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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환영의 시시각각

한국 정당의 ‘정당성’ 콤플렉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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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변수가 두 개인 ‘2x2의 사고법’은 일상적으로 이미 구사된다. 우스갯소리에도 많이 응용된다. 예컨대 부부싸움할 때에 남편의 평소 ‘능력’에 따라 아내의 입에서 다음 네 가지 중 한 가지 말이 나온다고 한다. “그래 너 잘났다.” “사람이 어떻게 밥만 먹고 사냐.” “네가 짐승이지 사람이냐.” “도대체 해 준 게 뭐냐.” 여기서 두 개의 변수는 ‘돈 벌이 능력’과 ‘밤일 능력’이다. 1980년대에는 ‘키’와 ‘키 이외의 특성’이라는 2개 변수로 미팅에 나오는 남학생을 네 부류로 나눴다. “키도 크다.” ”키만 크다.” “키만 작다.” “키도 작다.”

정치학자들이 정치체제를 분류할 때 딱 두 가지 변수만 고르라면 ‘정당성·정통성(legitimacy)’과 ‘효율성(efficiency)’을 선택하기도 한다. 모든 정치체제는 정당성·정통성과 효율성을 모두 구비한 경우, 효율성은 없고 정당성·정통성만 있는 경우, 정당성·정통성은 없고 효율성만 있는 경우와 둘 다 없는 경우로 나눠 볼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우선 ‘정당성·정통성’ 문제에서 가장 큰 감점 요인이라고 할 수 있는 쿠데타는 아득한 일이 됐다. 이미 우리와 관계없는 일이기에 다른 나라에서 쿠데타가 발생해도 별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러나 아직 많은 나라들이 쿠데타의 그늘 밑에 있다. 지난달 18일 니제르에 쿠데타가 발발했다. 현재 쿠데타로 집권한 지도자는 15명이나 된다. 태국은 현 국왕의 즉위 후 쿠데타가 열 아홉 차례 발생했다.

민주화가 달성되고 쿠데타나 장기 집권에서 ‘졸업’했다고 해서 ‘정당성·정통성’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독일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가 1975년 ‘정통성의 위기(legitimacy crisis)’ 문제를 제기한 이래 선진국의 경우에도 정당성·정통성의 문제를 따지고 있다.

우리나라 정치, 특히 정당 정치의 정당성·정통성 문제는 어쩌면 아직도 ‘후진국형’이다. 정당성·정통성의 중요한 기반 중 하나는 전통과 역사성이다. 전통과 역사성이 확고하게 자리 잡기에는 정파 간 이합집산이나 당명 변경이 너무 잦다. 한나라당에서는 세종시 논란으로 분당론까지 제기됐다. 야권 분열도 가속화되고 있다. 1월 국민참여당이 창당됐으며, 26일에는 김대중 정부 당시 40~50대 참모들로 구성된 ‘행동하는 양심’(가칭)이 출범한다. 중앙SUNDAY 14일자 이정민 칼럼에 따르면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계승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여러 개의 범민주당 세력이 각기 정당성·정통성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정당성·정통성의 문제를 효율성으로 해소하는 것은 한국 정치의 전통처럼 되어 버렸다. 두 차례 쿠데타에 의한 집권의 경우에 정당성·정통성이 없었으나 집권 이후 효율성이 좋았다. 뛰어난 효율성으로 정당성·정통성을 차츰 확보해 나갈 수 있었다. 야권 세력도 마찬가지다. YS와 DJ의 대통령 후보 단일화 실패, 야권 분열, 3당 합당 등은 정당성에 이의를 충분히 제기할 수 있는 정치행위였다. 그러나 결국 두 분 다 대통령이 됐고, 성과로 정당성의 문제를 해소하려고 했다.

이러한 잦은 분당, 합당, 당명 변경은 한국 정치의 역동성을 상징하기도 한다. 꼭 나쁘게만 볼 일은 아닌지 모른다. 그러나 미국 공화당이 1854년 창당 이후, 민주당은 1830년 당명 변경 이후 쭉 같은 당명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우리는 언제쯤 정당성과 효율성을 완벽하게 겸비한 정당을 만날 수 있을까. 앞에 언급한 농담을 빌려 표현하자면, 국민들 입에서 정당들을 향해 “도대체 해준 게 뭐냐”가 아니라 “그래 너희들 잘났다”는 말이 나와야 정상이다.

김환영 중앙SUNDAY 지식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