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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한창훈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 (21) 해대(海帶·미역)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22면

바다에서 막 끌어올린 미역.

길이는 열 자 정도다. 한 뿌리에서 잎이 나오고 뿌리 가운데에서 줄기가 나오며 줄기에서 두 날개가 나온다. 날개 안은 단단하고 바깥쪽은 부드럽다. 뿌리는 달고 잎의 맛은 담담하다. 임산부의 여러 병을 고치는 데 이보다 더 나은 게 없다(부분 생략).

(농어 편에서 잠깐 이야기 한 대로) 섬으로 다시 들어온 나는 숲 속 외따로 떨어진 집을 얻어 들었다. 전 주인이 두고 간 고양이가 있었다. 녀석은 나를 새로운 파트너로 정했고 끼니 때마다 현관문을 긁으며 울었고 그리고 받아먹었다. 오로지 고양이 밥을 장만하기 위해 낚시를 가기도 했다.

녀석은 종종 두더지를 잡아오더니 아무도 모르게 연애를 하고 아무도 모르게 새끼를 낳았다. 아랫배가 축 처져 있기에 찾아봤더니 창고 속 합판 무더기 아래에 다섯 마리가 꼬물거리고 있었다. 마침 남은 미역국이 있기에 떠주었다. 이곳에서는 쇠고기 대신 우럭이나 노래미를 넣기 때문에 그것을 골라 먹으라는 소리였다.

그런데 생선살은 그냥 두고 미역부터 쭉쭉 뽑아먹기 시작했다. 고양이와 미역. 그것은 개와 마늘만큼이나 어색한 조합이 아닌가. 낯선 것을 탐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습관이나 환경을 한순간에 뛰어넘어버리는, 생명 메커니즘의 중심에 미역이 있었다.

우리의 어머니들도 그랬다. 산모의 첫국밥으로 쓰이는 해산 미역은 그렇다 치고 일상에서도 그렇게 쓰였다.

내 어린 시절, 어머니와 할머니는 먹을 것을 준비하느라 모든 시간을 보냈다. 파래무침 하나를 해도 바다에 나가 뜯고 잡물 골라 씻어내고 다듬는 데에만 종일 걸렸다. 꼼지락 끙끙 꼬무락 끙끙, 만들어 놓으면 자식 손자들은 5분 만에 먹어치웠다. 집마다 그랬다.

그러면서 당신들은 입을 아꼈다. 대충 때우고 다음 끼니 준비를 시작할 뿐이었다. 하긴 중국집 주방장이 라면 끓여 먹는 이유가 단지 라면을 즐겨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만들다 보면 질리기도 하니까.

그러다가 나이 든 여인네들이 둘러앉아 미역국 먹는 것을 보게 됐다. 세수를 해도 될 정도로 큰 양푼에 국을 가득 담아 먹는데 어떻게 저걸 다 먹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조용히 그러고 있어서 그것은 식사라기보다는 음식에 대한 샤먼적인 제의(祭儀) 같았다.

국이나 무침은 흔히 먹는 것이라 따로 덧붙일 필요는 없겠다. 생미역 먹는 방법만 말해보면 이렇다.

요즘 바닷가를 가면 돌에 붙어있는 미역이 보인다. 겨울이 시작되면서 하루가 다르게 자라기 때문이다. 칼로 뿌리와 미역귀 사이를 잘라낸다. 미역귀는 말려서 나물을 해먹는데 그게 귀찮으면 귀 윗부분을 자른다. 바닷물이 났다 하더라도 파도를 잘 보며 따야 한다(파도는 일정한 리듬이 있는데 대략 열 번에 한 번 정도 힘이 모인 큰 파도가 친다. 꼭 염두에 두어야 한다). 물론 수산물 채취권은 그 마을 주민의 권리이다. 마을에 따라서는 쳐다보지도 못하게 하는 곳이 있지만 대부분 약간의 채취는 눈감아 준다.

미역이 확보되었으면 (소금을 좀 넣고) 끓는 물에 통째로 집어넣는다. 데쳐낸다고 생각하면 틀리지 않다. 미역이 푸른색으로 변하면 수저 따위로 슬슬 저어준다. 물이 다시 끓기 시작하면 삼십 초 정도 있다가 건져내어 찬물에 헹군다. 손으로 비벼 빨고 찬물에 헹구는 것을 서너 번 해야 떫은맛이 없어진다.

채에 받쳐 물기를 뺀 다음 적당한 크기로 자른다. 가위가 좋다. 초고추장이나 간장에 찍어 먹는다. 젓국간장에 밥을 싸 먹어도 훌륭하다.

마을 아낙들이 발에 미역 너는 모습도 보일 것이다. 직접 사면 싸다. 양식장이 있는 곳에서는 양식 미역을, 이곳 거문도 같은 곳은 자연산으로 건미역을 만든다. 이거, 엄청 손 많이 간다. 따오는 것도, 너는 것도, 마르는 동안 일어난 거죽을 일일이 손으로 눌러 주는 것도 다 일이다. 그 과정을 다 거쳐야 겨울 바다와 사람의 손, 햇볕의 공동 작품이 나온다.

끝으로 이면우 시인의 시 ‘봄 중의 봄’ 한 부분.

‘아침으로 한 번은 꼭 미역국을 먹자고/ 여편네와 거듭 다짐했다/ 미역이 일하는 사람의 피를 맑게 한다더라/ 고래도 새끼를 배면/ 깊은 바다 미역 숲부터 보아둔다더라// 공장 잔업으로 더 늦게 들어오는 여편네가/ 스뎅 양푼 가득 맑은 물에/ 배배 꼬인 마른 미역 몇 오라기 담그고/ 새벽이면 더 멀리 가야 하는 내가/ 먼저 촉수 낮은 부엌 등을 켰다// 한 줌 마른 미역이 깊은 밤 한잠 새/ 맑은 꿈 속 뒤채며 몸을 풀고/ 이 아침 양푼 가득 파랗게 되살아나는 일/ 이른 봄 우리네 사는 일의/ 어김없는 물오름이여/ 쾌조의 봄이여’

소설가 한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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