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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행상하며 아들 만나기만 기다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6면

곧 돌아올 것처럼 밝은 웃음을 보이며 집을 떠났던 열아홉살 아들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지난 50년 동안 해마다 아들이 집을 떠나간 7월이 되면 '행여나…' 하는 마음으로 정성껏 지은 밥과 정안수를 차려놓고 기도를 올렸다.

북한 김일성대 조주경(趙周瓊.69)교수의 어머니 申재순(88.부산시 서구 대신동)씨는 북측의 상봉희망자 명단이 발표된 17일 "8년 전 주경이가 살아 있다는 소식을 전해듣긴 했지만 이렇게 만날 기회가 올지는 꿈에도 몰랐다" 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게다가 아들이 최고의 과학자에게 주어지는 '인민과학자' 칭호까지 받은 사실을 알게 된 어머니는 더욱 대견한 표정이었다.

어릴 적 친형제처럼 자라 趙씨에 대한 정이 남다르다는 사촌동생 주찬(68)씨도 "수십년 전 물난리 때 형과 함께 찍은 사진을 모두 잃어버려 꿈 속에서 형의 모습을 그려왔다" 고 울먹였다.

그는 "형이 서울대 문리대에 다닐 때 동료학생들이 서로 형한테 배우겠다고 다툴 정도로 두뇌가 명석했다고 들었다" 고 회고했다.

또 "형은 남편도 없이 혼자 아들을 키우던 숙모에게 정신적 지주였다" 고 말했다.

申씨는 지난 65년 생활고 때문에 서울에서 친정 식구들이 있는 부산으로 내려가 삯바느질.식료품 행상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해 생계를 꾸려왔다고 한다. 그러다 80년부터 한 사찰로 들어가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주경이가 만약 죽었으면 좋은 데로 가게 해달라, 살아 있으면 눈감기 전에 꼭 한번 만나게 해달라고 빌면서 여생을 지내려고 했지요. 생전에 이런 기회가 생겨 얼마나 축복인지 모릅니다. 감사드립니다. "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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