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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이 아이디어 실현할 수 있게 큐레이터는 상황을 창조하는 사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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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호 02면

일템포델포스티노에서 Olafur Eliasson 의 39Echo House(Generalprobe)39, ⓒPeter Schnetz

2009년 ‘아트 리뷰’ 선정 미술계 파워 100인 중 1위에 올랐다. 무엇이 당신을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만들었나?
“그건 아트 리뷰 심사위원들에게 물어봐야 하지 않을까?(웃음). 내가 답변해야 한다면 나는 그저 나의 일을 한다는 것뿐이다. 작가들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현할 수 있도록 기획을 하거나, 그들의 생각을 책으로 출판하게 한다거나. 큐레이터로서 나는 작가들을 위해 뭔가 유용한 일을 하고 싶었다. 이런 노력이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나는 기쁘고 영광스럽다. 그러나 그동안 내가 누차 말해 왔듯 미술계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바로 작가들이다. 그들이 있기 때문에 미술계가 존재한다.”

2009 ‘아트 리뷰’ 선정 세계 미술계 영향력 1위, 큐레이터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를 런던에서 만나다

큐레이터의 가장 중요한 자질은 무엇인가?
“큐레이터란 직업은 19세기부터 있었다. 뮤지엄 소장품을 관리하고 보여주는 것이 주된 역할이었다. 그러나 20세기 들어 큐레이터의 개념은 매우 확장됐다. 전시는 단순히 오브제에 관한 것이 아니라 전시 자체가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 즉 큐레이터가 기획하는 전시는 일종의 단기적으로 존재하는 예술 작품을 만드는 것과 같은 형태로 발전했다. 20세기 들어 그 수가 급격히 증가한 비엔날레나, 여러 뮤지엄들에서 이루어지는 특별전 등이 이런 배경에서 계속 발전해 왔다. 단지 눈에 보이는 오브제가 아닌 무형적인 요소들을 함께 보여주어야 하게 된 것이다.21세기로 들어서면서 큐레이팅의 개념은 더더욱 확장되고 있다. 모든 창조적이고 기획을 요하는 행위와 밀접하게 연관을 맺게 되었다. 주변에 보이는 모든 것이 큐레이팅 되어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심지어 각 개인의 행위도 큐레이팅 되어질 수 있다. 조셉 보이스가 ‘모든 인간은 예술가다’고 말한 것처럼, 이런 맥락에서 ‘모든 인간은 큐레이터다’고 말할 수 있다.”

1,2Peter Fischli와 David Weiss의 부엌 전시 작품‘World Soup’, ⓒDayanita Singh 3 일 템포 델 포스티노에서 Philippe Parreno의 ‘Postman Time’, ⓒ Joel Chester Fildes 4 일 템포 델 포스티노에서 Pierre Huyghe와 Hola Zombies의 ‘Episode 1 Anniversary of Time’, ⓒPeterSchnetz 5 일 템포 델 포스티노에서 Rikrit Tiravaqnija & Arto Lindsay의39hat Are We Doing Here!’,ⓒPeter Schnetz 6 일 템포 델 포스티노에서 Carsten H ler의 ‘Upside Down People’, ⓒ Peter Schnetz 7 일 템포 델 포스티노에서 Peter Fischli와 David Weiss의‘t & Bear39,ⓒPeter Schnetz 8 2009년 서펜타인 갤러리 앞마당에 마련된 파빌리온. 일본 건축가 니시자와 류에와 세지마 가즈요가 설계 했다.

그럼 큐레이터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나?
“큐레이터의 역할은 우리가 예기치 못한 상황들을 창조해내는 것이기도 하다. 큐레이터는 스스로 기획할 수 있는 역량을 개발해야 하고, 적절한 장소를 찾아야 하고, 단순히 수평적인 전시가 아니라 수직적인 개념의 전시로 만들어야 하고, 끊임없이 기획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이다. 큐레이터는 촉매 역할을 하고, 행동의 출발점 역할을 해야 하고, 동기 부여를 하고, 작가들의 생각을 실현시키는 도우미 역할을 하고, 미술과 삶의 다양한 분야에 다리를 놓는 역할을 해야 한다.”

큐레이터에게도 작가들처럼 무언가 창조해 낼 수 있는 ‘예술가적 기질’이 있어야 할 것 같다. 당신에게도 그런 기질이 있나?
“나는 큐레이터와 작가는 근본적으로 역할이 매우 다르다고 생각한다. 나의 경우 주로 전시를 기획하고, 갤러리에서 진행되는 프로그램들을 지휘한다. 그리고 미술과 관련된 집필 작업을 계속 해오고 있다. 나는 무언가를 이루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지 무언가를 창조하고 만들어내는 사람은 아니다. 나는 내가 예술가적 기질을 지녔다고는 생각하지 않았고, 한 번도 예술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나의 관심은 내가 주도해서 무언가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들의 아이디어를 실현시키기에 필요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큐레이터는 전문직이 아닌 일반적인 직업이라고 생각하며, 근본적으로 존경심과 겸손함을 잊지 말고 작가들과 일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큐레이터가 되기로 결심한 것은 언제부터이고, 왜 그렇게 생각했나?
“나는 스위스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취리히나 바젤 등 큰 도시뿐 아니라 조그마한 도시에 산재한 뮤지엄을 자주 다녔다. 그러다 보니 미술에 푹 빠져 책도 많이 읽었다. 주변에서 예술가도 많이 만났다. 극작가인 이오네스코를 만났을 때가 열네 살이었다. 아무튼 어려서부터 나는 ‘항상 예술과 함께하는 삶을 살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열일곱 살에 페터 피실리와 다비트 바이스(Peter Fischli & David Weiss·스위스 출신의 유명한 듀오 아티스트), 알리기에로 보에티(Alighiero Boetti)와 크리스티앙 볼탄스키(Christian Boltanski),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를 만났는데 그들은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준 나의 멘토다.”

그들과 무슨 얘기를 나눴나?
“보에티를 만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그는 나에게 말했다. ‘여보게 젊은이, 자네는 앞으로 미술계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하네. 작가들이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생각들을 현실로 만드는 일들을 해보도록 하되,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일들도 가능하게 만들 수 있어야 하네.’ 나는 큐레이터가 바로 그러한 일들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보에티는 나에게 ‘작가들은 언제나 같은 것을 하도록 요청받지. 뮤지엄 전시든 갤러리 전시든 항상 천편일률적이야. 부디 지루한 전시를 만드는 큐레이터가 되지 말게나’. 나는 그때부터 이 사회에 필요하지만 실현될 수 없었던 예술가들의 프로젝트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실험적이고, 경계를 넘나드는 큐레이팅의 확장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보에티의 작품을 비행기에서 전시했던 것이 아직도 회자된다.
“언젠가 그가 나에게 비행기에서 전시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지 3년 만에 나는 오스트리아항공사를 설득했고, 그 회사에서 전 세계 노선을 여행하는 비행기들에 보에티가 만든 퍼즐 작품을 실어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그것은 파란 하늘을 나타내는 퍼즐이었다.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에도 실었다. 한국 사람 중에 그 퍼즐 조각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것 같다.(웃음) 아무튼 이 전시는 미술이 지정학적으로 닿기 어려운 곳까지 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아, 그런데 왜 대학에서는 정치와 경제를 공부했나?
“내가 한 번도 해보지 못했고 알지 못했던 분야를 탐구해 보고 싶었다. 그게 열여덟 살 때였다. 나는 이미 여러 가지 언어를 할 줄 알았고, 훌륭한 작가들을 만났고, 미술에 대해서는 이미 독학을 한 상태였다. 그래서 대학에서는 이전에 해보지 못했던 공부를 하고 싶었다. 당시 내가 가장 발견하고 싶었던 것은 이 세상에서 정치·경제 분야가 어떤 기능을 하는지였다. 그리고 결국 이 두 분야와 예술이 어떤 연관성을 가지며, 예술 분야에 어떻게 기여하는지 발견하고 싶었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본격적으로 큐레이터 경력을 쌓으면서 미술과 건축·과학·음악·문학·디자인 등의 다양한 분야를 연결하는 시도들을 해오게 되었다. 나는 미술의 어떤 총체적이며 백과사전적인 시도, 그러니까 미술을 삶의 모든 분야로 확장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당신이 말하는 전시 형태의 ‘확장’과 관련, 2007년 맨체스터 그리고 2009년 아트 바젤에서 화제가 되었던 ‘일 템포 델 포스티노(Il Tempo del Postino)’가 가장 적절한 예가 될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바젤 아트 페어 기간에 보고 매우 감명받았다.(‘Il Tempo Del Postino’란 ‘우체부의 시간’이란 제목의 실험적인 전시로 2007년 맨체스터 국제 페스티벌에서 처음 선보였다.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와 아티스트 필립 파레노(Philippe Parreno)가 공동 기획했다. 이들은 12명의 세계적인 작가들에게 전시 공간이 아닌 ‘15분의 시간’을 주고 무대에서 실험적인 예술 작품을 연출하게 했다. 일회성을 지니는 이 새로운 형태의 전시는 2009년 바젤 아트페어 동안에도 세 번 재공연이 됐다. 바젤에서는 매튜 바니, 더글러스 고든, 올라퍼 엘리아손, 토마스 데만트, 앙리 살라 등 15명의 세계 정상급 작가들이 참여했다.)

“그 전시를 보았다니 정말 기쁘다. 작가들은 늘 ‘장소’에 근거한 작품을 만든다. 나는 작가 필립 파레노와 함께 장소가 아닌 ‘시간’에 근거를 둔 작품을 작가들에게 만들어 달라고 했다. 그리고 관객 역시 작품을 따라 공간을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객석에 앉아 작품들이 무대에서 바뀌는 것을 보는 것이다. 맨체스터에서는 12명이, 바젤에서는 15명이 참여했는데, 이 프로젝트를 통해 나는 작가들의 소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사실 많은 작가가 이러한 프로젝트를 하고 싶어하지만 이를 실현시킬 수 있는 상황은 매우 제한되어 있다.”

부엌·비행기·수도원·호텔방 등 예기치 못한 곳에서 전시를 해왔다.
“1991년께 알고 지내던 작가들과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던 장소에서 전시를 하는 것은 어떨까?’라는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그럼 부엌이 어떨까?’라는 제안이 들어왔다. 우리는 부엌이라는 공간이 지니는 현실성을 예술 작품이 지니는 현실성과 연결시키고, 웅장하지도 근사하지도 않은 전시를 의도했다. 이 전시 이후에는 작가 크리스티앙 볼탄스키가 개인전을 하고 싶어했고, 나는 내가 잘 다니던 수도원 도서관을 장소로 제안했다. 당시 볼탄스키의 실험적인 작품들의 전시 허락을 받기 위해 수도승들을 쫓아다니며 설득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작업이었다. 돌이켜보면 큐레이터의 주된 임무는 ‘사람들 설득하기’가 아닌가 한다.(웃음) 한편으로 미술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을 설득하는 작업도 매우 흥미롭고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후에 레스토랑, 호텔방, 산꼭대기, 신문 지상 그리고 컴퓨터상에서도 전시를 기획하게 되었다. 미술은 기대하지 않는 곳에서 일어난다.”

아시아 미술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아시아 미술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나에게 정말 많은 영감을 주어왔다. 나는 80년대 말기와 90년대 초반에 아시아에서 생겨났던 거대한 에너지를 목격했다. 한국·중국·일본·동남아시아 등에서 이머징 작가들이 생겨나고 있었고 새로운 세대들의 새로운 목소리가 나오고 있었는데, 서양 미술계는 이러한 움직임을 너무도 모르고 있었다. 나는 그래서 중국 출신 큐레이터인 허우한루(Houhanru)와 함께 아시아 작가들의 작품을 보여주는 대규모 전시를 기획했다. 당시 나는 아시아 도시들의 역동성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이러한 도시 속에서 작업하면서 도시의 환경을 이용하는 작가들의 작업을 적극 보여주고자 했다.”

한국에 대한 느낌은?
“90년대 서울을 방문했는데 아주 깊은 인상을 받았다. 사실 그때 내가 서울에서 한국 현대 미술을 목격한 것이 허우한루와 전시를 기획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움직이는 도시들(Cities on the move)’이라는 제목의 이 전시에는 100여 명의 아시아 작가들이 참여했다. 전시는 서양의 여러 도시들을 순회하게 되었고, 아시아 미술계의 현황을 서양 미술계에 알려주는 역할을 했다. 세월이 흘러 90년대 초반에는 이머징이라고 했지만 현재는 이미 정착된 미술의 중심지가 아시아 곳곳에 있다. 서울·베이징·도쿄·상하이·광저우·싱가포르 등이 그러하다. 이렇게 중요한 구심 역할을 하는 미술 중심지가 곳곳에 존재한다는 것은 현 시대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시간이 들려주는 가장 위대한 이야기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전히 세계 미술계는 아직도 서양 미술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래서 이렇게 서양 외 다른 세계 미술계의 동향을 알리는 것이 나와 같은 큐레이터들의 역할이다. 16세기에서 17세기로 넘어가면서 세계의 중심이 지중해에서 태평양으로 이동했듯, 앞으로 그 중심은 서양에서 동양으로 이동할 것이다. 그래서 이런 움직임을 감지하고 목격하게 될 현재는 매우 흥분되는 시기다.”

한국에서 전시 기획을 하고 싶은지?
“한국에서는 이미 전시 기획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부분적인 참여였다. 2000년 ‘미디어씨티서울’의 송미숙 총감독이 나를 게스트 큐레이터 중 한 명으로 초대했다. 나는 이미 서울의 곳곳에서 보고 인상 깊었던 전광판들에 작가 20여 명의 비디오 작품을 상영하는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그동안 나는 중국의 광저우 비엔날레나 요코하마 트리엔날레, 타일랜드에서의 대규모 전시 프로젝트를 기획했는데 아직 한국에서의 프로젝트는 실현되지 않았다. 언젠가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매우 기쁠 것이다.”

마지막으로 ‘매우 이른 아침 클럽’의 현황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매우 이른 아침 클럽(Bruatally Early Club)’은 오브리스트와 마커스 마이슨이 2006년 공동 창시한 모임이다. 이른 아침(6시30분)에 카페와 같은 공개 장소에서 열리는 일종의 번개 모임이다. 미술뿐 아니라 다양한 문화적 이슈들에 대해 논의한다. 인터넷으로 주로 하루 전에 공지된다. 그는 이 질문을 듣자 비서에게 도장과 명함을 가져오라고 말했다. 그 도장은 이 모임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찍어주는 것이라 한다. 그가 도장을 찍고 현재의 날짜와 시간을 적어 주었다.)
“나는 20세기 초반의 ‘살롱’이라는 개념에서 영감을 받아 ‘21세기 살롱’을 만들고 싶었다. 런던에 사는 사람들은 매우 바쁘다. 대부분의 사람이 이미 몇 주간에 거친 스케줄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미리 기획되지 않은 모임을 한 번 하려면 매우 힘이 든다. 그래서 사람들의 스케줄이 거의 없는 오전 6시30분으로 시간을 정했다. 모임은 주로 하루 전에 기획된다. 처음 이 모임을 시작했을 때에는 나와 클럽의 공동 창시자인 마커스 마이슨만이 참석을 했는데, 그동안 입소문이 나면서 지금은 많으면 70명 정도가 모인다. 언제나 누구나 올 수 있는 장소에서 열린다. 프라이빗한 멤버들이 프라이빗한 장소에서 열었던 살롱과는 반대되는 개념이다. 이러한 즉흥적인 만남을 통해 현시대의 다양한 이슈들에 대한 주관적인 의견들을 교환할 수 있다는 것이 이 클럽의 가장 큰 장점이다.”

한시도 쉴 틈이 없을 것 같은데 도대체 이런 에너지는 어디에서 오는가?
“모르겠다. 항상 내 앞에 데드라인과 급하게 마쳐야 할 일들이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한시도 지체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되니, 많은 일을 해내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한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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