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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변화 기피증’의 일본 다루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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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홍백전에는 기본적으로 그해에 히트한 노래를 낸 가수가 출연하게 돼 있다. 하지만 올해도 21일 발표된 출연자 명단을 보면서 “역시나”란 말이 절로 나왔다. 올해 1년 동안 음반 하나 내놓지 않은 이들이 절반을 넘는다. 모리 신이치(森進一) 같은 가수는 올해로 42년째 출연하지만 ‘오후쿠로(어머니)’라는 노래만 7년째 부르고 있다. 기타지마 사부로(73)는 46년째, 이쓰키 히로시(61)는 39년째 고정 멤버다. 강산이 변해도 변화를 찾아볼 수가 없다. 그래도 일본 시청자들은 환호하니 알다가도 모르겠다. 젊은이건 노인이건 변화와 기회를 좇기보다 안정과 방어에 치중하는 사고회로를 지녔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소니가 삼성전자에 뒤처진 이유도 ‘워크맨 신화’나 ‘TV의 소니’와 같은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력이 안 되는 건 과감하게 내치고 집중 투자를 해야 하는데도 과거의 향수만 떠올리고 있으니 죽도 밥도 안 됐다. 도요타의 고전도 비용 절감이라는 ‘가이젠(개선)’에만 집착했을 뿐, 기존의 틀을 완전히 허무는 ‘가이카쿠(개혁)’를 할 엄두를 못 냈기 때문이다.

정치는 더 하다. 54년 만에 민주당으로 정권교체를 이뤄낸 건 ‘변화’를 갈구했기 때문이라 봤는데, 그게 아니었다. 일본 국민이나 언론은 여전히 ‘자민당 식’이다. 주일 미군기지 문제만 봐도 그렇다. 정권이 바뀌면 정책이 바뀌는 게 당연한 건데 그걸 “왜 딴소리 하느냐”며 몰아세운다. 예산 편성도 그렇다. 관료에 모든 걸 맡겼던 옛 방식에서 벗어나 정치인들이 이런저런 이해관계를 조정하려 하니 “리더십이 없다” “여당의 월권 행위”라며 가차없이 매를 든다. 변화를 택해 놓고는 그 변화를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기모순에 빠져 있는 것 같다. 국민·언론 모두 무려 54년간의 자민당 정치에 길들여진 결과일 게다.

일주일 후면 ‘한·일 강제병합 100년’의 해를 맞이한다. 양국에는 ‘변화’와 ‘전환’의 해다. 일본이 식민지 지배와 침략을 사죄한 1995년의 ‘무라야마 담화’는 종전 50주년을 맞아 나온 것이었다. 따라서 올해도 ‘하토야마 담화’건 ‘오자와 담화’건, 혹은 국회 전체 결의건 보다 치열한 반성과 보다 명확한 미래지향을 담은 담화가 필요할지 모른다. 변화를 꺼리는 일본 입장에서야 “도대체 언제까지 사과만 해야 하느냐”며 불만이겠지만 그게 바로 역사에 대한 대가다. 다만 한국도 일본 특유의 ‘변화 기피증’을 감안하면서 서두르지 말고 이해시켜 가면서 변화를 이끄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것이다.

김현기 도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