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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변호사가 사기를? 사기 치는 변호사도 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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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범죄의 유혹에 빠지는 변호사가 늘고 있다. 과거 변호사 범죄는 수임비리가 주였지만 최근에는 사기 등 형태가 다양해졌다.

지난달 초 수도권의 한 검찰청은 40대 중반 S변호사를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그가 저지른 불법행위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죄수들에게 접근해 “의사와 판검사에게 로비해 법원에서 형 집행정지를 받을 수 있게 힘써 주겠다”며 금품을 받은 혐의다. 이 과정에서 현직 교도관들은 돈을 받고 외부 병원에서의 치료나 면회를 자주 시켜 주는 편의를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하나는 구치소 수감자들에게 형사사건을 소개받고 그 대가로 수감자들에게 돈을 준 혐의다. 현행 변호사법에 따르면 변호사라고 하더라도 공무원이 취급하는 사건에 대한 로비 명목으로 금품을 받으면 형사처벌을 받는다. 사건 소개료를 주는 것도 마찬가지다. 검찰은 S변호사 외에 1~2명의 변호사가 이런 비리에 연루된 혐의를 잡고 수사 중이다. 과거 법원 직원이나 검찰 수사관들에게서 사건을 소개받는 경우는 드물지 않다. 하지만 죄수에게서 사건을 소개받고 소개료까지 지급한 사건은 처음이다. 변호사들의 범죄가 다양해지고 있다. 불법행위를 했다가 등록이 취소되는 변호사도 늘고 있다.

유사 수신·문서 위조 등 형태 다양해져
변호사가 사법사상 처음으로 징계를 받은 것은 1993년 김영삼 정부 출범 직후다. 징계 사유는 수임 비리였다. 서울 강남경찰서 직원들이 형사사건을 알선해 주고 돈을 받은 게 드러난 것이다. 당사자인 최모 변호사는 검사실을 찾아가 자살 소동을 벌이며 반발했다. 이후에 터진 의정부 법조 비리 사건, 대전 법조 비리 사건 역시 수임 비리가 발단이었다.

최근의 변호사 범죄는 양상이 달라졌다. 법률 자문의 형태로 포장된 불·탈법행위가 많다. 이달 중순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1부와 서울동부지검이 각각 수사 결과를 발표한 사건이 그 예다. 닭고기 가공·유통업체인 신명B&F의 300억원대 분식회계 사건에선 김모(41) 변호사가, 서울 잠실 재개발·재건축 과정에서 뒷돈 28억원이 오간 사건에선 이모(44) 변호사가 불법적인 법률 자문을 해 주고 돈을 받았다가 불구속 기소됐다. 검찰 관계자는 “김 변호사가 대가로 받은 돈은 1000만원, 이 변호사는 7500만원”이라며 “그 정도 액수로 구속하는 것이 무리라는 이야기가 있지만 그들은 범죄 진행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최근 처벌을 받은 변호사들의 죄목은 토지 사기, 건설 인허가 하청을 미끼로 한 거액 수수, 유사수신행위, 위조 서류로 부동산 편취 등 일반 사기범들과 크게 다를 게 없다. 특히 변호사에 의한 사기 범죄는 “설마 변호사가 사기를 치겠느냐”고 믿는 일반인들의 허를 찌른다. 2008년 말 1심 재판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항소한 박모(54) 변호사의 혐의는 노인성 치매를 앓는 미국 거주 할머니 임모(80)씨의 수십억원대 국내 부동산을 제멋대로 팔아 8억여원을 가로챈 것이다. 그는 할머니가 가족 없이 혼자 사는 걸 이용해 재산 관리를 위임한 것처럼 서류를 위조, 허위로 공증까지 받았다.

과거에는 다른 범죄에 연루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아예 범행을 기획해 주도적 역할을 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서울 서초동의 한 중견 변호사는 “경제가 어려우면 변호사들이 ‘블루 오션’을 찾아야 하는데 불법인 줄 알면서도 ‘블랙 오션’으로 빠져드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판검사 출신 변호사들도 범죄의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지원장 출신 이모 변호사는 6만6000㎡(약 2만 평)가량의 토지 매각 절차를 위임받은 것처럼 속여 10억원 상당을 가로챈 혐의(사기)로 구속됐다. 그는 검찰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하자 도주했다가 100여 일 만에 붙잡혔다.

대한변호사협회 회원과에 따르면 97년 비리 혐의로 형사처벌 받으면 등록을 취소하는 제도가 도입된 이후 모두 57명의 등록이 취소됐다. 최근 5년간을 살펴보면 2005년 6명, 2006년 8명, 2007년 9명이었고 2008년 12명, 2009년 13건이다. 증가 폭은 작지만 매년 조금씩이라도 늘고 있다.

판사 출신 김관기 변호사는 “변호사 1만1000명 시대의 그늘일 것”이라고 진단했다. 지난 20일 현재 전국에 변호사로 등록된 사람은 1만1364명. 이 중 개업해 실제로 영리 활동을 하는 변호사는 9925명이다. 숫자가 늘면서 1인당 수임 건수는 감소했다. 2008년 매달 2.82건이었던 1인당 수임 건수는 2011년에는 1.99건으로 줄 것이란 전망이다. 지난해엔 변호사 2명이 파산하기도 했다.

“80년대엔 판검사를 거쳐 변호사를 하는 이와 사법연수원을 나오자마자 개업하는 변호사의 비율이 7대 3 정도였다면 지금은 3대 7로 역전됐다. 로펌 소속 변호사가 전체 변호사의 절반을 넘는데 로펌에 안 간 단독 개업 변호사들은 개척교회 목사처럼 혼자 힘으로 무한경쟁 시대를 살아가야 한다. 이 과정에서 범죄의 유혹에 빠져드는 변호사가 늘어나는 것 같다.” 김평우 대한변호사협회장의 분석이다.

변호사 범죄 실형 선고 잇따라
변호사에 대한 처벌 수위도 높아져 실형 선고가 잇따르고 있다. 서울동부지법 형사11부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강모(53) 변호사에게 지난해 12월 30일 징역 3년에 추징금 8억4500만원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그는 검찰이 두 차례 청구한 구속영장이 기각돼 불구속 재판을 받아왔었다. 강 변호사는 2007년 4월 서울 송파구 잠실동에 112층(높이 555m)으로 신축 계획을 추진하던 제2롯데월드 공사 건의 자문변호사로 선임됐다. 당시 롯데 측은 “제2롯데월드 신축 공사와 관련해 진행 중인 국무조정실 심의가 잘 통과되도록 해 달라”며 활동비 명목으로 1억1000만원을 지급했다. 한 달 뒤 강 변호사는 H토건 사장을 만나 “국무조정실 행정협의조정위원들에게 인사를 해야 하는데 나중에 흙막이 공사를 하청 주겠다”고 했다. H토건 사장은 집무실에서 1만원권 현금 3억원을 건넸다. 이런 방식으로 세 개 회사에서 거액을 챙긴 혐의다.

의정부지법도 유사수신행위를 하다 적발돼 구속 기소됐던 김모(47) 변호사에게 지난해 말 징역 1년6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법무법인 대표인 그는 자신이 맡은 ‘조상 땅 찾기’ 부동산 소송에서 승소하면 고액의 배당금을 지급하겠다고 투자자들을 유인해 37억원을 끌어모은 혐의였다. 서울고법에서 2심이 진행 중이다.

각종 비리로 금고·집행유예 처벌을 받거나 변협에서 등록 취소 처분을 받더라도 2∼5년만 지나면 재등록이 가능한 것은 문제다. 의정부의 손광운 변호사는 “변호사 업계의 양적 팽창에 걸맞게 새로운 윤리적 기준을 확립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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