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 시(詩)가 있는 아침 ] - '생의 간이역에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김상현(1947~) '생의 간이역에서' 전문

"다음은 대전역입니다

내리시기 전에 잊으신 물건이 없는지 살펴봅시다"

내 생애 잊고 내린 소중한 것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눈물나도록 감사했던 일들과

사랑했던 이름들과

때론 추억까지도 잊고

훌쩍 내려버린 시간

아 내리기 전에

한 번쯤 살펴보는 것이었는데

다음 역

내 생의 간이역에 내릴 때는

또 무엇을 두고 내리게 될는지

종착역까지

제대로 가지고 갈 것이

할머니, 어머니 말고

또 무엇이 있을까.



대전발 0시50분, 그 가락국수와 추억의 열차. 때로는 나 자신마저 놓친 적이 허다했다. 한 줄의 시를 위해 서울을 오르락내리락했던 학창시절이었다. 지난해에는 내 인생의 간이역에서 백혈병으로 아내를 놓칠 뻔한 적이 있었다. 아내는 0시50분, 맨발에 새 구두를 바꿔 신고 혈액형도 바꿔 달고 밤 늦은 열차를 타고 집에 왔었다. 종착역까지 더 무엇을 잃고 갈 것인가.

송수권<시인>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