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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히드마틴 ‘F-35’에 보잉 ‘F-15SE’ 도전장 내밀다

중앙일보

입력

월간중앙글로벌 방위산업의 1, 2인자인 록히드마틴과 보잉이 한반도에서 한판 결전을 앞두고 있다. 그 장은 전 국민의 이목을 집중시킬 ‘차세대 전투기’ 도입사업. 그들은 이미 ‘F-35’와 ‘F-15SE’라는 최신예 카드를 빼들었다. 한국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두 업체 간 머리싸움과 속내를 집중해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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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잉의 F-15SE 전투기.

건군 이후 최대 전력증강사업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이르면 내년부터 공군의 ‘차세대 전투기’ 도입사업(F-X 3차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동을 건다. 방위사업청의 한 관계자는 “공군이 작성한 요구성능조건(ROC)이 국방부를 통해 방위사업청으로 넘어왔다”면서 “사업타당성 검토를 위해 선행연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방위사업청 사업타당성 검토 위해 선행연구 돌입… 한국형전투기개발사업(KF-X)이 큰 변수 #기획특집 - 불 붙은 공군 ‘차세대 전투기’大戰

그 규모와 관련해서는 “아직 정해진 바 없음”이라는 것이 방위사업청의 공식입장이다. 하지만 총 60대를 계약할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그 배경은 참여정부 시절이던 2005년 발표된 ‘국방개혁 2020’에 있다. 이에 따르면 우리 군은 세 차례에 걸쳐 총 120대의 차기 전투기를 도입하기로 돼 있다.

이미 완료됐거나 진행 중인 ‘F-X 1·2차사업’은 한마디로 F-15K 도입사업이다. 해당 대수는 60대. 1차 사업 대상인 40대는 이미 공군에 인도됐고, 2차 사업 도입분(항전장비 등이 강화된 F-15K)은 2012년까지 들여온다. 때문에 원 계획대로라면 F-X 3차 사업에 해당하는 전투기는 60대인 셈이다.

한 군 관계자는 “공군의 최신 전투기인 F-15K가 1기당 1000억원 정도이니 단순히 계산해도 전체 사업비는 최소 6조원 이상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항공방위산업체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만한 내용인 셈이다. 그러나 입찰 조건이 매우 까다로울 것으로 예상돼 대부분의 전투기 제조사는 군침만 흘리다 돌아서야 할 처지다.

결국 한국시장을 두드릴 것으로 점쳐지는 업체는 딱 두 회사뿐. 전 세계 방산시장을 휘어잡고 있는 록히드마틴과 보잉이다. 각각 최신예 전투기인 F-35 라이트닝(Lightning)Ⅱ와 F-15 사일런트이글(Silent Eagle·SE)을 들고 세일즈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공군이 원하는 것은 ‘첨단 5세대 전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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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럴까? 그 이유는 다소 복잡하다. 2007년에 나온 공군의 ‘차기 전투기사업 추진방안’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이 자료는 F-X 3차 사업과 관련해 “2014~19년 도입, 주변국 보유가 예상되는 첨단 5세대 전투기 확보”로 그 시기와 대상을 명시했다.
그런데 현존하는 5세대 전투기는 단 2기종뿐.

이미 미 공군이 실전배치한 F-22 랩터(Raptor), 그리고 시제기를 완성해 성능시험 중인 F-35 라이트닝Ⅱ다. 공교롭게도 록히드마틴이 이 두 기종의 기체를 모두 만든다. 하지만 록히드마틴이 해외에 판매할 수 있는 기종은 F-35뿐이다. 익히 알려졌듯 미 의회가 안보상의 이유 등을 들어 F-22의 수출을 승인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즉, F-22는 사고 싶어도 살 수 없고, 팔고 싶어도 팔 수 없는 전투기인 것이다. 그래서 록히드마틴은 국제 차세대 전투기시장에서 F-35를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한국의 F-X 3차 사업 역시 마찬가지다. 실제로 록히드마틴은 입찰에 참여할 기종이 F-35라는 점을 줄곧 강조해왔다.

F-35는 매우 유리한 고지를 선점해 왔다. 우리 군이 기존에 밝힌 큰 틀에 맞출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종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군사전문가도 F-35가 한국의 차세대 전투기로 낙점될 가능성이 매우 높을 것으로 내다봤다. 우선 미국 이외에 5세대 전투기를 개발 중인 나라 자체가 극히 드물다.

러시아와 중국 등이 있기는 하나, 해당 기종들로 입찰에 응하거나 낙찰될 가능성은 거의 ‘제로(0)’에 가깝다. 자국 사정은 물론 한국군의 특성에도 맞지 않기 때문이다. 항공산업이 발달한 유럽 등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5세대 전투기 개발에 전격적으로 나설 업체가 나온다고 한들, 개발소요기간 등으로 인해 한국시장에서는 승부를 걸 수 없을 듯하다.

2014년부터 전투기를 납품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전제 아래 말이다. 하지만 올해 들어 큰 변수가 발생했다. F-15K 생산업체인 보잉이 강력한 도전장을 내밀었기 때문이다. 보잉은 일종의 ‘속성과정’을 밟아 5세대급 전투기를 개발할 것이라고 선전포고했다. 자사의 스테디셀러이자 간판 전투기인 F-15의 기체를 기반으로 스텔스(stealth) 기능을 갖춘 전투기를 2~3년 내에 선보이겠다는 것. 그 주인공이 바로 F-15SE다.

5세대 전투기를 특징짓는 가장 큰 요소는 다름 아닌 스텔스 기능이다. 5세대 전투기는 이러한 성능을 확보하기 위해 기체에 특수한 도료(스텔스 도료)를 입힌다. 또 최대한 ‘피탐면적(RCS)’을 낮추기 위해 무기 등을 대부분 기체 안에 감춘다. 즉, 미사일을 내장 탑재한다는 말이다.

그래야 적의 레이더나 탐지장치 등에 발각되더라도 비행기가 아니라 한 마리 새처럼 보일 수 있어서다. 이 외에도 5세대 전투기는 능동전자주사식 레이더(AESA)와 적의 전자 시스템을 교란시키는 전자전장비 등 더욱 향상된 디지털 항전장비를 기본으로 갖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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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히드마틴, “2014년 F-35A 납품 가능”

보잉이 이러한 개념에 충실한 F-15SE를 내놓겠다고 포효하자 업계는 깜짝 놀랐다. 특히 개발 소요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보잉이 선택한 방식이 큰 주목을 받았다. 설계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새 기체가 아닌, 기존 기체를 이용해 변환을 시도하는 방식 말이다.

한 군 관계자는 “스텔스 전투기로 설계되지 않은 기체가 변신에 성공한 사례가 없어 보잉의 주장을 계속 지켜볼 뿐”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한 보잉의 입장은 단호하다.

그레고리 렉스턴 보잉 통합방위시스템(IDS) 부사장은 “2008년 9월 시작한 F-15SE의 ‘그라운드 데모(Ground Demo·기본설계를 거쳐 지상에서 형상을 시현하는 과정)’가 올 3월 완료됐다”면서 “이제 하늘에 띄워 시험하는 등 나머지 과정만 남은 셈”이라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무혈입성’을 노리던 록히드마틴의 입장에서 볼 때 F-15SE의 등장은 ‘대략 난감’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현재 전 세계 차세대 전투기시장에서 F-35가 ‘최고의 강자’로 군림하는 것은 분명 사실이다. 장점이 많아서다. 일례로 F-35는 미국이 수출을 우려할 정도로 성능이 탁월한 F-22보다 늦게 개발을 시작한 덕분에 항전장비가 더욱 세련됐다.

그래서 미군은 F-22의 항전장비를 F-35 수준으로 업그레이드하는 사업을 따로 진행하고 있기도 하다. 록히드마틴이 내세우는 F-35의 최대 세일즈 포인트는 ‘세계 유일의 5세대 다목적 전투기’라는 점이다. F-35 개발사업은 통칭 ‘통합전투기(JSF)’사업으로 불린다. 처음부터 여러 군이 사용할 수 있도록 다목적 전투기를 만들겠다는 각오로 개발에 돌입한 것이다.

F-35는 세 가지 버전으로 개발 중이다. 미군을 기준으로 각각 공군용인 통상활주로이착륙형(CTOL·F-35A), 해병대용인 단거리수직이착륙형(STOVL·F-35B), 해군용인 항공모함형(CV·F-35C) 등이다. 이 중 가장 먼저 납품되는 것은 F-35B다. 미 해병대에 인도하는 시점은 2012년, 이어 2013년부터 미 공군, 2015년부터 미 해군에 인도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뿐만 아니다. 현재 시험비행이 한창인 F-35의 시제기를 보면 기체 측면에 9개국(미국·영국·이탈리아·네덜란드·터키·호주·노르웨이·덴마크·캐나다)의 국기가 나란히 장식돼 있다. 미국 이외의 나라들은 F-35 개발에 참여한 공동 투자국. 당연히 이들 대부분은 이미 F-35 구매계약을 했거나 의회 승인을 받은 상태다.

무려 2443대(공군·해군·해병대용 합산)를 발주한 미국을 위시해 영국 138대, 이탈리아 131대, 그리고 터키와 호주가 100대씩 구매할 것으로 보인다. 또 차세대 전투기 도입 의사가 있는 이스라엘·싱가포르·그리스 등에서도 F-35는 ‘가장 관심 있는 기종’으로 다뤄지고 있다.

문제는 이 엄청난 수요가 F-X 3차 사업의 로드맵상 단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폭발적 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한국군에 제대로 납품할 수 있느냐는 것. 또 2014년부터 공군용인 F-35A의 완전 개발 모델을 들여올 수 있느냐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록히드마틴의 스티브 오브라이언 F-35 담당 부사장은 “걱정 말라”고 단언했다. 먼저 생산능력의 경우, 생산공정에 큰 변화를 줘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생산속도가 빨라졌다고 한다.

보잉의 F-15SE는 F-15K로 변신 가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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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텍사스주 포트워스에 자리한 록히드마틴의 F-35 생산공장에서 직원들이 F-35 동체를 조립하고 있다.
“2차대전 이후 최초로 컨베이어벨트를 사용하는 등 완전히 새로운 시스템으로 조립한다. 또 많은 공정을 자동화했다. 과거 4세대 전투기의 경우 연간 20~40대 생산했다면 F-35는 연간 240대를 생산할 수 있다. 근무일로만 따지면 거의 하루에 한 대가 나오는 꼴이다. 한국이 F-35를 선택한다면 2014년부터 확실히 납품할 수 있다.”

성능이 완전한 기종과 관련한 질문에는 “2014년이면 가장 최신형인 ‘F-35A 블록3형’의 모든 시험이 끝난다”면서 “한국은 이 최신형 전투기를 인도받을 수 있다”고 답변했다.

그렇다면 F-15SE의 강점은 무엇일까? F-15SE의 경우 아직 형상과 일부 예상 데이터만 나온 상황이다. 때문에 기존에 생산된 F-15 계열 전투기, 가령 F-15K의 성능을 참고하면서 비교하면 이해하기 수월하다. 가장 큰 특장은 막강한 화력이다. F-15SE는 기체의 보조연료통(CFTs)이 있던 자리에 연료가 아닌 무장을 탑재한다.

정밀유도폭탄인 1000파운드(약 453㎏)급 ‘제이담(JDAM)’ 2발과 중거리 공대공미사일인 ‘암람(AMRAAM)’ 2발을 함께 장착할 수 있다. 문제는 외장무장량이다. 무장을 기체 외부에 장착하면 RCS 수치가 올라가 적의 레이더에 걸릴 확률이 그만큼 높아진다. 한마디로 스텔스 기능은 사라진다.

이 5세대 전투기의 핵심 기능을 포기한다는 가정 아래 전투·전폭 기능만 놓고 단순비교한다면 F-15SE와 F-35의 화력 상황은 달라진다. 외장무장량을 합친 F-15SE의 최대무장량은 2만9500파운드(약1만3381㎏)다. 반면 F-35의 최대무장량은 1만8000파운드(약 8165㎏, 내장무장량은 5200파운드)다.

즉 F-15SE가 1.6배 정도 많은 셈이다. 이와 관련해 보잉의 렉스턴 부사장은 한반도 전장 환경을 고려한 듯 다음과 같은 점을 강조했다.“F-15SE는 개전(開戰) 첫날부터 며칠간 무장을 내장하고 스텔스 전투기로서 역할을 맡게 된다. 아무도 모르게 적진을 기습해 핵심 시설 등을 타격한 뒤 돌아오는 것이다. (이후 전면전이 벌어지면) 곧바로 몇 시간 내에 F-15K로 변신할 수 있다. 그만큼 무장을 가득 실을 수 있다는 뜻이다. 영화 <트랜스포머>를 떠올리면 금방 이해될 것이다. 한마디로 F-15SE는 국제 전투기시장에서 게임을 변화시킬 수 있는 중대한 기종인 셈이다.”

쌍발엔진도 F-15SE의 장점 중 하나로 거론된다. 자동차처럼 비행기 역시 엔진의 힘, 즉 추력(推力)이 그 기종의 성능을 크게 좌우한다. 일반적으로 단발엔진에 비해 쌍발엔진의 추력이 뛰어난 편이다. 그래서 이 엔진 문제를 두고 승용차에 빗대 ‘그랜저급’이니 ‘아반테급’이니 하는 말이 곧잘 흘러나온다.

F-15K(F-X 2차 사업형)의 경우 프랫&휘트니가 제작한 F100-PW-229 엔진 2기를 장착한다. 엔진이 하나뿐인 KF-16 역시 같은 엔진을 쓴다는 점을 생각할 때 F-15SE의 추력이 어느 정도일지 대략 가늠할 수 있다. 또 한 가지 쌍발엔진이 빛을 발하는 장면이 있다. 비행기의 경우 만에 하나 발생할 수 있는 ‘엔진 정지’ 같은 사고에 대비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두 엔진 모두 동시에 고장나지 않는 한 생존성에서 쌍발엔진은 단발엔진을 웃돈다. 때문에 전투기 조종사들이 단발엔진보다 쌍발엔진 전투기를 선호하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F-22나 F-15SE와 달리 F-35는 단발엔진 전투기다. 하지만 록히드마틴은 “기존 전투기들이 사용하던 엔진과 비교해 월등한 성능을 발휘한다”고 주장한다.

한마디로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것. 추력만 봐도 미 공군의 신형 F-15E가 사용하는 엔진 2기에 비해서는 조금 떨어지지만, 마찬가지로 쌍발엔진 전투기인 EADS의 유로파이터와는 유사하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남는 문제가 있다. 바로 생존성이다. 이와 관련해 록히드마틴의 오브라이언 부사장은 “F-35는 기존 전투기들과 달리 연료공급체계가 이중화돼 있다”면서 “때문에 단발엔진이지만 마치 2기의 엔진 역할을 해내 신뢰성을 확보했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전투기 성격 달라 단순비교 불가능

F-15SE가 F-35와 또 다른 부분은 조종석이 복좌형이라는 점이다. 2명의 조종사가 타 일종의 ‘역할분담’을 한다. 전방석에 탄 조종사가 주로 조종을 담당한다면, 후방석에 탄 조종사는 주로 무장 운용을 맡는다.

군사전문가들은 조종사가 한 가지 임무에 집중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엔진 사례처럼 조종사 중 한 명에게 의식상실 등 불의의 사고 발생 시 즉각 대응이 가능하다는 점 등을 복좌형의 장점으로 꼽는다. 그러나 단점도 지적된다. 조종석 하나를 더 놓는 만큼 항전장비를 더 많이 갖출 수 없고, 운용비용 측면에서도 불리하단다.

때문일까? F-22와 F-35는 공히 단좌형이다. 실제로 조종사 1명이 2명 몫의 임무를 원활히 수행할 수 있도록 각종 디지털장비를 대거 갖췄다. 한마디로 컴퓨터의 성능이 기존 전투기에 비해 크게 향상됐다는 의미다. F-35는 기체 전방 하단에 광학추적장비(EOTS)를 장착하고 있다.

이 장비가 포착한 화면은 조종사 헬멧에 부착된 시현기(HMD)와 연동한다. 즉, 조종사의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 부분, 가령 기체 바로 밑이나 후방도 훤히 들여다 볼 수 있게 해준다. 그만큼 전투력이 배가됨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이 외에도 F-35와 F-15SE의 성능은 단순비교가 불가능한 대목이 여럿 있다.

게다가 두 전투기 모두 아직 실전배치된 사례가 없어 정확한 데이터를 확보하기가 힘들다. 때문에 현재로서는 더욱 구체적 결과가 나올 때까지 예의주시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F-X 3차 사업과 관련해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역시 도입비용이다. 앞에서 언급했듯 이번 사업은 수조원대다.

그리고 역대 무기도입사업 중 최고가를 경신할 가능성이 매우 짙다. 때문에 우리 정부와 입찰업체들 간 줄다리기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할 전망이다. 도입비용과 관련해 고려해야 할 사항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항공기는 ‘패키지’로 판다는 점이다. 즉, 기체 하나만 파는 사업이 아니라는 말이다.

기종 도입에 따른 훈련 시스템 등 부가 서비스를 살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 규모는 실로 엄청나다. 일단 최종 기종으로 낙점받으면 앞으로 수십 년간 그에 따르는 후속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판매할 수 있다. 황금알을 낳는 전투기인 셈이다. 이는 기종 선정에서 대당 도입비가 사실상 무의미한 숫자일 수 있음을 뜻하기도 한다.

업체들의 반응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대당 단가에 대한 질문을 할라치면 적당히 얼버무리거나 모호한 수치를 댈 뿐이다. 실제로 그들이 방위사업청에 접수할 입찰제안서에는 패키지 형식의 가격표가 붙는다. 또 하나, 그들이 입찰제안서에 써내야 할 것이 있다. 금액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무언가’다.

다름 아닌 기종 선정에 따른 반대급부, 즉 ‘오프셋(offset) 프로그램’이다. 한국 내 부품 및 동체조립, 그리고 기술이전·면허생산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와 관련해 한 군 관계자는 “항공우주산업을 신성장동력 중 하나로 삼고 싶어하는 현 정부의 기조로 볼 때, 협상과정에서 업체들에 요구할 내용이 그 어느 때보다 많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래서 최근 그 가닥이 잡혀가는 한국형 전투기 개발사업(보라매사업·KF-X 사업) 역시 F-X 3차 사업의 중요 변수 중 하나로 지적되고는 한다. KF-X 사업은 국민의정부 시절이던 2001년 국방과학연구소(ADD) 중심의 연구개발 과제로 처음 제기됐다.

KF-X 추진 분위기에 업체들도 큰 관심

당시의 개발 목표는 F-35~F-22급 최첨단 5세대 전투기였다. 하지만 이런 내용은 2007년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실시한 사업타당성 조사에서 ‘타당성 없음’이라는 결론이 나면서 중단돼 버렸다. 그러다 새 불씨를 지핀 것이 10월23일 나온 건국대 무기체계개념계발응용연구소 등의 사업타당성 재조사보고서다.

엄밀히 따져 재조사는 아니었다. 조사 대상이 KDI 때와 달랐기 때문이다. 이번 조사에서 목표로 삼은 것은 4.5세대급으로, 여기에 개발 가능한 수준의 스텔스 기능을 적용한 전투기였다. 그 결과 연구소로부터 ‘타당성 있음’이라는 회신이 돌아왔다. 이 같은 결과는 12월 초 이명박 대통령이 주재할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에 보고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리에서 사업 추진 여부가 최종 결정될 가능성도 높다고 한다. 이에 따라 이르면 내년부터 KF-X 사업과 F-X 3차 사업이 동시에 진행될지도 모를 일이 돼 버렸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정부가 F-X 3차 사업 경쟁입찰 업체들에 KF-X 사업과 연계한 기술이전 등을 강력히 요구할 것”이라는 해석을 내린다.

록히드마틴과 보잉은 이러한 분위기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우선 록히드마틴의 경우 한국항공우주산업(KAI)과 T-50 고등훈련기 관련 제휴를 맺고 있다. T-50은 1991년 우리 군이 차기 전투기로 제너럴다이내믹스(현 록히드마틴)의 F-16으로 선정할 당시 걸린 기술이전 조건 등을 바탕으로 개발했다.

이러한 경력으로 현재 T-50의 글로벌 마케팅을 맡고 있는 록히드마틴은 그 연장선상에서 KF-X 사업을 바라보는 눈치다. 요지는 한국공군에 납품 예정인 FA-50(T-50 개량형) 경공격기의 후속모델로 개발하자는 것. 소위 F-50으로 불리는 이 기종이 KF-X 사업의 대상이 되기를 원한다는 이야기다.

록히드마틴 T-50 사업개발부문의 한 관계자 역시 이 점을 강조했다. 그는 “한국이 자체개발해 수익을 낳을 수 있는 최고의 대안은 F-50뿐”이라고 주장했다. 보잉 역시 KF-X 사업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렉스턴 부사장은 “한국정부가 원하는 조건이 더 구체화되면 이야기를 나눌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현재 보잉은 F-15K 선정 당시의 계약 조건에 따라 오프셋 프로그램으로 F-15 및 아파치헬기 동체 일부를 KAI에 위탁해 조립하고 있다. 매출 기준 전 세계 방산업체 중 1, 2위인 록히드마틴과 보잉. 그들은 과거 전투기 도입사업과 관련해 한반도에서 크게 맞붙은 적이 있다. 그들이 참여한 F/A-18(보잉이 합병한 맥도널 더글러스의 입찰 기종)과 F-16 간 기종경쟁은 온 국민의 시선을 사로잡을 정도로 정말 뜨거웠다.

심지어 동네 꼬마아이들조차 ‘어떤 전투기가 더 좋다’며 승강이를 벌였다. 당시에는 또 다른 일도 벌어졌다. 대형 로비사건이 터져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전투기와 같은 대형 무기도입사업은 그만큼 규모도 크고 말도 많다. 지금의 방위사업청이 만들어진 목적 역시 이런 잡음을 없애기 위해서다.

하지만 요즘에도 각종 무기 도입과 관련한 잡음은 끊이지 않고 있다. 고위 예비역 등 인적 네트워크를 이용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예전처럼 대형 로비전은 많이 줄었지만, 이러한 연결고리를 끊지 않는 이상 국민의 세금은 또다시 다른 주머니로 들어갈지 모를 일이다. 국익을 위해 더욱 공정한 잣대로 F-X 3차 사업이 진행되기를 바라는 눈길이 많은 요즘이다.

“스텔스 전투기는 백지상태에서 설계해야만 진짜 성능 발휘”

인터뷰 스티브 오브라이언 록히드마틴 부사장

스티브 오브라이언은 록히드마틴의 F-35 사업개발·고객관계부문 부사장이다. 그는 F-35와 관련해 미 공군·해군·해병대, 그리고 미 국방부(펜타곤) 및 전 세계 협력국가와 사업을 총괄한다.

미 해군 전투기 조종사 출신인 그는 1999년 퇴역 후 록히드마틴의 통합전투기(JSF)사업을 맡았다. 2003년에는 예비군 신분으로 이라크전쟁에 파병돼 공습작전 등을 직접 지휘하기도 했다고 한다. 인터뷰는 10월28일 오후 2시 서울 신라호텔에서 있었다.

-F-X 3차 사업에서 보잉의 F-15SE가 경쟁 대상이 될 듯하다. F-15SE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기존의 기체로 스텔스 전투기를 만드는 것은 실패할 확률이 무척 높다. 우리도 F-16·F-111 등을 가지고 스텔스 전투기를 만드는 시험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모두 실패했다. 스텔스 전투기는 백지상태에서 설계해야 진짜 성능을 발휘할 수 있다.”

-F-35는 단발엔진 전투기다. 전투기 조종사들은 생존성 때문에 단발엔진보다 쌍발엔진을 더 좋아한다.

“쌍발엔진이라고 해서 생존성이 눈에 띄게 높은 것은 아니다. 미국 정부 등이 조사한 결과 쌍발엔진이 단발엔진보다 크게 더 안전한 것은 없다는 결론이 나온 바 있다. 단발엔진의 장점은 전체 운영비용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점이다. F-35는 엔진 하나만으로도 쌍발엔진만큼의 추력을 낸다. 신뢰성 역시 높다. 연료를 공급하는 체계가 둘로 나뉘어 있어 쌍발엔진의 엔진 1기가 맡는 역할을 똑같이 수행한다.”

-조종석을 단좌로 한 이유는?

“복좌 조종석을 두면 전투기가 더 무거워진다. 그러면 연료를 더 많이 못 싣게 되고, 공기저항도 커진다. 물론 조종사가 2명일 경우 장점도 있겠으나, 센서가 전부 통합되는 5세대 전투기의 특성상 그런 차이는 확연히 줄어든다고 봐야 한다. 컴퓨터의 성능이 매우 좋아 기계 간(Machine to Machine) 대화가 일어나게 한다. 가령 한 기계가 목표물을 잡으면 다른 기계가 다음 명령을 내리는 식이다. 센서의 통합은 결국 한 사람의 조종사 역할을 대신하는 셈이다.”

-만일 F-X 3차 사업에서 F-35가 최종 선정된다면 한국 측에 어떠한 옵션을 제공할 수 있나?

“구체적인 것은 서로 좀더 조정해봐야 한다. 우선 말할 수 있는 것은 F-35 생산량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추가 물량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기존 협력업체 말고도 추가로 협력업체가 필요하다. 한국 업체들이 그러한 협력업체가 될 수 있다고 본다. 한국이 F-35를 선정한다면 공개경쟁입찰을 통해 한국업체들에 그런 길이 열릴 수 있다. 참고할 만한 사례가 하나 있다. 이탈리아에는 최종조립라인이 있다.”

역대 주요 전투기사업

■ 한국형전투기사업(KFP)=1983년 처음 제기돼 1985년부터 시작한 차기전투기사업으로 구매 및 합작생산을 목표로 했다. 군 전력증강사업인 ‘율곡사업’의 핵심 사업이었다. 1989년 맥도널 더글러스(현 보잉)의 F/A-18로 기종을 선정했다가 계약 전 기종을 변경했다. 최종 선정된 기종은 제너럴 다이내믹스(현 록히드마틴)의 F-16으로 1992년 도입을 시작했다. 국내 면허생산한 F-16의 제식명은 KF-16이다. KFP사업 이전에 시작한 피스브리지(Peace Bridge)사업 도입분을 포함해 모두 200여 대를 도입했다.

■ 차기전투기(F-X) 1·2차 사업=1993년 도입계획을 발표한 사업으로, 2002년 보잉의 F-15K로 기종이 최종 결정됐다. 당시 경쟁 기종은 프랑스 닷소의 라팔이었다. 사업규모는 최초 120대에서 예산상의 이유로 최종 40대로 바뀌었다. 2008년까지 계약한 도입분이 모두 인도됐다. 2차 사업은 F-15K(항전장비 강화 기종)를 21대 추가 확보하는 사업으로 2012년까지 도입이 진행된다.

■ 차기전투기(F-X) 3차 사업=현재 선행연구가 진행 중인 ‘차세대 전투기’ 도입사업으로 총 60대를 도입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도입시기는 원 계획상 2014~19년이며, 도입 대상 기종은 ‘5세대급 전투기’가 유력하다.

■ 한국형전투기개발사업(보라매사업·KF-X사업)=2001년 국방과학연구소(ADD) 중심의 연구개발과제로 제기된 사업이다. 원 개발 목표는 5세대급 최첨단 전투기였다. 하지만 2007년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사업타당성 조사 결과 타당성이 없는 것으로 결론나 잠정 중단됐다. 4~10월까지 스텔스 기능이 가미된 4.5세대급 전투기를 대상으로 다시 건국대 무기체계계념개발응용연구소에서 사업타당성을 조사해 타당성이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F-15SE는 국제 전투기시장의 ‘룰’ 바꿀 중대한 기종”

인터뷰 그레고리 렉스턴 보잉 IDS 부사장

보잉은 익히 알려져 있듯 민항기와 군용기를 모두 만드는 회사다. 그 중 전투기 등 군용기 제작을 담당하는 곳이 보잉통합방위시스템(IDS)이다. 본사는 미국 세인트루이스에 있으며, 전 세계 사업규모는 무려 약 320억 달러(약 37조원)에 달한다.

그레고리 렉스턴 보잉 IDS 부사장은 한국에서 오래 근무했다고 한다. 때문인지, 간단한 한국어 인사말을 무척 정감 있게 건넸다. 그와 인터뷰는 10월21일 국내 최대 방산전시회인 ‘2009 서울 아덱스(ADEX)’가 열린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서 있었다.

-기존의 F-15K와 비교해 꼬리날개 형상이 달라졌다. 어떤 이유에서 그렇게 디자인됐나?

“항공역학상 꼬리날개를 비스듬히 달면 양력을 더 받게 된다. 무게를 더는 효과를 얻는 셈이다. 그러면 항속거리를 늘리는 데도 효과가 있다.”

-F-15SE는 5세대 전투기인가?

“5세대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스텔스 기능이다. 그리고 전자전장비와 향상된 레이더 시스템 등을 갖춘 전투기인데, 내가 거꾸로 질문하고 싶다. 5세대 전투기의 기준이라고 생각하는 부분과 당신의 생각을 한번 맞춰 보면 답이 나올 것이다.”

-F-15SE는 언제쯤 생산이 가능한가?

“어느 나라가 F-15SE에 관심을 보이는지, 또 구매의사가 있는지 등에 따라 달라진다.”

-F-35는 이미 시제기가 나온 상황이다. F-15SE에 비해 상당히 앞서 있다. 향후 한국의 F-X 3차 사업 입찰이 힘든 것 아닌가?

“한국공군이 원하는 요구성능이나 작전능력 등을 맞추는 데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그리고 충분히 맞출 수 있다고 자신한다.”

-F-15SE의 경쟁력에 관해 묻겠다. 미 국방부가 F-15SE에 관심을 가지고 있나?

“현재까지는 F-15SE의 경우 국제시장을 위해 제작한 기체다. 때문에 미국정부가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지는 우리로서는 알 수 없다.”

-KF-X 사업에 대한 관심은?

“당연한 이야기다. 현재 한국정부가 어떤 것을 원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그런 것이 좀 더 구체적으로 밝혀지면 한국정부와 이야기를 나눌 의사가 있다.”

글 김상진 월간중앙 기자 [kine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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