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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엄마도 교황도, 하나님의 소명에 따른 삶은 동등합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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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호 31면

엄현섭 총회장은 오로지 교회를 생각하는 지도자다. 인터뷰가 시작되자 마자 “개인은 교회의 한 부분일 뿐이니 질문은 루터 교회에 대한 것으로 집중해 달라”고 당부했다. 최정동 기자

괴테·칸트·바흐·헨델·노벨·슈바이처·안데르센…. 우리는 곳곳에서 이들이 남긴 거대한 발자취를 본다. 이들은 모두 루터교 신자였다.

영혼의 리더<33> 기독교 한국 루터회 총회장 엄현섭 목사

마르틴 루터(1483~1546)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대사부(大赦符·indulgence) 판매에 이의를 제기했다. 그가 바란 것은 새로운 교회의 창설이 아니라 교회의 개혁이었다. 그러나 그가 1517년부터 ‘오직 믿음, 오직 은총, 오직 성서(Sola fide, sola gratia, sola scriptura)’를 기치로 전개한 종교개혁의 결과로 개신교가 탄생했다. 개신교의 ‘맏이 교회’인 루터교는 글로벌 차원에서 막강한 위상을 자랑한다. 개신 교회 중 신도 수(7200만 명)도 가장 많다.

선교 51주년에 신도는 6000명
우리나라 루터교는 지난해 선교 50주년을 맞았다. 세례교인 수는 6000명이다. 교회는 46곳. 우리나라를 처음 방문한 개신교 선교사는 루터교 목사인 카를 귀츨라프(1803~1851)다. 그는 1832년 서해안에 도착해 감자·포도를 전했고 주기도문을 최초로 우리말로 번역했다.

그 후 오랜 공백 기간이 있었다. 1958년 1월 미국 루터교 미주리 의회(LCMS)에서 보낸 선교사 3명이 한국에서 선교 활동을 시작했다. 루터교는 한국 교회의 밀알이 됐다. 1959년 루터란아워(Lutheran Hour)는 CBS를 통해 신앙 드라마 ‘이것이 인생이다’로 라디오 선교를 개시했다. 1974년 시작한 베델성서 강좌는 현재까지 목회자 1만6000명과 일반 신자 46만 명을 훈련했다. 한국 루터 교회는 헌혈 운동, 장기 기증 운동에서도 선구자였다.

한국 루터 교회는 총회장(president)을 정점으로 하는 민주적인 의회제를 채택하고 있다. 엄현섭(63) 목사는 2005년부터 제5대 총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한국 루터회는 내년 총회 회관의 완공을 앞두고 있으며 선교 100주년이 되는 2058년까지 통일시대에 대비해 교회 500개를 건립하는 비전을 갖고 있다. 엄 목사의 리더십이 큰 몫을 하고 있다. 그는 한국 베델성서 연구원 원장, 도서출판 컨콜디아사 발행인도 겸하고 있다. 루터대학교의 구약학 교수인 엄 목사는 연세대 신과대학, 루터교 신학원, 미 컨코디아 신학대학원 신학박사과정에서 공부했다. 그는 『민수기 주석』 『한 눈에 보이는 구약성경의 길잡이』 등 수십 편의 저서·논문을 발표했다. 서울 후암동에 있는 루터교 센터에서 엄현섭 총회장을 17일에 만나 루터교 신앙에 대해 들었다. 다음은 인터뷰 요지.

한국전쟁 때 루터교인 미군 희생자 많아
-한국에서 루터 교회는 어떻게 시작했습니까.
“1832년 우리나라에 온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인 루터교 목사 카를 귀츨라프가 한 달 정도 머물다가 돌아갔습니다. 1947년에 지원용이라는 학생이 미국으로 유학 가 루터교를 알게 되고 세인트루이스에 있는 컨코디아신학교에 입학합니다. 수학 중 미국 루터교에 선교를 요청합니다. 58년 1월에 미국 선교사 셋이 들어옵니다. 목사가 된 지원용 박사는 같은 해 9월에 들어옵니다. 본격적인 선교가 장로교·감리교보다 74년이 늦은 것입니다.”

-천주교를 믿는 사람들이 서학 문헌을 읽는 가운데 생겨나고 이들이 신부의 파견을 요청했습니다. 개신교 성경도 만주에 이주한 분들이 번역했습니다. 이슬람도 만주에 간 분들이 처음 믿기 시작했습니다. 이처럼 신앙을 능동적으로 받아들인 것은 우연입니까.
“우연이 아닙니다. 해외에 나간 사람들은 선각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깬 사상을 가지고 우리의 처지를 극복하려고 했다고 봐야 합니다.”

-한국전쟁 당시 70명의 루터교 목사들이 군목으로 활동했다고 하는데 이분들이 선교에 영향을 주었습니까.
“간접적인 영향을 주었습니다. 미국 루터교 목사가 많이 왔는데 그중 한 분이 지원용 목사님을 데리고 갑니다.”

-미국 군 당국은 우리나라 추위를 견딜 수 있는 병사를 모집했고 그래서 5대호 연안 지역 출신들이 한국전에 많이 참전해 희생도 많았다고 합니다. 이들 중 다수가 루터교 신자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맞습니다. 미국 역사를 보면 개혁 교회 신자들은 대서양을 건너 미국 동부에 정착합니다. 루터 교인들은 뉴올리언스에 도착해 미시시피 강을 타고 북상합니다. 미주리·아이오와·미네소타, 5대호 지역 등지에서 내립니다. 유럽에서 이민 온 루터교 신자들은 루터교가 국교인 핀란드·노르웨이·덴마크·스웨덴 사람들이었습니다. 추운 나라들입니다. 추운 데 살던 사람들은 추운 데로 갑니다.”

-한국에 선교사를 파견한 루터교 미주리의회(Lutheran Church-Missouri Synod)와는 지금 어떤 관계입니까.
“지금도 긴밀하게 협조합니다. 상하관계가 아니라 ‘동협 교회(partner church)’ 관계입니다. 71년 2월에 미주리의회한국선교부가 기독교한국루터회라는 이름으로 독립합니다. 선교부가 자라 교회가 커지면 독립 교회로 분리돼 대등한 관계가 됩니다.”

-미국의 천주교나 성공회는 진보적인 성향이 강한데 미국 루터교도 그렇습니까.
“선교 배경에 따라 루터 교회 내에는 다양한 조류가 있습니다. 미주리의회는 보수적입니다. 지난 8월 30일부터 7일간 한국에서 개최된 국제루터교평의회(ILC) 회의는 동성애에 반대하는 결의문을 냈습니다. 일부 루터 교회에는 여성 목사가 있으나 한국 루터회에는 없습니다.”

기독교 전체를 섬기는 교회
-한국 루터교가 운영하는 베델성서 연구 프로그램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성경이라는 책을 전체적으로, 통괄적으로 보게 해 줍니다. 나무만 보고 숲을 못 보는 경우가 있는데, 베델성서는 우선 숲 전체를 본 다음 나무를 하나 하나 보는 방식입니다. 성경의 전체적인 흐름을 보는 안목이 생깁니다.”

-한국 루터교의 장점·특색은 무엇입니까.
“루터교만을 위하는 게 아니라 베델성서·루터란아워 등을 통해 기독교 전체를 섬기고 있습니다. 루터란아워 방송의 경우에도 프로그램 말미에 “이 방송을 듣고 예수를 믿고 싶으시면 가장 가까운 교회에 가십시오”라고 했지 ‘루터 교회에 가십시오’라는 말은 한번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순수 복음전도라는 사명에 충실했기 때문입니다.

루터 교회는 신학적으로 중립적인 입장에 서 있습니다. 우리는 가운데에 있으니까 진보 목사, 보수 목사의 손을 잡고 갈 수 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로마 가톨릭이나 정교회 신부님도 베델성서 프로그램으로 공부합니다. 우리 모두 손을 잡으면 각 교회가 각각의 특색은 유지하면서도 기독교의 정신으로 사회를 위해, 특히 육신의 고통을 받는 분들을 위해 일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 정신을 표출하는 것이 교회 연합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서는 목사님들도 읽기에 어려운 면도 있습니다. 게다가 옛날 문체라 이해가 힘듭니다.
“30년에 한번 새로운 번역본이 나와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대한성서공회는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문체로 공동번역, 공동번역 개정판, 표준새번역, 표준새번역 개정판을 출간하고 있습니다. 이 중 개신교에서 젊은이들에게 권장하는 것은 표준새번역 개정판입니다.”

-루터교의 예식이나 복장이 로마 가톨릭이나 정교회와 비슷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교회가 가지고 있는 전통성을 계속 유지했기 때문입니다. 초대 교회로 돌아가는 것이 기독교의 전통을 지키는 것입니다. 루터는 초대 교회로부터 내려오는 교회 내 좋은 전통을 유지하고 교회가 소홀히 한 것은 오히려 강조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루터교 예배에는 ‘기도송(Kyrie)’ ‘영광송(Gloria in excelsis)’ ‘거룩송(Sanctus)’ ‘하나님의 어린양(Agnus dei)’ 등의 찬송이 있습니다. 로만칼라와 영대(stole)도 착용합니다. 루터교에서는 성호를 긋는 데 이는 우리가 성부·성자·성령으로 받은 세례를 기억하기 위해서 입니다.”

-루터가 강조한 믿음·은총만으로 구원받더라도 일단 구원받은 다음에는 선행의 정도에 따라 받는 상이 다른 것은 아닙니까.
“루터교에서는 그렇게 가르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다 똑같아야지 차별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다른 차원의 세상이기 때문에 여기에 있는 계급이나 상(賞)의 개념으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루터는 지상의 평등도 강조했습니다. 루터는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에 따라 하나님 앞에서 교황이 하는 일이나 아기 어머니가 하는 일이나 동등하다고 봤습니다. 루터의 소명론입니다. 루터의 소명론이 서구를 지배해 지금의 세계가 탄생했습니다. 우리는 지금도 사농공상(士農工商) 구분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존경받아야 합니다. 소명에 따라 하는 일이 달라도 충실히 하면 하나님은 똑 같은 대우를 해 주시리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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