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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20 09:32:14

[포스트 386] 2. 송호근 교수의 프리즘

중앙일보

입력 2004.10.04 18:51

업데이트 2006.02.11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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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포스트386세대'는 경제 분야에서도 386세대와는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386세대와 비교하면 '공익보다는 사익', '조직보다는 시장', '성장보다는 분배', '규제보다는 개방' 쪽에 확실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더 경쟁이 치열해지고 그만큼 불신도 커지는 사회 환경에 적응하면서 선배 386세대와는 다른 색깔의 '신 경제인' 군상을 이루고 있다.

▶조직지향적 퍼스낼리티 VS. 시장지향적 퍼스낼리티=불신사회에서 젊은 세대는 나름대로 독자적인 대응 양식을 배양했다. 청년시절 혁명전선에 뛰어들었던 386세대는 '조직지향적 퍼스낼리티'를 길렀고, 풍요로운 시대를 살았던 포스트 386세대는 '시장지향적 퍼스낼리티'를 배양했다.

그 바탕에는 공동체주의와 개인주의가 각각 깔려 있다. 세대별 '사회정의'개념은 다르다. 386세대는 효율성과 공익을 중시하는 반면 포스트386세대는 분배적 정의와 사익에 역점을 둔다. 언뜻 보기에 이율배반적인 듯한 두 개의 욕구는 '개인주의적 자유주의'에서 서로 화해한다. 분배가 사익에 기여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고 있는 것이다. 진보적 정책과 개인의 권리를 결합한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주의론과 유사하다. 그렇다고 포스트386세대는 자신의 것을 양보할 의지가 있는가. 물론 없다. 불신사회이기 때문에 그렇다. '평등과 개방은 좋으나 내 것은 건드리지 말라'는 게 포스트386세대의 슬로건이다. 386세대는 평등과 개방을 위해 내 것을 기꺼이 희생한 세대다.

▶개인적인 것을 중시=불신사회에서 포스트386세대는 개인 영역으로 돌아섰다. 386세대가 공사(公私)의 경계선에 서 있는 것에 비하면 이들은 아예 '사적인 것, 개인적인 것'으로 미련없이 진입했다. 공동체에서 개인으로, 조직에서 시장으로 전환한 것이다. <그림>은 사회와 경제영역에서 두 세대 간 가치관의 대립과 분화를 측정한 것이다. 포스트386세대의 위치는 386세대보다 구심점(개인적 가치)을 향해 내밀해 있다(KGSS 자료를 토대로 작성).

▶분배.사익.보상지향=386세대는 자본주의를 부정적으로 본다. 혁명세대의 학습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터득한 명제다. 부정적 이미지는 포스트386세대로 넘어오면 상당히 수그러진다. 긍정적 측면-물질적 풍요와 (공정한) 경쟁-을 중시하는 인식이 늘어난다. 포스트386세대는 자본주의의 우월성을 결코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부도덕하고 부패했음을 민주정부의 지도자들에게서 수없이 들어왔고 목격했다. 부정적 평가가 각인된 정도는 386세대보다 훨씬 크고 깊다는 것은 흥미롭다.

대기업(재벌)이 경제성장에 매우 중요함을 인정하지만 실제적인 기여도 평가에는 386세대보다 인색한 이유다(386세대는 71점, 포스트 386세대는 65점을 주었다). 주목할 만한 것은 '대기업의 규모가 현재보다 훨씬 축소돼야 한다'는 지적이 포스트386세대에서 역시 두드러진다는 점이다(50%).

정경유착과 독점에 대한 경계심이 '규모의 경제' 필요성을 능가하는 것이다. 이런 경향은 386세대보다 훨씬 높은 '분배 정서'를 촉발했다. 386세대는 69%가 '성장 우선'을 선호했음에 비해 포스트386세대는 이보다 10%포인트나 낮다. 높은 분배 정서와 평등지향은 포스트386세대의 세대적 로고(logo)다.

분배 정의를 강조하는 성향은 직무 태도에 역으로 반영된다. 386세대는 공익 기여를 불변의 가치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포스트386세대는 다르다. 자신의 직무와 공익을 동일시하는 점수가 7점 낮아지고, 직장 헌신의 의지가 지극히 낮다. '다른 곳에서 더 많은 월급을 제의해도 현 직장에 남겠다'는 답변이 386세대보다 11점이 낮았다. 더 나은 보상을 찾아 항상 떠날 용의가 있다는 말이다.

▶경계 없는 시장민족주의=386세대는 시장규제를 선호한다. 공정성의 전제조건이다. 그러나 포스트386세대는 시장합리성에 우선 기대를 건다. 그래서 시장규제를 반대하는 경향이 있다.

시장규제는 정경유착의 씨앗이라는 사회적 학습의 결과이거나 세계화를 운명적으로 받아들였다는 증거일 수도 있다. 386세대는 시장개방에 주저하는 반면 포스트386세대는 개방을 시장경제의 전제 조건으로 수용하는 경향이 높다('시장규제와 보호 필요성'에 386세대는 59점, 포스트386세대는 54점을 주었다). 외국 문화에 대한 수용도도 포스트386세대가 6점이나 높았다(386세대는 50점, KGSS자료). 이런 관찰을 개념화하면 386세대는 '국적 있는 경제민족주의', 포스트386세대는 '경계 없는 시장민족주의'(Borderless Market Nationalism)를 내면화한 것으로 보인다. 민족경제론보다는 세계화의 세례를 받은 포스트386세대에게 '경계는 없다'. 경계가 있다면 시장질서를 교란하는 권력의 개입이나 독점의 횡포다.

▶세대 갈등=두 세대의 퍼스낼리티는 충돌한다. 정부의 경제 정책, 대기업 정책, 그리고 기업현장에서 서로 갈등한다. 강남 집값을 잡기 위해 고강도의 세금정책을 쓰는 것에 386세대는 우려를 나타내지만 포스트386세대는 즉각 환영한다.

포스트386세대는 대기업의 독점력, 지배구조, 내부 관행과 씨름하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열렬한 팬이다. 기업에서 부장급인 386세대는 역시 우려를 감추지 못한다. 약간의 모순을 감수하고라도 국가 경쟁력의 주력을 훼손하는 것에 과거처럼 박수를 보낼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386 부장들은 기업 헌신과 팀워크를 강조한다. 포스트386 과장과 대리들은 직장이 놀이마당이어야 한다. 흥이 나지 않고, 자아실현과 사익에 위배되는 팀워크는 참을 수 없다. 그들은 외친다. "평등과 개방을 지향한다. 그러나 내 것은 건드리지 말라"고. 조직과 시장의 갈등, 공익과 사익 추구 행위양식의 갈등은 이제 한국 사회의 모든 영역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송호근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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