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치졸한 '차광 주사제' 싸움

중앙일보

입력 2000.07.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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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약사법 대책 6인 소위' 가 차광(遮光)주사제를 의약분업 대상에 돌연 포함시켜 논란이 되고 있다.

햇빛이 들어가면 변질돼 약효가 뚝 떨어지는 차광주사제를 '주사제의 오.남용 방지' 라는 입법 취지에 따라 의약분업 대상에 끼워 넣어 내년 3월부터 시행키로 했다 한다.

의사의 처방을 받아 약국에서 차광주사제를 산 뒤 병원으로 갖고 가 주사를 맞도록 하자는 것이다. 차광주사제는 대부분 항암제며, 이밖에 항생제.항진균제도 있다.

주사제의 의약분업 포함 여부는 그동안 여러차례 바뀌었다. 1998년 관련 단체와 소비자.학계.언론계 등 공익대표로 구성된 의약분업추진협의회는 "분업 대상 의약품은 주사제를 제외한 모든 전문 의약품으로 한다" 는 데 합의했다.

그러나 이후 사정이 바뀌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6월 '의약분업 추진현황' 자료를 통해 '의약분업 예외 의약품' 리스트를 공개했다.

거기에는 전염병 예방접종약과 마약.방사성 의약품.신장 투석액, 검사를 위해 필요하거나 수술 및 처치에 사용되는 의약품 등이 포함됐다.

또한 운반 및 보관에 있어 빛을 차단해야 하거나 냉동.냉장이 필요한 주사제와 항암제도 예외로 두었다.

차광주사제를 의사가 직접 조제하거나 의료기관의 조제실에서 조제할 수 있게 허용한 것이다. 그러나 엊그제 열린 국회 보건복지위 6인 소위가 느닷없이 차광주사제를 의약분업 대상에 포함시켰다.

이런 과정을 지켜보노라면 이익단체들의 '밥그릇 싸움' 과 이를 둘러싼 흥정에 국민건강 문제가 휘둘린다는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원칙과 일관성에 의문을 갖게 되는 것이다. 국회에 제출된 정부안에는 없는 내용이 갑자기 추가된 점이나, 6인 소위의 설명을 납득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6인 소위는 "취급 부주의에 따른 의료사고 등 우려가 있지만 주사제의 절반을 차지하는 만큼 입법 취지를 살려 포함시켰다 "고 설명했다 한다.

그러나 그런 취지라면 당초 차광주사제를 의약분업 대상에 포함시켰어야 옳지 않은가. 돌아가는 형세를 보면 주사제를 누가 취급하느냐는 이해에 따라 법이 왔다 갔다 하는 꼴이다.

국민의 건강이나 환자 편의는 전혀 무시한 채 누구에게 더 이로운가만으로 법을 만들었다 고쳤다 하는 한심한 작태가 지금 벌어지고 있다. 이래선 올바른 의약분업이 될 수 없다.

의약분업은 무엇보다 국민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시행해야 하고 법개정도 그런 차원에서 다뤄져야 한다.

따라서 차광주사제 문제도 중환자의 편의나 의료 차원에서 다뤄야 할 일이다. 치졸한 주사제 싸움을 벌여선 약사든 의사든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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