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파벌싸움의 끝, 어른들 갈등에 선수들 등 터진 쇼트트랙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2면

세계 최강이었던 여자 쇼트트랙 대표팀이 밴쿠버 올림픽에서 ‘노 골드’의 수모를 당했다. 사진은 지난달 25일 한국 선수가 3000m 계주에서 실격 판정을 받은 뒤 눈물을 흘리는 모습. [밴쿠버=뉴시스]

금메달 2, 은 4, 동 2개. 한국 쇼트트랙이 밴쿠버 겨울올림픽에서 받아 든 성적표다. 대한빙상연맹 관계자가 “성적에 만족한다”고 말했듯이 얼핏 보면 평범한 성적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대한체육회가 당초 예상했던 금메달 4개에는 한참 못 미친다. 2006년 토리노 올림픽 때의 금 6, 은 3, 동 1개와는 비교하기조차 쑥스럽다. 특히 여자는 1992년 알베르빌 올림픽 이후 18년 만의 ‘노골드’다. 4년 만에 한국 쇼트트랙 금메달 수가 반토막난 것은 어떤 이유인가. 체육인들은 빙상계 내의 뿌리깊은 파벌싸움을 그 이유 중 하나로 든다.

◆파벌싸움이 대표선수 얼굴마저 바꿨다=세계 쇼트트랙이 ‘타도 한국’을 외치는 동안 한국은 집안 싸움에 정신이 없었다. 밴쿠버 올림픽 대표 선발전조차 빙상계 거물들의 입김에 좌우됐다는 평가다. 빙상연맹은 2008년에는 4월과 10월 두 차례 대표 선발전을 치렀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올림픽 대표 선발전은 2009년 단 한 차례로 끝냈다. “빨리 국가대표를 확정해 합숙훈련을 하는 게 계주 종목에 유리하고, 가을쯤 선발전을 치르다가 괜한 부상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대다수 빙상인들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2010년 2월 올림픽에 나설 선수들을 10개월 전인 2009년 4월에 뽑은 이유가 석연치 않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 미국과 중국은 2009년 12월에 선발전을 치렀다.

한국이 지난해 4월에 서둘러, 그것도 단 한 차례 선발전으로 끝낸 것은 안현수(25)와 진선유(22)를 배제시키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고 빙상인들은 주장했다. 둘은 4년 전 토리노 올림픽 남녀 쇼트트랙에서 각각 3관왕에 올랐던 한국 쇼트트랙의 명실상부한 간판 스타. 하지만 이들이 부상 중에 선발전을 치르는 바람에 둘은 태극마크를 다는 데 실패했다. 실업팀 진출을 두고 빙상연맹 핵심 인사가 희망하는 팀으로 가지 않았기 때문에 미운털이 박혔다는 수군거림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둘이 대표 선발에서 제외되자 이들의 기량을 높이 산 러시아 등 몇몇 나라에서 이들에게 귀화 후 올림픽 출전을 권유하는 제안이 오기도 했다.

◆여자 계주팀도 내부 갈등=어른들의 세력 다툼으로 묵묵히 땀 흘린 선수들은 큰 상처를 입었다. 특히 석연치 않은 심판 판정으로 금메달을 놓친 여자 계주팀 구성을 두고는 대표팀 내부에서도 갈등이 많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 빙상 관계자는 “계주팀 구성을 대표 선발전 순위대로 하지 않았다. 여자팀 선수들끼리는 사이가 좋았지만, 어른들의 횡포 때문에 계주팀에서 탈락한 선수가 많이 힘들어했다”고 말했다.

계주팀은 대표 선발전 1~4위 선수들로 구성하는 게 상식. 하지만 선발전 4위를 했던 선수가 무슨 영문인지 계주팀에서 제외됐다. 대신 다른 선수들의 가방을 들어주거나, 훈련 촬영을 맡는 등 허드렛일을 해야 했다. 한 관계자는 “코칭스태프와 해당 선수 간 갈등이 있었다. 이 때문에 그 선수는 매일 부모님에게 전화해 ‘이런 일을 하러 밴쿠버에 온 게 아닌데, 한 경기도 못 뛰고 집에 가게 생겼다. 죽고 싶다’는 말을 되뇌며 울먹였다”고 전했다. 남자팀이 선발전 5위 선수인 김성일(20)을 예선에서 뛰게 해 5명 모두에게 메달을 걸어준 것과는 천양지차다.

대한체육회도 극도의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한 고위 간부는 “빙상연맹의 대표 선발과 운영에 문제가 많았다. 올림픽 성적 부진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밴쿠버=장혜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