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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디오 정치] 오슨 웰스 감독의 '시민케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검찰에 수사를 받으러 들어가는 유명인사의 손에는 서류가방이 들려 있다.

결백을 증빙할 자료들이 가방 속에 들어 있다고 한다.

검찰 출두 전 그 서류들을 정리하며 가방에 넣는 당사자의 심정은 어떠할까. 그 서류들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무엇을 얻으려고 하다가 결국은 잃어버린 것들에 관한 기록이 아닐까.

◇ 검찰출두 진승현의 서류가방

열린금고 사건으로 출두하는 진승현(陳承鉉)씨의 손에도 서류가방은 들려 있었다. 그 서류가방을 보면서 '로즈버드' (장미꽃 봉우리)를 떠올렸다.

'로즈버드' 는 20세기 최고의 영화 '시민 케인' (Citizen Kane)에서 나오는 말이다. 그 단어가 영화(오슨 웰스 주연.감독) 전체를 이끌고 가는 화두(話頭)역할을 한다.

주인공 케인은 궁전같은 저택에서 죽으면서 '로즈버드' 라는 말을 남긴다. 영화는 잡지사 기자 톰슨(윌리엄 알랜드)이 '로즈버드' 의 비밀을 캐내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톰슨은 그 과정에서 성공한 자의 고독과 그 고독의 그늘에서 폐쇄적인 자기만족을 발견한다. 하숙집 주인인 케인의 어머니가 하숙비가 밀린 사람으로부터 버려진 광산을 받았는데 그 광산이 사실은 금광이었다.

케인은 20대에 독립해 사업을 확장해나간다. 수십개 신문사와 2개 기업군을 인수해 잡화업.제지업.아파트.해양업 등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한다.

그러다가 1929년 대공황으로 사업체들을 합병.처분하고 신문사 하나만 운영하며 다시금 야심을 불태운다.

여기에다 정치적 야심을 갖고 대통령의 조카 에밀리 먼로 노튼(루스 월릭)과 결혼해 대통령직을 내다보고 주지사 선거에 출마한다.

그러나 당선가능성이 무르익을 무렵 아내 몰래 사귀던 알렉산더수전(도로시 커밍스)과의 스캔들이 폭로되면서 도중하차하고 아내와 아들을 잃는 교통사고를 맞는다.

두번째 아내인 수전은 성악가가 꿈이었는데 그 꿈을 케인이 이뤄준다. 그러나 다른 신문들은 수전이 자칭 성악가라는 뜻으로 따옴표를 붙여 조롱한다. 케인은 그 따옴표를 떼주기 위해 오페라 하우스를 지어준다.

물론 수전을 위한다기보다 수전을 통해 케인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중압감에 시달리다 못해 수전은 자살을 기도하고 성악을 포기한다.

케인은 이번에는 어마어마한 저택을 짓는다. 대리석과 정원수.수집품들로 가득찬 저택속에 수전을 가둬두고 살아간다. 수전이 따분한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불평하자 케인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궁전에 사니까. 나는 이곳의 주인이야. " 영화는 그런 케인이 죽어가며 남긴 '로즈버드' 란 말이 다름아닌 어릴 때 자신이 타고 놀던 썰매의 상표라는 장면을 보여주며 끝을 맺는다.

◇ 어설픈 코스닥 육성과 머니게임

성공만을 위해 치닫다 추락한 진승현.정현준씨는 어땠을까. 그들은 혹시 케인처럼 '로즈버드' 를 잃어버린 채 '군주(君主)콤플렉스' 에 빠진 것은 아닐까.

케인의 친구 닐랜드가 케인에 관해 톰슨 기자에게 이야기하는 대목이 군주 콤플렉스를 설명해준다.

"그는 위대하지만 자기만을 지키려고 했소. 다른 사람들에게 아무 것도 주지 않았소. 자신만을 믿는 그는 자신만을 과시하려고 했소. "

사이비 벤처 기업인들의 연이은 추락 속에 21세기 한국의 어설픈 벤처.코스닥 육성정책은 부패한 머니게임이 서식하는 온상이 돼가고 있다.

이들은 정치지도자들의 과시용 벤처정책을 순식간에 교묘히 활용했고 주변에 자기과시를 했다.

독버섯 같은 정경유착에서 정치권의 상대도 과거 재벌에서 이제는 벤처로 옮겨지고 있다. 이들의 폐쇄적인 자기 교만은 많은 이들의 소박한 꿈을 짓밟고 있다.

조성기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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