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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지식인 지도] 월러스틴과 세계체제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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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임마누엘 월러스틴(Immanuel Wallerstein)은 ‘세계체제론’의 창시자로 우리 학계에 잘 알려져 있다. 그가 우리 학계에 끼친 영향도 적잖은 편인데, 사회학·국제정치학·서양사학·문학평론 등 지평이 넓다.

세계체제론은 무슨 대단한 이론이 아니라 기존의 지배적인 서구 사회과학 인식론에 대한 문제제기이며, 19세기 서구에서 형성된 서구사회과학에 대한 탈피의 요구이자 대안에 대한 요청이다.

그의 지적 세계를 알기 위해서는 두가지 요인을 짚어야 한다. 하나는 뉴욕에 있는 컬럼비아대학이며, 다른 하나는 1950∼60년대 정점을 이룬 미국 헤게모니다. 그는 47년부터 71년까지 24년간, 콜럼비아대학에서 학부부터 박사까지 교육을 받았고 이어 교수생활을 했다. 이 자체가 대단히 예외적인 경우이긴 하지만 이 시기가 바로 미국이 주도하는 ‘자본주의의 황금기’였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런 미국의 핵심도시 뉴욕은 세계 생산과 교역·금융·국제정치·문화의 센터였다.

***식민국 독립 연구 천착

세계문화의 거점인 뉴욕과 서구 사회과학의 정점을 이루었던 컬럼비아대학에는 칼 폴라니(1886∼1964, 헝가리 경제학자)·C. 밀스(1916∼62, 미국 사회학자)·다니엘 벨(82, 미국 사회학자)·라이오닐 트릴링(1905∼75, 미국 영문학자) 등이 어우러져 사회평론의 르네상스를 구가했다. 당시 컬럼비아 사회학은 사회를 균형상태로 보고 그 시스템의 작동원리를 탐구하는 구조기능주의가 강했는 데 월러스틴은 자신을 이단자로 부를 만큼 이에 반기를 들었다.

월러스틴을 흔히 ‘68년 혁명’의 산물이라고 한다. 그는 분명 그 혁명의 중심에 있었고, 그 혁명에 참여해 결국 콜럼비아대학을 떠나야 했다. 그는 헤게모니국가와 도시가 제공하는 문화적 자양분을 절제하지 않고 받아먹은 사람이며, 또한 미국 헤게모니에 거세게 저항한 반항아이기도 했다.

그의 지적 활동은 세 시기로 나누어 얘기할 수 있다. 제1기는 비서구세계에 관한 연구, 특히 아프리카의 식민령과 신생국 독립의 정치에 초점이 두어졌다. 그는 20세기 최대의 화두로 서구세계의 비서구세계에 대한 지배를 꼽고 이에 천착했다. 그는 서구가 지배하는 사회과학에서 비서구인들의 소외를 극복하고자 했으며, 그들에게 역사를 부여하고자 했다.

이런 문제의식은 프란츠 파농(1925∼61, 알제리 정신병리학자·철학자)으로부터 큰 영향을 입었다. 초기 종속이론가인 A. 프랭크(72, 독일)나 사미르 아민(70, 이집트)같은 이들도 유사한 관심을 가졌다.

다만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은 중심·주변의 구도를 극복하고자 하며, 그 양자간 모순이 완화되고 그래서 전체 체제가 유지되는 데 이바지하는 반(半)주변부라는 새 범주가 추가되는 바 그의 중요한 학문적 기여로 평가된다.

***일국의 체제 구성 부정

신생국 독립과 이후 민족통합 연구에서 그가 봉착한 딜레마는 바로 국가에 관한 문제였다. 긴 고민 끝에 주권국가나 민족사회가 사회체제를 구성하지 못한다고 단정, 이들을 버리고 세계체제만이 유일한 사회체제라고 결론짓는다. 적어도 사회체제라 부를 때는 두 가지 조건, 즉 독립적인 체제로서의 자기완결성과 고유한 내재적 발전 원리를 갖추어야 하는 데 세계체제만이 그 기준에 합당하다고 단순화한다.

제2기는 세계체제의 작동에 관한 연구에 몰두한 시기다. 세계체제는 지리적이고 기능적인 광범위한 분업체제이며, 현실적으로는 유럽에서 16세기 긴 과정을 거쳐 태동하게 되었다고 본다. 유럽에서 탄생한 근대세계는 그가 ‘세계경제’라고 부르는 유형이었으며 자본주의이기도 했다.

자본주의 세계경제는 단일한 분업체제안에 다수의 정치구조와 문화들이 산재하기 때문에 단일 정치구조를 갖는 세계제국과 구분된다. 이 시기 프랑스 아날학파의 대부인 페르낭 브로델(1902∼85, 프랑스 역사학자)을 사숙했다.

마르크스·슘페터·폴라니와 더불어 그의 사유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사람이 바로 브로델이다. 시간과 공간이 사회적 창안이라는 인식, 그리고 그들이 사회분석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깨우침을 준 이가 바로 브로델이었다.

자본주의 세계경제는 끊임없는 축적을 그 첫째 속성으로 삼으며 상품생산을 위주로 한다. 그것은 중심-주변-반주변이라는 기축적 분업구조를 가지며 이들이 이루는 세계시장을 주목한다.

제3기는 사회과학 및 지식구조 연구기다. 특히 19세기 사회과학의 본격 등장이 당시 유럽 세계경제 발전의 정당화 기제로서 지니는 의미를 밝힌다. 그는 유럽중심주의로 물든 근대 사회과학의 면모들 (견고한 분과 학문구조, 소통과 대화의 부재,비서구 지식형태의 야만시, 역사와 법칙의 대립,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이등분)을 밝히고 이로부터 탈피할 것을 주장한다. 역사적 사회과학, 통합 학문에 대한 실행을 강변한다.

***통합 학문 중요성 강변

월러스틴 학문의 두 전제는 세계체제만이 온당한 분석단위이며 모든 사회분석은 역사적인 동시에 체제적이라는 점으로 요약된다. 그리고 그는 학문과 정치의 변증법을 일생의 원칙으로 삼았다. 달리 말해 이론과 실천의 변증법을 추구했던 것이다.

학문은 최대한 진실에 다가가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며 그런 학문은 도덕적 선택에 이바지해야 하고, 궁극적으로 정치적 실행을 통해 세계를 바꾸는 데 기여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다. 그 세계란 보다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세계다.

이수훈 경남대 교수.사회학<leesh@kyungnam.ac.kr>

<월러스틴은 누구…>

▶1930년 미국 뉴욕 출생

▶51년 미 컬럼비아대 졸업

▶54년, 59년 컬럼비아대 사회학 석.박사 박위

▶76년 프랑스 파리7대학 명예박사 학위

▶58~71년 컬럼비아대 교수

▶71~76년 캐나다 맥길대 교수

▶76년~현재 뉴욕주립대(빙햄턴) 석좌교수 및 동대학 페르낭 브로델 경제.역사체제.문명연구소 소장

▶94~98년 국제사회학회(ISA) 회장

*** 관련 저작들은

<번역서>

▶근대세계체제 1.2.3(까치.74.80.89년)

▶역사적 자본주의(창작과비평사.83년)

▶반체제운동(창작과비평사.89년)

▶사회과학으로부터의 탈피(창작과비평사.91년)

▶변화하는 세계체제, 탈아메리카와 문화이동(백의.91년)

▶자유주의 이후(당대.96년)

▶유토피스틱스, 또는 21세기의 역사적 선택들(창작과비평사.98년)

<연구서>

▶세계체제론(나남.93년)

▶세계체제의 인간학(사회비평사.96년)

▶세계사를 보는 시각과 방법(창작과비평사.92년)

▶분단체제 변혁의 공부길(창작과비평사.94년)

▶근대세계체제론의 역사적 이해(까치.96년)

▶흔들리는 분단체제(창작과비평사.9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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