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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문화동네 <8> 미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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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최수앙 작 ‘날개’, 우레탄에 유채, 2008. 거대사회 조직 속에서 표준화·정형화·체계화 되는 개인의 희생을 파편화된 손을 모아 만든 날개로 상징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1. 애비 없는 자식

지난달 27일 미국에서 타계한 이경성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은 두 차례나 관장을 역임한 한국 미술관 역사의 산 증인이다. 12월 3일 한국으로 운구됐지만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이나 서울 덕수궁미술관, 서울관이 들어설 기무사 터에 빈소는 설치돼지 않았다. 미술계 인사 여럿이 국립현대미술관에 분향소라도 설치하자고 건의했지만 묵살됐다. 최열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회장은 최근 김달진미술연구소에서 개설한 추모 사이트에 ‘국립현대미술관이 저지른 죄-애비 없는 자식’이란 글을 올렸다. 국립현대미술관에 최초로 미술인 출신 관장으로 들어와 학예연구사 제도를 도입하고 작품구입예산 수립과 확보를 하는 등 부모와 같은 인물을 내친 꼴이라는 것이다.

#2. ‘시장 비평’의 도래

김기라 작 ‘ Coca-Killer’, 설치작업, 2009. 예리한 통찰력으로 대중소비사회의 가려운 곳을 긁어준다.

미술평론가 심상용씨는 미술전문지 ‘아트 인 컬쳐’ 창간 10주년 특집에 “오늘날 예술 작품의 읽기에 적용될만한 미학적 절대성은 눈곱만큼도 남아 있지 않다”고 자조적으로 썼다. 미적 평가는 시장이 부추기고 황색화된 저널리즘이 뻥튀기는 명성의 소산을 정당화해주는 관례적 기제가 되었다고 쓴소리를 했다. 그는 이러한 비평을 ‘새로이 도래한 시장 비평’이라 부르며 “미적 질의 최종 평가는 경매장에서 내려지고, 비평은 그 시장적 결정에 아카데믹한 정당성을 부여해준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정부나 지자체들이 예술을 대하는 태도는 ‘간판 상품’ 하나 만들어 달러나 실컷 벌어보는 것이고, 이 역시 비평에 의해 정당화되고 있다”고 일갈했다. 

2009년 미술계를 돌아볼 때 떠오르는 두 단어, 시장논리와 공공성의 훼손을 잘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정부는 서울 사간동 국군지구병원을 포함한 옛 기무사 터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으로 내주고 생색을 냈지만 한국 미술계 역사와 내용을 무시한 불도저식 발상이었음을 드러냈다.

국공립미술관이 외부 기획사의 대관 단체로 주저앉아있음에도 문화체육관광부는 국립현대미술관의 특수법인화를 사실상 확정지음에 따라 그 부작용이 예상되고 있다. 미술평론가 김영순씨는 “일본이 이미 시행해 수많은 부작용을 낳으며 전시 안 하는 미술관이 속출하는 걸 지켜보면서도 이런 결정을 내리는 배경을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2009년 미술계의 또 하나의 소득이라 꼽히는 예술창작센터와 작가스튜디오, 입주(레지던스) 프로그램 확산 역시 시장논리를 뒷받침해주는 보조기구로 전락하고 있다. 사진가 오은령씨는 “작가들에게 자유로운 창의력을 요구해야 할 창작센터가 공모로 순위를 매기고 서로가 경쟁하도록 만들어 일종의 서바이벌 게임을 벌이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렇게 길들여진 작가들이 늘어나면서 이를테면 ‘외국 비엔날레 풍’이나 ‘뉴욕에서 잘 팔리는 A급 작가 베끼기’ 같은 화랑계 요구에 젊은 작가들이 응하게 되면서 그들이 도구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박신의 경희대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는 “자유로운 정신에 더 비중을 두는 비효용성의 예술을 효용성의 논리와 계산기를 잣대로 짜 맞추려는 사회 시각이 한국 미술을 위축시키고 있다”고 걱정했다. 박수근 그림 ‘빨래터’의 진위 법정 공방, 국세청 공무원 비리에 연루된 미술품 거래 등 최근 터져 나온 일련의 사건은 미술품이 시장 논리로만 치닫게 되면서 다다른 결과라는 것이다.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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