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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클립] 뉴스 인 뉴스 <64> 방송 연말 시상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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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8면

세밑 결산이 한창인 요즘, 방송가에선 연말 시상식의 꽃이라 할 연기대상에 관심이 집중됩니다. 드라마 편식이 심한 안방 극장에서 그 해를 빛낸 스타들을 한자리에서 보는 것은 시청자에게 즐거움이죠. 그럼에도 해마다 불거지는 공정성 논란은 상의 권위를 의심케 합니다. 과연 수상자는 어떻게 뽑는 것인지, 역대 연기대상을 수상한 영광의 얼굴들은 누구인지, 3사 공동 시상 걸림돌은 무엇인지 살펴봅니다.

강혜란 기자

올 후보 많은 KBS·MBC,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SBS

올 연말대상 관전 포인트 중 하나는 이병헌의 수상 및 참석 여부다. KBS ‘아이리스’에서 몸을 사리지 않는 연기로 30%대 시청률을 이끈 이병헌은 대상 수상이 확정적인 상태다. 그러나 종영을 전후해 각종 구설수와 송사에 휘말리면서 시상식 참석에 확답을 주지 않고 있다. KBS는 참석 가능성을 낙관하지만, 혹시라도 못 나타날 경우에도 대상을 줄지 물밑 고민 중이다.

올 KBS는 상반기에 ‘꽃보다 남자’, 하반기에 ‘아이리스’가 터지면서 수상자 선정에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다. 김현중 등 F4 멤버와 함께 참석이 확정된 이민호는 신인상 외에 베스트 커플상 등 복수 수상이 유력시된다. ‘아이리스’의 ‘미친 존재감’ 김승우와 착한 드라마 ‘솔약국집 아들들’의 손현주도 수상 1순위다. ‘천추태후’의 채시라도 여자 연기자 부문에서 제 몫을 챙길 것으로 보인다.

MBC는 ‘선덕여왕’의 미실 역 고현정이 워낙 발군이지만, 타이틀롤 이요원을 어떻게 대접할지가 고민거리다. 상반기 비틀대던 MBC에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내조의 여왕’의 김남주도 외면하기 어렵다.

이에 비해 SBS는 고만고만한 히트작은 많아도 똑 떨어지는 대상 후보가 없다. ‘스타일’에서 ‘에지’ 있는 커리어 우먼을 선보인 김혜수와 ‘찬란한 유산’의 이승기·한효주 커플이 그중 유력시된다. ‘카인과 아벨’의 소지섭은 기대 이하의 시청률이, ‘아내의 유혹’의 장서희는 ‘막장 드라마’ 논란이 부담스럽다.

 총 5회로 가장 많은 대상 트로피를 가져간 고두심(사진 3)은 3사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유일한 연기자다. 지난해 SBS는 새 피 문근영(사진 1)을, KBS는 관록의 김혜자(사진 5)를 영광의 주인공으로 택한 가운데 MBC는 김명민(사진 2)과 송승헌(사진 4)에게 첫 공동 대상의 타이틀을 안겼다. [중앙포토]

연기력보다 시청률 끌어올린 공로 인정하는 자리

지난해 MBC는 연기대상을 김명민과 송승헌에게 나눠 줘 논란을 샀다. 타 방송사에서 ‘공동 대상’이 없던 것은 아니지만, 시청자들은 ‘베토벤 바이러스’의 김명민과 ‘에덴의 동쪽’의 송승헌이 ‘연기력’에서 동급으로 평가된 걸 수긍 못했다. 그러나 업계 관계자들은 이것이 방송사 연기대상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름과 달리 연기력은 연기대상의 유일 기준도, 제1 기준도 아니기 때문이다. 연기대상은 형식일 뿐, 실은 그 해 각 방송사의 프로그램을 빛내 (경제적으로) 기여한 ‘공로 치하’ 의미가 크다는 뜻이다.

이는 역대 대상 수상자를 살펴봐도 알 수 있다. 각 방송사의 대상 수상자는 대체로 그 해 시청률 1위 주연이다. 시청률이 높으면 광고 판매가 유리하고 이는 방송사에 대한 ‘(경제적) 기여도’로 환산된다. 거꾸로 말해 아무리 신들린 연기를 했어도 시청률이 뒷받침해주지 않으면 연기대상을 수상하긴 어렵다는 말이다. 우열을 가리기 힘들 땐 방송 기간이 긴 쪽, 다시 말해 대하 드라마나 주말 연속극 쪽이 유리하다. 그 밖에 개인의 스타성과 드라마로 인한 화제성도 변수가 된다.

KBS의 한 중견 CP는 “엇비슷한 후보일 경우 KBS는 고참 연기자를 우대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해당 분야의 전문성과 기여도를 높이 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주말 대하 사극에서 수상자가 자주 나왔다. 유동근(1997 ‘용의 눈물’), 채시라(99 ‘왕과 비’), 최수종(2000 ‘태조 왕건’, 2007 ‘대조영’), 김명민(2005 ‘불멸의 이순신’) 등이다. 상대적으로 MBC와 SBS는 개인의 스타성에 좀 더 비중을 둔다.

특히 후발 주자인 SBS는 신진과 영화배우 출신에게 과감하게 문호를 넓혀 자사 우호세력을 키워왔다. 김희선(98 ‘미스터Q’), 김정은(2004 ‘파리의 연인’, 박신양과 공동 수상), 문근영(2008 ‘바람의 화원’)은 그 해 최고 스타보다 차세대 스타를 발굴한 쪽으로 평가된다.


김혜자 4번으로 2위 … 최연소는 21세 김희선·문근영

KBS·MBC의 연기상은 70년대 탤런트 공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MBC는 방송대상이라는 이름으로 74년 11월 1일 첫 시상을 했는데, 당시엔 남녀 최우수상이 최고였고 이 밖에 우수·신인·공로 등을 시상했다. 이듬해 코미디 최우수상이 신설되고 라디오부문 시상도 별도로 시작됐다. 80년대 들어 12월 말로 옮겨간 시상식은 점차 독립 프로그램으로서 브랜드를 높여갔고, 날짜를 오락가락 바꾸다가 90년대 중반부터 12월 30일로 굳어졌다. 87년 공개 시상식을 시작한 KBS는 31일로 날짜를 잡았다. 93년 첫 시상식을 연 SBS도 31일로 날짜를 잡아 양 방송사에서 동시 수상하는 연기자들은 여의도와 등촌동 스튜디오를 오가야 한다.

방송가의 드라마 편중이 심화된 데다 장르 분화도 가속화돼 수상 분야는 점점 늘어났다. MBC는 85년 ‘대상’을 신설, 남녀 최우수상 위에 ‘옥상옥’을 만들었다. 후발주자인 KBS·SBS도 이를 따랐다.

방송 3사 ‘대상’ 수상자만 추려보면, 고두심이 5회로 최다 수상 기록을 갖고 있다. 김혜자가 4회, 채시라·최수종·김희애가 각 3회씩 수상했다. 고두심은 유일하게 3사 그랜드슬램을 달성했을 뿐 아니라, 2004년 ‘꽃보다 아름다워’(KBS)와 ‘한강수타령’(MBC)으로 양 방송사 동시 수상이라는 희귀한 기록을 남겼다. 채시라가 MBC에서 95, 96년 연속 수상한 것도 이례적인 일로 꼽힌다. 역대 최연소 수상자는 99년 김희선과 지난해 문근영(각각 당시 21세)이다.

방송사 연말 광고 특수 … 스타 모시려 상 내주기도

각 사는 11월께부터 시상식 진행팀을 꾸린다. 평PD들로부터 부문별 후보자를 추천 받고, 시상식 3주 전쯤 2배수로 압축한다. 그리고 이즈음부터 각 후보자의 참석 여부를 확인하기 시작한다. 예나 지금이나 상의 공신력이 높지 않은 데다 한류 스타의 해외 활동도 잦아져 참석을 100% 확신할 수 없다. 따라서 국장과 CP 등 제작국 간부들로 구성된 심사위원회에서 최종 수상자를 결정할 때 후보자의 참석 여부가 변수가 되기도 한다. “상을 주면 참석한다”는 밀고 당김 속에서 표가 엇비슷할 경우 참석 가능자에게 상을 주기도 하고, 나아가 연기상을 준다고 꾀어놓고 특별상을 주는 상황도 발생한다.

이 때문에 방송 3사 시상식을 합쳐서 운영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끊이지 않는다. 방송사들도 몇 차례 진지한 논의를 했지만, 유의미한 결과는 도출하지 못했다. 3사를 가로지르며 연기력을 공정하게 평가할 심사위원단 구성도 문제지만, 실은 연기대상 시상식 자체가 방송사의 연말 효자 프로그램이어서다.

MBC가 12월 30일, SBS·KBS가 12월 31일 연기 시상식을 진행한 이래 시청자들은 안방 스타와 함께 세밑을 보내는 게 관례화됐다. 일본 NHK의 ‘홍백전’ 정도 시청률은 아니라도 두 자릿 수는 거뜬히 보장한다. 지난해 MBC 연기대상 2부는 28.0%(AGB 닐슨미디어리서치)를 기록, 그 해 전체 평균 시청률 7위나 됐다. 프로그램 광고 판매도 수월하게 이뤄진다. 게다가 시상식엔 별도 출연료도 없고, 상금도 체면치레 정도거나 아예 없다. 스타들은 단지 상을 받고 서로를 격려하기 위해 방송사의 부름에 응하는 것이다. 방송사 입장에선 이만한 연말 특집이 없다. 케이블 자체 제작 드라마가 늘고 종합편성채널이 합류하는 내년 이후에도 연기대상 공동 시상식이 요원해 보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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