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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방] 첫 시집 낸 이윤림 시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첫 시집 '생일' 을 낸 이윤림(42)씨는 서문에서 "유고시집이 아닌 시집을 한 권 내고자 한 나의 소망이 이뤄진 것인가" 라고 묻고 있다. 시인의 방은 서울대 부속병원 34병동이다.

이씨는 난소암 말기 환자로 병실에 누워 있다. 얼마전 암투성이 육신과 결별하는 수술을 받았다. 통증을 전달하는 신경을 제거해버렸다. 암세포가 퍼지면서 몸을 들볶고 있지만 더이상 고통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고통과 결별하면서 마음마저 정리한 듯 이씨의 표정은 밝았고, 목소리는 쾌활했다. 도톰했던 볼은 쏙 들어가고 파리했지만 웃음은 잃지 않았다. 독신인 딸의 병실을 지키는 칠순 노모의 얼굴만 슬프다.

이씨는 "열흘만에 미음을 먹어 힘이 난다" 며 일어나 앉는다. "시집이 좀 늦었죠. 진작 내

고싶었는데, 제가 너무 게을러서…. "

이씨는 여고시절 문학서클에서 열심히 시를 공부했고, 성심여대(현 가톨릭대)국문과에 다닐 때도 쉬지않고 시를 썼다.

그러나 졸업 후 교단에 서면서부터 수업과 잡무에 쫓기고, 한동안은 전교조활동에 참여해 여기저기 뛰어다니느라 시를 거의 쓰지 못했다. 이씨가 시를 다시 찾은 것은 1997년 봄이었다.

"30대를 마무리하면서 삶을 되돌아보게 됐지요. 다시 시를 써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그해 가을 배가 아프기 시작했어요. 늦었다 싶었지만 몇 년간 열심히 썼습니다."

병마와 함께 살며 써온 시들이기에 그 속에는 죽음과 삶에 대한 진솔한 성찰이 담겨있다.

"탄생의 상처가 없는 날개가/잊었던 듯 펼쳐지지 않을까/덫이었던 몸을 그대로 입은 채/승천할 수 있지 않을까/눈이 오면/하얀 환호처럼 눈이 오면/깃털처럼 가볍고 따뜻하리라/죽음마저도" ( '눈' 중)

하얀 환호를 받으면서 깃털처럼 하늘로 날아오르는 죽음은 아름다울 것이다. 그러나 툭툭 털고 떠나기엔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서 이씨는 서문에서 "삶의 또다른 이름-욕망. 욕망하는 인간-어리석고 가엾고 또한 사랑스럽지 않은가" 라고 적고 있다.

맞닥뜨린 죽음앞에서 외로움을 감추기는 힘들다. 시집을 빨리 내기위해 동분서주했던 친구 황인숙(시인)씨는 "고고하고도 연약한 외로움의 시" 라고 말했다.

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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