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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와 점심을] 방석호 정보통신정책연구원장 “IT도 기술 넘어 감성으로 승부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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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방석호 원장이 4일 서울 안국동 벽오동가에서 한정식 오찬을 하면서 실패를 성공으로 이끈 경영 경험을 얘기하고 있다. [KISDI 제공]


●어디서 : 서울 안국동 벽오동가
●무엇을 : 궁중신선로가 주메뉴인 한정식(3만8000원)

지난해 1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선 방송통신 부문 대표 주자로 최시중·김인규·방석호 세 명이 거론됐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최시중씨는 초대 방송통신위원장, 김인규씨는 KBS 사장, 방석호씨는 정보통신정책연구원장이 됐다. 최 위원장과 김 사장이 방송 부문 대표 인사라면, 방 원장은 통신을 기반으로 방송까지 넘나든 방통 융합 전문가다. 방 원장은 정부가 방송·통신의 해묵은 과제들을 풀어 갈 때 조언을 해 왔다. 요즘엔 국가 정보기술(IT) 산업을 놓고 “모바일·소프트웨어(SW) 후진국”이라며 뼈아픈 제언을 한다.

4일 낮 12시 서울 안국동의 벽오동가. 방석호(52) 원장은 “나는 행운아”라는 얘기부터 꺼냈다. 2002년 위암을 조기에 발견해 수술한 뒤 새 삶을 살게 된 것도 있지만, 그보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이어진 다채로운 이력 때문이다. 전공은 법학. 1977년 경기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법대에 들어갔다. 그는 “법대 전공보다 정치학에 관심이 많아 복수전공을 했다”고 말했다. 유신헌법 개정에 국내 법·제도의 낙후성이 부각되고 ‘서울의 봄’으로 캠퍼스도 문이 수시로 닫히던 시절이었다. 3, 4학년 연거푸 사법시험에 떨어지는 불운도 겪었다. 서울대 법대 대학원을 마치자 미국 듀크대로 유학 길을 떠났다. 행운은 그때 시작된다. 그는 “유학 생활이 내 인생에 큰 도움이 됐다. 선진국 법을 배운 게 첫 행운이다. 일본 법을 모방한 국내 법에 대한 문제점을 알게 됐다”고 회상했다.

듀크대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딴 그는 88년 귀국,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연구위원으로 들어갔다. 법대 교수 자리와 고민 끝에 내린 결정. 그게 두 번째 행운이었다. 미국과의 통신협상이 첫 과제였다. 워싱턴을 수시로 드나들며 노련한 미국 변호사들과 싸우고 통신 법에 대한 이론과 실기를 익혔다. 그는 “법도 초보였지만 통신은 아예 몰랐는데 IT 법 부문 전문가가 됐다”고 말했다. 91년부터 한림대·홍익대 교수 시절에도 디지털 법 전문가로 초고속인터넷 관련 법 제정에 참여했다. 세 번째 행운인 방송과의 인연도 95년 KT 무궁화호 발사로 위성방송법을 만드는 데 기여해서다. 2006년과 2008년 KBS 사외이사로 일했다. 그는 “국내 통신과 방송 관련 법은 내 손을 탔다”며 “디지털 시대에는 법·IT·방송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며 강조했다. ‘양수겸장(兩手兼將)’이 아니라 ‘삼수겸장(三手兼將)’이란다.

그럼에도 방 원장 꼬리표엔 ‘IT전문가’ 브랜드가 가장 두드러진다. 그는 “56년 TV(흑백) 등장과 80년 컬러TV 출현에 이어 2012년 디지털TV 서비스는 국가 산업에 지각 변동을 일으킨다”고 강조했다. 이미 일본보다 1년 늦는데 아직도 일부에서 뒷다리를 잡는다는 것이다. IT 산업의 체질 개선도 요구했다. 한국은 초고속 유선 인터넷 등 인프라나 제조업에 집착해 10년 가까이 ‘초고속인터넷 강국’ 영예에 안주했다. IT 산업이 빨리 선진국형인 SW 중심으로 리모델링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선진국 IT 산업 구조는 서비스 70%에 제조 30% 비중이다. 우리는 제조가 70%다. 그는 또 IT 산업이 기술 중심에서 벗어나 이야기와 감성으로 승부해야 한다고 했다. 애플 ‘아이폰’을 예로 들었다. 세계 1위 노키아가 올 3분기 1억 대를 팔아 11억 달러의 수익을 냈고, 애플은 아이폰 740만 대 판매로 16억 달러를 남겼다. 감성 디자인과 편한 SW가 상상을 초월한 수익을 안긴 것이다. 그는 관련 조직과 제도 개혁도 지적했다. ‘칸막이’ 규제 정책의 과감한 손질을 들었다. 금융·의료·교육을 경쟁력이 있지만 규제로 묶인 대표적 SW 부문으로 꼽았다. 그는 “고령화사회를 맞아 미국·일본은 원격 의료를 육성하지만 우리는 금지한다”고 말했다.

이원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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