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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학습 돕는 ‘공무원 선생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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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학생들에게 영어를 최대한 또박또박하게, 최대한 느리게, 최대한 크게 말하라.’

교육과학기술부 토크(TaLK)지원팀의 박병태 팀장(52·사진)이 지난해 말부터 만들고 있는 교재 『영어 부진아 지도법』의 핵심 내용이다. 토크는 영어권 국가의 원어민과 교포를 선발해 국내 농어촌 지역 초등학교에 방과후 영어강사로 배치하는 프로그램이다. 교과부에서 원어민 강사를 교육·관리하는 업무를 맡고 있는 박 팀장은 원래 법령심사 업무를 맡은 법제처 소속 서기관이다. “영어 교육에서 소외된 학생들을 돕고 싶다”며 교과부 파견을 지원해 지난해 7월부터 토크 지원팀장을 맡고 있다. 팀장을 타 부처 공무원이 맡은 것은 교과부에선 처음 있는 일이다.

“지금은 원어민강사들을 상대로 영어강의를 할 정도로 영어를 잘하지만, 어렸을 때는 학습부진아였습니다. 스스로 체득한 영어학습법을 소외지역 학생들에게 알려주고 싶어 교과부 파견을 지원했죠.”

박 팀장은 공무원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공무원 영어선생님’으로 통한다. 놀라운 사실은 그가 정규교육을 받은 것은 초등학교 때 뿐이라는 사실이다. 학원에서 영어를 배운 적도 없다. 가난했던 그는 경북 포항에서 중학교를 중퇴하고, 철공소·공사현장 등을 전전했다. 그러면서도 배움의 끈을 놓지 않고 졸리는 눈을 비벼가며 검정고시 책과 씨름했다. 그 결과 중학교·고등학교 검정고시에 차례로 합격했다. 1990년에는 7급 공무원 공채시험에 합격해 늦깎이 공직자가 됐다. 공직생활을 시작한 그는 당시 당시 불어닥친 영어 열풍에 자극받아 서점에서 영어교재를 집어들었다가 인생이 바뀌었다.

“교재를 한 번 읽고, 테이프로 세 번 듣고, 세 번 따라 말하는 연습을 하루 8시간씩 6일을 했더니, 영어회화도 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

뒤늦게 영어에 흥미를 느낀 그는 국비 유학을 가기 위해 97년 독학으로 학사(법학) 학위를 받았다. 2000년 유학길에 오른 그는 미국 시라큐스대학에서 행정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유학 시절 영어의 기본체계를 이해하기 위해 구강 해부학까지 독학으로 공부했다. 유학을 다녀 온 그는 공무원들을 상대로 토플·토익 등 영어 특강을 하며 ‘공무원 영어선생님’으로 불리고 있다. 『48시간 영어공부법』 『8시간 6일이면 영어회화 정복한다』 등의 영어공부 책도 펴냈다.

“유학을 가보니 토플 고득점을 받은 한국 학생 가운데서도 강의실에서는 벙어리인 사람이 적지 않더군요. 영어에 천문학적 비용을 들이고도 영어 벙어리를 양산하는 교육 시스템을 바꿔야 합니다. ”

박 팀장은 올해 계획에 대해 “직접 농어촌 학교를 찾아가 스스로 체득한 영어학습법을 학생들에게 가르쳐주고 싶다” 고 말했다. 

정현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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