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토요 인터뷰] 일본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인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 명예회장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철인경영(哲人經營)’. 과연 가능할까 싶지만, 현실에서 탄탄하게 뿌리를 내린 사례가 있다. 일본에서 살아있는 ‘경영의 신’으로 추앙받는 이나모리 가즈오 (稻盛和夫·77) 교세라 명예회장이다. 그의 교세라는 1959년 다른 회사의 공장 한구석을 빌려 종업원 28명의 벤처기업으로 출발했다. 창업 후 매년 흑자를 내온 교세라는 종업원 5만9500여 명, 자회사 219개를 거느린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가 존경받는 것은 숫자로 나타난 경영실적 덕분만이 아니다. 인본사상을 담은 그의 경영철학 때문이다. 그는 돈을 벌려고, 이익을 내려고 아등바등해본 적이 없다. 기업활동을 통해 인간성을 구현하는 데 노력해왔다. 남을 배려하고, 보살피고, 믿고, 도우며 기업활동을 하면 돈은 자연히 따라온다는 주의다. 그래서 그는 차가운 금속성의 미국식 합리주의와는 거리를 둔다. 그는 지난 7일 교토(京都)의 교세라 본사에서 1시간 동안 인터뷰에 응해 평소의 경영철학과 세계관을 들려줬다. 한때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스님이 되기도 했던 그는 불교 사상에도 해박하다. 질문에 답할 때는 간간이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짧은 명상에 잠기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교토=김동호 특파원

리더십 원동력은

-지방의 벤처기업을 세계적 대기업으로 키웠다. 새로운 사업에 진출하거나 인수합병 을 거치며 성장했다. 강력한 리더십이 있어서 가능했을 것 같다.

“어떤 면에선 그럴지 모른다. 27세에 28명으로 회사를 시작했다. 아주 작은 영세기업이어서 자금도 그다지 없었고, 기술도 많지 않았다. 사람밖에 없었다. 모두 단결해 경영의 목적을 향해 공동 목표를 공유한 것이 큰 원천이었다. 사명과 목적을 충분히 서로 이야기해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떤 사고방식과 철학을 가져야 하는지 전 직원이 공유했다. 이것이 ‘교세라 필로소피’다. 이것을 한 명 빠짐없이 공유해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직원 모두가 하나가 돼야 한다. 이걸 두고 리더십이 강하다고 할지 모르겠다. 최고경영자(CEO)가 권력이 있다고 해서 어깨에 힘준 채 깃발 휘두르면서 너는 이쪽으로, 나는 이쪽으로, 하는 식으로 지휘하는 것만으론 되지 않는다. 그럼 직원들이 따라오지 않는다.”

-세계적인 불황 속에서 일본도 어렵고, 모든 회사들의 경영상황이 나빠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런 방식이 잘 될 수 있는가.

“회사의 사명과 목적을 설정해 모두가 이해하고 공감하면 경영은 잘 되게 마련이다. 경영이 잘 되니까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 잘 안 되니까 그렇게 하는 거다. 전 종업원이 협력해 노력하는 것이 첫출발이다. 그러면 아무리 나쁜 경영환경에서도 상황을 개선시킬 수 있다. 그게 50년간 한 번도 적자 결산을 해본 적이 없는 교세라의 원동력이다.”

이나모리 가즈오 명예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지금도 다과회·만찬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 사원들과 교류하고 있다. 교세라 직원들은 이런 자리를 통해 회사의 경영 목표를 공유할 수 있다. [교세라 제공]

종업원은 가족

-명예회장은 종업원을 가족처럼 대해주는 경영을 해왔다. 그러나 요즘은 미국식 성과주의가 중시되고 있다. 앞으로도 교세라식 방식이 통용될 수 있을까.

“가족의 바탕은 서로 신뢰하는 것이다. 이런 관계를 사내에 만들려고 해왔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떤 사고방식, 철학을 가져야 하는지를 사원들이 공유하도록 하고 있다. 톱 경영자와 중간층, 모두 같은 사고방식을 가져야 한다. 경영자는 종업원, 종업원은 경영자를 배려해서 모두 한마음이 되는 것이다. 교세라는 위도 아래도 같은 철학과 목표를 가진 회사를 만든다는 점에서 일 잘하는 사람만 승진하는 회사가 아니다. 힘 있고 지혜가 있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을 도와줘야 한다. 서로의 능력을 발휘해서 협력하는 구조라야 한다. 그래서 미국식 능력주의는 채용하지 않고 있다. 능력주의를 하면 유능한 사람이 노력해 성과를 내는 것 같지만, 사내에서 알력도 생긴다. 회사가 발전하고 활력이 넘칠 때는 능력주의가 좋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때가 문제다. 불평불만이 나오고 협력도 잘 되지 않는다. 개인의 능력에 의존한 성장구조가 영원히 계속되지는 않는다.”

-독특한 경영방식을 펴게 된 계기는.

“나의 인간성에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어릴 때 아주 가난했다. 부친은 작은 인쇄소를 경영했다. 그런데 미군의 공습으로 이마저 잿더미가 됐다. 인쇄기계도 없어져 모두 어려웠다. 형제 7명에 사촌들까지 챙겨야 했다. 집도 불타버리고 식량도 없었지만, 부모님을 중심으로 힘을 합쳤다. 부모님은 열렬한 불교신자였다. 이런 영향으로 형제들은 서로 도왔다. 그러면서 남에 대한 자비, 사랑, 부드러운 배려 등이 인간에게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어릴 때부터 정의감이 있었고, 누군가 약자를 괴롭히면 그냥 보지 못하고 도와줬다. 소년 시절의 마음이 그대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머리 좋은 사람이 능력이 있다고 해서 크게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신은 인간에게 큰 능력의 차이를 뒀을 리 없다. 모두가 행복하길 바랐을 것이다. 그러니 서로 도와줘야 한다. 나는 이공계 출신이어서 경영은 전혀 몰랐다. 미국에 유학해 경영학을 배운 적도 없다. 원래부터 사람을 중시하는 사고방식을 지녔다. 미국식 경영방식을 알고서 반대한 게 아니다.”

아메바 경영은

-교세라는 세포가 분열하는 것처럼 조직을 세분화해 독립적으로 경영하는 ‘아메바 경영’으로 유명하다. 아베마 경영의 장점은 무엇인가. 조직이 커서 비효율이 나올 수도 있을 거라고 보기도 하는데.

“전 세계에서 직원 6만 명이라면 적지 않은 규모다. 각지의 조직을 운영하며 철학·사명·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떤 사고방식을 가져야 하는지 모두가 이해하고 공유하고 있어야 한다. 여기엔 독립채산제가 효율적이다. 작은 독립채산제로 만들어 영업손익을 바로 알 수 있도록 하는 게 아메바 경영이다. 200개 이상의 부문이 매월 말 결산을 보내온다. 이로써 경영상태를 바로 알 수 있다. 일각에선 경영비용이 커지는 단점도 지적한다. 그러나 일반 회사보다 더 효율적이다. 제로부터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미 커진 회사가 이런 방식을 도입하면 엄청난 간접비가 발생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처음부터 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었다. 체질이 된 것이다.”

-거듭된 M&A에 모두 성공했다. 어떤 비결이 있었고,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보통은 인수하는 측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합병을 추진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나는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것을 추구한다. 인수되는 기업의 종업원들도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하도록 해줘야 한다. 우리는 먼저 ‘이런 철학, 이런 방식으로 일을 한다’고 전한다. 상대방이 이를 받아들여 인수합병 후에도 차별 없이 일할 수 있겠다는 믿음을 가질 때, 그리고 철학을 공유해 하나가 될 수 있겠다고 판단될 때 합병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는 아무리 기술이 있어도 하지 않는다.”

일자리 원한다면

-자수성가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이제는 시대가 바뀌어 그런 게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있다.

“앞 세대에는 기회가 많았지만, 지금 세대에는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는 잘못이다. 혼다기겐의 창업자 혼다 소이치로(本田宗一郞)는 원래 자전거 수리점을 했다. 전후 군에서 얻은 작은 발동기를 자전거에 붙여 오토바이 비슷한 것을 만들었다. 동네 발명가였던 셈이다. 그가 점점 회사를 키워 성장했다. 2륜차 부문에서 세계적인 회사가 됐을 때다. 그 아들이 열심히 일하지 않자 어느 날 크게 꾸짖었다. 그러자 아들이 ‘아버지 때는 잿더미에서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이 시대엔 안 된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무슨 소리냐, 어느 시대에도 된다’고 반박했다. 그의 말대로 어느 시대든 반드시 틈새가 있다. 작은 틈새를 열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회사가 커진다.”

-청년 실업률이 높아졌는데 이건 역시 시대변화의 결과 아닌가.

“그것도 대답은 마찬가지다. 내가 대학을 나올 때는 1955년이었는데, 당시 대학을 나와도 취직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일할 의욕만 있으면 반드시 할 일은 있게 마련이다. 직업을 유별나게 고르기 때문에 일자리가 없는 것이다. 나는 직업이 없었기 때문에 정말 별 볼일 없는 일을 하게 됐다. 그 일이 지금의 교세라를 만든 출발이 됐다. 일자리가 없다는 건 너무 사치스러운 얘기다.”

-명예회장은 중학교를 두 차례 낙방하고 대학을 한 차례 낙방했다. 실패를 통해 무엇을 배웠는가.

“실패하면 비참한 생각이 들고 낙담도 한다. 그렇지만 이것이 나의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거기서 다시 열심히 노력했다. 실패가 있었기에 순조롭게 엘리트 코스를 걷지 못하고 역경을 걸어야 했다. 그냥 주저앉았다면 불평불만이나 늘어놓는 불행한 인간이 됐을 것이다. ‘노력했는데도 안 된다’며 세상을 원망하기 쉽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내가 빠진 역경을 그저 담담히 빠져나왔다. 성실하게 일했을 뿐이다. 이것이 나를 성공으로 이끌었다. 실패에서 뭔가를 배운 게 아니라 그 결과를 받아들인 채 정면으로 도전해 나간 것이 비결이다.”

일본 시장 뚫으려면

-삼성전자가 2007년 일본의 소비자 시장에서 철수하고, 현대자동차도 내년부터 판매 중단을 결정했다. 어째서 일본에서는 실력이 있어도 브랜드가 없으면 평가를 받기 어려운가.

“한국도 그렇겠지만, 일본은 역사적으로 오래된 나라다. 교토는 1200년 전에 수도가 돼 당시의 도로와 거리가 그대로 남아있다. 전통을 중시하는 사회다. 이 때문에 당연히 집안 내력도 중시한다. 아무개는 300년 전 누구를 모시던 사무라이의 자손이다, 헤이안(平安)시대 어느 집안의 자손이다, 하는 것이 암묵적으로 통한다. 그런 통념 속에서 중소기업이 만든 물건, 게다가 지방대학을 나온 내가 만든 물건이 신용을 얻지 못한 것은 당연했다. 그래서 나는 실력주의 미국의 뛰어난 기업에서 먼저 인정을 받으면 일본 기업도 주저하지 않고, 역사가 없어도 써줄 것이라고 봤다. 그렇게 성공한 것이다.”

-한국 기업들이 일본의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뜻인가.

“삼성이나 현대나 세계에서는 잘하고 있지만, 일본에서는 왜 잘 안 되는지 나도 참 이상하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역시 일본의 대중에게 더 깊숙이 녹아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국민이 기꺼이 받아들이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근본부터 생각하면 더 잘 될 것이라고 본다. 한국 기업들에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일본 시장은 극단적으로 말하면 고객을 위한 시장이라는 점이다. 기업은 열심히 만들고 최선을 다한다. 자신의 이익 이전에 고객을 먼저 중시한다는 기분을 전달하지 않으면 좀처럼 고객이 따라와주지 않는다. 한국 기업의 경영자들이 일본에 와서 ‘우리는 이런 철학으로 경영하고 있다. 우리에게 기회를 주면 일본 시민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상품을 팔겠다’고 먼저 말하는 게 중요하다.”

이나모리는 누구

노력·능력 모자라도 마음먹기 달려
‘성공 방정식’ 이나모리의 경영 철학

일본 굴지의 대기업인 교세라와 KDDI의 창업자인 그의 공식 직함은 교세라 명예회장 겸 KDDI 최고고문이다. 일본 정·재계에서 그의 비중은 매우 크다. 일본 민주당 정권의 실세인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간사장은 그를 ‘존경하는 경제인’으로 꼽았다. 지난달 24일에는 민주당 정권의 ‘투 톱’인 오자와 간사장과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총리를 저녁 식사에 초청했다. 간 나오토 부총리, 이시고시 아즈마 참의원 의장 등도 함께했다. 그는 이날 개인 돈으로 밥을 샀다.

그의 경영철학은 ‘이나모리 가즈오의 성공 방정식’으로 공식화된다. ‘성공=인격·사고방식(-100~100)X노력(0~100)X능력(0~100)’이라는 것이다. 노력과 능력이 중요하지만 이 부분이 부족해도 어떻게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인생은 크게 달라진다는 의미다. 그는 “작은 기업이 이렇게 성장한 것은 성실과 열의를 갖고 묵묵히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어 가능했다”고 강조한다. 교세라가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보유한 것도 기술자들의 열정 덕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이런 방정식에 맞게 살아온 기술자·과학자·예술가들을 격려하기 위해 ‘일본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교토(京都)상’을 제정했다. 올해 25주년을 맞아 각국에서 81명의 수상자를 배출했다. 그가 83년 설립한 경영스쿨 ‘세이와주쿠(盛和塾)’엔 해마다 수천 명이 몰려든다. 민주당 정권 출범 이후엔 정부의 예산 낭비를 억제하고 규제개혁을 담당하는 행정쇄신회의 민간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부인은 씨 없는 수박으로 유명한 고(故) 우장춘 박사의 딸이다.

◆교세라=교토에서 세라믹을 만드는 회사라는 의미다. 다양한 원료를 고열로 구워내 제조하는 세라믹은 철에 이어 제2의 ‘산업의 쌀’로 불린다. 세라믹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을 보유한 교세라는 전기전자·자동차·의료용 부품은 물론 반도체, 태양광 발전패널, 휴대전화, 복사기, 산업용 공구, 유기재료 등 완제품도 생산한다. 지난해 매출액은 1조1285억 엔(약 15조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