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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 열풍 여세 몰아 이젠 할리우드로 가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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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할리우드에 한류 열풍이 몰아 닥치고 있다. 언뜻 한국 영화가 세계 최대의 영화 시장인 미국 영화계를 석권하고 있다고 자부심을 갖는다면 큰 오해다. 여기서 언급한 것은 '韓流'가 아닌 '漢流'다. 중국은 이미 오래 전부터 미국뿐 아니라 유럽 영화 시장에서 영화 강국으로 자리매김되고 있다. 엄격한 검열이 실시되고 있는 사회주의 국가라는 치명적 약점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천카이거는 중국 전통 연극인 경극을 소재로 한 '패왕별희'로 1993년 칸 황금 종려상을 받았다.

흔히 천카이거와 베이징 영화학교 동기로 중국 5세대 감독의 선두 주자로 주목받고 있는 장이머우의 '영웅'은 중국 전국시대를 배경으로 천하통일을 눈앞에 둔 진왕 영정(진시황)을 암살하려는 무술 고수들의 이야기를 다룬 무협 액션극. 미국 극장가에서 2004년 8월 29일 공개, 아시아권 영화로는 최초로 흥행 톱을 차지하는 기록을 수립했다. 수천발의 화살이 날아가는 장면과 붉은색과 노란색 등 시선을 현란하게 만드는 화면 구성법, 중국에 대한 관객들의 호기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미국 관객들의 격찬을 얻어냈다는 게 현지 평이다.

대만 출신의 이안 감독은 조상 대대로 전수된 보검을 뺏기 위한 무사들의 암투를 묘사한 '와호장룡'으로 2001년 아카데미에서 미술감독.촬영.음악.외국어영화상 등 무려 4개 부문을 수상하는 성과를 거둔다. 아카데미에서 아시아권 영화가 거둔 최대 수상 실적이다.

흔히 중국 영화권은 천카이거 등이 광활한 대륙을 활용한 역사 사극에 중점을 두고 있는 중국 본토를 필두로 해 1945년 2월 28일 벌어졌던 대만인의 독립운동에 대해 장제스의 국민당 정부가 자행한 무차별적인 유혈 진압 사태를 고발한 허우샤오셴 감독의 '비정성시'처럼 대만 정치.사회에 도사리고 있는 문제점을 드러낸 작품이 균형추를 이루고 있다. 여기에 청룽으로 대표되는 홍콩 액션 스타들의 현란한 오락극이 가세해 막강한 중국권 영화 열풍을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권 출신 배우와 감독들의 활약상도 두드러지고 있다. '첩혈쌍웅' '첩혈가두' 등으로 80년대 홍콩 누아르 붐을 주도했던 우위썬 감독은 1997년 존 트래볼타, 니컬러스 케이지 등 1급 스타를 캐스팅해 '페이스 오프'를 공개한 것을 필두로 해 톰 크루즈의 '미션 임파서블 2', 니컬러스 케이지의 '윈드토커' 등으로 이제 할리우드 1급 흥행 감독으로 자리잡고 있다.

저우룬파는 율 브리너의 출세작 '왕과 나'의 리바이벌 작인 '애나 앤 더 킹'에서 조디 포스터와 콤비를 이뤄 완고하고 융통성 없는 태국 국왕역을 열연해 갈채를 얻어냈다.

국내 배우의 캐스팅 설이 나돌았던 스필버그 제작의 '게이샤의 추억'의 히로인역은 '와호장룡' '연인'의 장쯔이가 캐스팅됐다. 여기에 '해피 투게더'로 칸 남우상을 차지한 량차오웨이, '클린'으로 2004년 칸 여우상을 가져간 장만위 등이 스타급 배우로 가세하고 있다.

중국권 배우들의 두드러진 활약에 대해 여러 진단이 제기되고 있다. 그중 '영어'를 거의 완벽하게 구사할 수 있다는 언어적 장점과 함께 쿵후라는 고유 무술을 응용한 신체적인 유연함, 노래.춤 등 종합 엔터테이너의 천부적 재질 등이 동양인이라는 핸디캡을 극복하고 당당히 세계 영화가의 주류로 부상할 수 있는 요인으로 지적받고 있다.

배용준을 비롯해 원빈.이병헌 등은 '꽃미남'이라는 섹시 코드로 일본에서 한국 연예인 붐을 일으키고 있다. 이들이 영어.태권도, 음반을 취입할 수 있는 가창력을 갖추고 있을까? 중국 영화인들이 주도하고 있는 '漢流'를 '韓流' 신드롬으로 역전시킬 수 있는 특화된 재능꾼을 빨리 육성해야 한다. 21세기는 문화 전쟁 시대다.

이경기 영화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