도권 민심도 영남 반, 호남 반이기 때문에 나머지 표의 향방을 섣불리 재단하는 것은 오산이라는 것. 세종시 이슈를 오래 끌어 충청 출신 표가 야권으로 결집해 버리면 불리한 쪽은 정부와 친이 쪽이다.

친박계 내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세종시 원안 플러스 알파’를 끝까지 고수해 한나라당이 지방선거에서 패배할 경우 세종시 문제가 부메랑이 돼 박근혜 전 대표의 책임론으로 귀결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조기 전당대회를 관철시켜 박 전 대표가 당에 복귀해 당권을 잡고 오는 지방선거에서 승리함으로써 정국의 주도권을 잡아나가야 한다는 강경론이 나오는 이유다.

세종시 부결 이후 7월 전당대회에서 박 전 대표가 출마해 당을 장악하고 19대 총선의 공천권을 행사해 대통령 후보 경선과 당내 역학구도까지 내다본 계산이라는 해석이다. 최근에 만난 한 정치원로의 해석은 더욱 의미심장하다.

“세종시는 하나의 계기이고, 이제 여권의 권력게임이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대통령이 정운찬·정몽준을 등장시킨 배경을 보고 박 전 대표는 2012년 대권구도에서 자신은 완전히 제외됐다는 위기의식을 느꼈을 수 있어요. 지난번 총선 때 이미 친박계 인사들의 대거 공천 탈락 충격을 받았잖아요? 박 전 대표가 지방선거에서 당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촉박합니다. 공천에 임박해 초강수를 두면 명분도 없고요. 정 총리가 세종시 수정안 발언을 한 직후부터 강하게 반대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단순히 신뢰 정치를 위해 지금 행보를 한다고 믿는 것은 박근혜를 모르고 하는 소리예요.”

이런 해석에도 친박계 의원들은 항변한다. 박 전 대표의 세종시 입장은 오로지 ‘신뢰정치’를 실행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다. 대권을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사활을 걸 사람이 바로 ‘박근혜’라는 것이다. 박 전 대표의 지나온 정치행보를 돌아보면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이 말대로라면 박근혜의 집권을 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마음’이다. ‘정치인 박근혜’는 지금 인간적 순수를 지키며 집권을 위한 권력투쟁을 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는 것이다.

박미숙 월간중앙 기자 [splanet88@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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