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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의 힘, 지방의 다양성이 문화 강국 키웠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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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호 08면

파리에 있는 퐁피두센터 전경. 미테랑 대통령의 파리 문화시설 강화 정책인 ‘그랑 프로젝트’에 의해 만들어졌다.

문화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의 기조는 창조적 활동을 지원하는 것과 이를 일반 대중이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아마도 20세기 들어 배고픔에서 조금은 벗어나 여유를 찾게 된 사회에서 가장 중요하게 대두한 개념일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20세기의 대표적인 문화정책 성공 사례는 프랑스의 두 전직 문화부 장관에게서 찾을 수 있다. 샤를 드골 정부에서 첫 문화부 장관(임기 1959~69년)이 된 소설가 앙드레 말로(Andre Malreaux·1901~76)와 1981년 미테랑 대통령과 사회주의 정부를 출범시키면서 새로운 문화정책으로 프랑스를 바꾼 자크 랑(Jake Lang·71)이다.

문화강국 유럽, 정책 뜯어보기 <2> 프랑스 전 문화부 장관 자크 랑의 문화대중화 정책

이 둘은 모두 ‘문화 대중화’를 추구했지만 접근 방법은 달랐다. 『인간의 조건』등 많은 이에게 사랑받는 소설을 남긴 말로는 문화유산 관리에 심혈을 기울였다. 전쟁의 흔적이 남아 있는 각종 문화유산을 그야말로 ‘제대로’ 복구하자는 자세였다. 그는 프랑스와 파리가 가진 고급 문화 활성화에 방점을 찍었다. 이 덕분에 파리는 70년대 이후 세계적으로 가장 앞서가는 문화도시가 됐다. 하지만 이 같은 파리 중심의 고급문화 정책은 파리 이외의 다른 지역에 있는 다양한 지방문화를 소외시키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자크 랑의 문화대중화 정책은 이 부분에서 시작된다. 그는 중앙정부의 권력을 지방에 고루 분산시켜 지역별 문화 잠재력을 이끌어내는 데 힘을 쏟았다. 파리를 제외한 프랑스 전역을 7개로 나누고 문화부 산하에 지역 문화 사무소(DRAC·directions rgionales des affairs culturelles/regional bureaus of cultural affairs)를 만들어 긴밀한 소통체계를 구축한 것이다. 이는 정치적인 지자체 운영과는 별개로 문화자치를 시행했다는 뜻이다. 각 지역이 문화적으로 어떻게 특화할 것인지는 중앙정부가 컨트롤하되, 7개 지역에는 최대한 자율권을 주고 지역 문화 전문가들이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도록 했다. 예산은 중앙에서 가지만 집행은 지역 문화사무소의 집행권을 인정한 것이다.

자크 랑 전 프랑스 문화부 장관

이를 통해 지역별·도시별로 특색 있는 문화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아비뇽에는 국제 공연예술 페스티벌이 뿌리를 내렸고, 아흘레스에는 사진센터가 설립됐다. 미테랑 대통령은 85년 열린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에 참가한 뒤 국립만화연구소를 창설하기에 이른다. 디종에서는 르 콩소시움(Le Consortium)이라는 현대미술 지원기관을 통해 신진 작가들을 발굴했다. 80년대 대학 시절을 보내던 피에르 위그, 다니엘 뷔랭, 크리스티앙 볼탄스키 등은 이곳의 지원을 등에 업고 프랑스를 대표하는 현대미술 작가로 부상할 수 있었다.

이와 함께 랑의 업적으로 꼽을 만한 것은 고급 예술과 아마추어·저급예술로 구분되는 계급 의식(하이어아키)을 줄이는 데 주력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대중문화와 아마추어 문화활동에도 지원을 늘렸다. 82년에는 젊은이들에게 대중음악을 연습하고 연주해볼 수 있는 시설들을 제공했다. 84년에는 록음악 전용 콘서트홀 ‘르 제니스(Le Zenith)’를 개관했다. 랑은 이 같은 환경의 변화가 새로운 창조를 이끌어 낼 것이라 믿었다. 이는 창의력이 ‘국가기업’의 새로운 자본(new capital)이 될 수 있다는 확신 덕분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와 함께 주목해야 할 문화정책이 미테랑 대통령에 의해 진행된 ‘그랑 프로젝트’다. 이는 중앙집권적으로 진행된 대규모 건설 사업이다. 문화부 예산이 아닌, 완전히 별개의 예산으로 퐁피두센터, 루브르 피라미드, 내셔날 갤러리, 오페라 하우스 등 7개의 대규모 문화 시설이 모두 파리에 집중됐다.

당시 랑이 추구한 문화권력의 지방 분권화 정책 시행 과정에서 대통령의 중앙집권형 프로젝트가 함께 진행됐다는 것은 사실 아이러니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중앙에 집중된 대규모 ‘기관(Institution)’들의 설립 또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역에서 개발되고 창출된 콘텐트가 국가적으로 인정받고, 권위를 더하기 위해서는 ‘기관의 힘(institutional power)’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국제적인 콘텐트로 비상하기 위해서는 거대한 플랫폼 역시 필요한 것이다.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은 문화정책이나 시스템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도구이며, 그 결과는 도구를 어떻게 썼는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한 나라의 문화정책을 이해하고 접근함에 있어 단지 국가 간의 시스템 비교에만 그쳐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결론적으로 그들의 정책이 성공했던 이유는 중앙 문화부와 지역 문화기관의 견제와 보완이라는 구조를 통해 최상의 ‘퀄리티(quality)’를 만들어내는 데 모든 힘을 쏟아부었다는 데 있다. 그 과정이 얼마나 유연하고 투명하게 진행되었는지 역시 우리가 주의해서 분석해야 할 부분이다.


런던 골드스미스대 미술사(MA), 시티대 예술행정(MA)을 공부하고, 지난 10년간 유럽과 아시아에서 다수의 현대미술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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